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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미래와 타협하지 않는 지프 랭글러의 고집과 도전

1987년 1세대 이후 거의 변함없는 디자인 고수…확고한 제한 속에 새로움 제시해야

2024.01.05(Fri) 13:34:49

[비즈한국] 최근 스텔란티스 산하 SUV 전문 브랜드인 지프(Jeep)에서 새로운 랭글러의 한국 판매를 시작했다. 랭글러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활약했던 소형 군용차에 뿌리를 둔 지프의 간판 모델로, 이번 랭글러는 2017년 선보인 5세대를 바탕으로 한 부분 변경 모델이다. 그런데 외형상의 변화는 매우 작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디가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랭글러의 원형 헤드램프와 세로 7줄의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돌출된 앞뒤 바퀴 덮개와 군더더기를 최소화한 차체 디자인은 지프 초창기부터 유지된 브랜드의 상징이다. 이번 부분 변경뿐 아니라 1941년 만들어진 오리지널 지프부터 역대 랭글러의 디자인 자체가 크게 보면 별로 변하지 않았다. 1987년식 랭글러가 사각형 헤드램프를 달았던 것이 최대의 파격이었으며 그나마 지금은 원형으로 회귀한 지 오래다.

 

지프 랭글러는 1987년부터 생산하는 군용차 출신 후륜구동 기반 보디 온 프레임 타입 SUV다. 사진=지프 홈페이지

 

비슷한 체급의 신차 중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델이 있다. 지난해 11월 시판에 들어간 테슬라 사이버트럭이다. 둘의 디자인 방향은 정반대라고 할 만큼 다르다. 테슬라 라인업을 살펴보면, 전기차의 특징인 미래적인 외관 정도가 공통점일 뿐 ‘전통이 없는 것이 전통’으로 느껴질 만큼 각자 디자인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이버트럭은 한발 더 나아갔다. 기존 픽업트럭의 디자인 요소를 모두 모아놓고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그 반대로만 만든 듯한 인상마저 준다. 마치 종이를 접은 듯 날카로운 면으로 이루어진 바디라인은 SF영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파격을 느끼게 한다. 맨 위에서 날카롭게 꺾여 뒤쪽으로 뻗어 나가는 지붕에서는 전위적 디자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향기가 느껴질 정도다.

 

요즘 자동차 업계의 화두는 전동화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모든 자동차 메이커는 전기차 위주의 라인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때 랭글러의 중요한 아이덴티티인 7줄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주요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랭글러에서 그릴이 사라지고 사이버트럭처럼 매끈한 모습으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유명한 모델일수록 팬들은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랭글러처럼 세대별 디자인 변화가 적은 편인 포르쉐 911은 타원형 헤드램프를 계란프라이와 닮은 자유곡선형 디자인으로 바꾸었다가 골수팬들의 극렬한 비난에 직면하여 다시 타원으로 돌아갔고, 재규어 XJ도 1980년대 전통과의 과감한 단절을 내세우며 원형 헤드램프를 사각형으로 바꿨다가 팬들의 반발에 원상 복귀한 전적이 있다.

 

오프로더를 대표는 지프 랭글러는 투박하고 감성적인 멋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다. 사진=지프 홈페이지

 

내연기관에 맞춰진 랭글러의 디자인 요소가 순수 전기차로 변한다고 해서 꼭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역할을 달리하여 존속할 방법은 많다. 예를 들어 7줄의 그릴을 오프로드용 안개등 역할을 하도록 그대로 라이트 바로 바꿀 수 있다. 전기차의 장점인 대용량 배터리를 통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시야 확보가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험로 주파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장비를 달 공간이나 단순 수납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사이버트럭은 분명 미래를 제시하고 있지만 디자인 다양성을 위해 전통을 지키는 모델도 여전히 필요하다. 스텔란티스는 이미 차기 랭글러는 하이브리드가 아닌 순수 전기차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보다 확고한 제한 속에서 새로움을 제시해야 하는 디자인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지프 디자이너들의 손길이 바빠질 전망이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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