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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백제 무덤에 남은 고구려와 신라의 흔적, 석촌동·방이동 고분군

석촌동은 고구려식 돌무지무덤 형식, 방이동에선 신라 토기 발견

2023.08.22(화) 17:11:57

[비즈한국] 사극 속 백제 왕이나 귀족들은 대개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은 낮다. 백제의 도읍은 가장 오랜 기간 서울이었고, 나머지는 충청도 공주와 부여였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지구는 공주와 부여지만, 서울에도 백제 고분군 두 곳이 이웃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석촌동 고분군. 돌을 계단식으로 쌓은 돌무지무덤으로 고구려 무덤과 같은 형식이다. 백제 지배층이 고구려 출신임을 보여준다.  가장 규모가 큰 3호분(맨앞)은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사진=서울특별시 제공

 

#피라미드를 닮은 돌무지무덤,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의 도읍이 서울이던 한성백제 시기 조성된 왕과 귀족의 무덤군이다. 일제강점기 조사에 따르면 90기 가까이 있었는데,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쉽게도 지금은 단 4기만 남았다. 하지만 다른 지역 백제 고분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모습이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 거대한 무덤 주위로 소나무길 산책로를 만들고, 곳곳에 벤치를 놓아 한가롭게 고분을 둘러보기 좋다. 

 

석촌동 고분군의 특징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은 돌무지무덤이라는 점이다. 얼핏 보면 거대한 피라미드의 밑단 일부만 남은 모양이다. 이는 장군총 등 고구려 무덤과 같은 형식으로 백제의 지배층이 고구려 출신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배다른 형 유리가 나타나자 고구려를 떠나 백제를 세웠다. 

 

얼핏 보면 거대한 피라미드의 밑단 일부만 남은 모양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석촌동 고분군에는 고구려와 다른 백제만의 특징도 있다. 겉모습은 고구려 고분과 같지만, 내부를 흙으로 채우고 나무널로 관과 덧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고구려 고분은 내부도 돌로 채워 넣고, 돌방과 돌덧널을 두었다. 네 개의 무덤 중 전형적인 고구려 고분이 절반, 백제식이 절반이어서 고구려에서 내려온 지배세력이 현지화하면서 무덤 양식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가장 규모가 큰 3호분은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가로 50.8m, 세로 48.4m의 밑단을 포함해 총 3단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몇 단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 안에서 중국 도자기와 금 장신구 등이 나왔으나 중요한 유물들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이 지역 주민들이 무덤의 돌을 가져다 돌담을 쌓아서 석촌동(돌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백제 혹은 신라의 굴식돌방무덤, 방이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에 약 2km 떨어진 곳에 방이동 고분군이 있다. 방이동 고분군은 석촌동보다 무덤이 작아서 좀 더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난다. 무덤 주변에 작은 숲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이곳 무덤은 돌무지무덤이 아니라 굴식돌방무덤이다. 돌방을 만들어 관을 넣고 흙을 쌓은 뒤 다시 돌방까지 굴을 파서 들어가는 길을 만들었다. 이런 형태의 무덤은 4세기 고구려에서 시작되어 다른 나라로 퍼져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모두 8기의 무덤이 있는데, 이러한 형태의 굴식돌방무덤이 모여 있는 건 다른 서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이동 고분군은 굴식돌방무덤이다. 돌방을 만들어 관을 넣고 흙을 쌓은 뒤 다시 돌방까지 굴을 파서 들어가는 길을 만들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출입이 쉬운 굴식돌방무덤의 특성 탓에 모두 이미 도굴되어 남은 유물이 몇 점 안 된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한성백제 시기 무덤으로 추정했는데, 1976년 6호분에서 전형적인 신라 토기가 발견되면서 신라 고분으로 보는 학자들도 생겨났다. 

 

이는 단순히 무덤의 국적을 넘어 당시 삼국의 세력권과 교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처음엔 이 지역을 백제가 지배했으나, 나중에 신라 세력이 진출하면서 신라인의 무덤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이동 고분군에서 석촌동 고분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을축년(1925년) 대홍수 기념비가 있다. 을축년 대홍수는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의 홍수로 기록적인 피해를 남겼다.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는 홍수 이듬해 지역 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뒷면에는 6·25 전쟁 때 났다는 총알 자국도 보인다. 바로 옆 ‘암행어사 이건창 영세불망비’는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다시 찾아 이곳에 세운 것이란다.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 을축년(1925년) 대홍수는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의 홍수로 기록적인 피해를 남겼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서울 석촌동 고분군

△위치: 서울시 송파구 가락로 7길 21

△문의: 02-2147-2001

△관람 시간: 상시, 연중무휴

 

서울 방이동 고분군

△위치: 서울시 송파구 오금로 219

△문의: 02-2147-2800

△관람 시간: 09:00~20:00,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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