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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두 은하가 '예쁘게' 정렬할수록 별이 많이 탄생한다

은하들의 상호작용에 '기울기'가 미치는 영향을 관측 데이터로 증명

2024.04.30(Tue) 09:26:46

[비즈한국] 은하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주변의 다른 은하들과 충돌하거나, 스쳐지나가며 상호작용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은하의 형태가 변하기도 하고, 가스 물질을 주고받으며 별이 더 많이 탄생하거나, 반대로 별 탄생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 즉 은하끼리의 충돌과 상호작용은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들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인접한 두 은하가 서로의 중력으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경우를 은하쌍으로 정의한다. 사진=NASA, ESA, and the Hubble Heritage Team(STScI/AURA)


그런데 은하들의 충돌과 상호작용이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될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충돌하는 두 은하 사이의 거리, 두 은하의 상대적인 속도, 각 은하가 품고 있는 별의 질량, 가스의 질량, 암흑 물질의 질량 등등…. 관측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워, 최신 초고해상도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까지 동원해야 겨우 파악이 가능한 굉장히 복잡한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다. 그래서 은하끼리의 상호작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 큰 그림은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상태다. 

 

최근 나는 연구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요인이 은하의 충돌과 상호작용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 충돌하는 두 은하가 어떤 각도로 접근하는지, 두 은하 원반의 상대적인 자세, 기울기가 그 요인이다. 흥미롭게도 두 원반 은하의 회전축이 나란히 잘 정렬된 상태로 접근할수록, 상호작용하는 두 은하의 별 탄생율이 더 뚜렷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동안 간과된 은하들의 상대적인 충돌 자세가 이들의 운명에 끼치는 영향을 실제 관측 데이터를 통해 입증한 나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은하들의 충돌 과정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요소들의 역할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특히 다른 은하들과 달리, 두 은하가 비교적 가까이 붙어서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를 천문학에서는 은하쌍(Galaxy pair)이라고 정의한다. 가장 뚜렷하게 은하 간 상호작용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두 은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효과는 더 커진다. 두 은하가 서로 주고받는 중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연구팀은 앞선 연구에서, 가까이 접근하는 이웃 은하가 얼마나 많은 가스 물질을 머금고 있는지, 또는 이웃 은하에서 얼마나 많은 별이 탄생하고 있는지가 은하 간 상호작용의 결과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접근하는 은하가 별을 잘 만들어내는 활발한 은하인 경우, 별 탄생율이 더 뚜렷하게 증가한다. 반면 접근하는 은하가 별을 잘 만들지 못하는 은하라면, 별 탄생율이 크게 증가하지 않거나 심지어 감소하기도 한다. 짧게 정리하자면, 별을 잘 만드는 은하가 접근해야 나도 별 탄생이 증가하고, 별을 잘 못 만드는 은하가 접근하면 나도 별 탄생이 줄어든다. 은하의 세계에서도 일종의 ‘근묵자흑’의 문법이 통하는 셈이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접근하는 은하에서 별 탄생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면 그 은하가 신선한 가스 물질을 많이 머금고 있다는 뜻이다. 즉 은하가 많은 가스 물질을 싣고 접근하면서 다른 은하에도 많은 양의 가스 물질이 유입된다. 그 결과 빠르게 별 탄생이 촉진될 수 있다. 반면 별 탄생이 잘 벌어지지 않는 은하라면 은하 주변에 불안정하고 온도가 높은 뜨거운 헤일로가 에워싼 경우가 많다. 이런 은하가 접근하면 뜨거운 헤일로 때문에 다른 은하 안에 있던 가스 물질도 불안정해지고 중력 수축이 어려워진다. 그 결과 별 탄생이 증가하지 않거나 반대로 살짝 감소할 수도 있다.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몇 년 뒤 다른 연구팀이 초고해상도 우주론적 시뮬레이션 중 하나인 일러스트리스 시뮬레이션으로 우리 연구팀의 결과가 시뮬레이션에서도 잘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관측 데이터를 통해 제시한 우리의 가설이 실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론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다. 

 

은하들이 충돌하는 과정을 단계에 따라 분류한 사진. 사진=NASA, ESA, the Hubble Heritage Team(STScI/AURA)-ESA/Hubble Collaboration and A. Evans(University of Virginia, Charlottesville/NRAO/Stony Brook University), K. Noll(STScI), and J. Westphal(Caltech)


하지만 은하들의 상호작용 결과를 결정하는 건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같은 질량, 같은 암흑물질, 같은 가스 물질을 머금은 두 은하가 같은 거리에서 충돌하더라도, 만약 서로 각도가 달라 비스듬하게 부딪히는 상황이라면 그 충돌, 상호작용의 결과도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이다. 기존 시뮬레이션에서도 조금씩 예측되는 결과였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관측으로는 이것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의 모습은 하늘에 투영된 모습이다. 원반 은하를 관측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하늘에서 보이는 은하는 납작한 원반 모양일 뿐이다. 은하 원반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누워있다면 그만큼 투영되면서 기울어진 타원 모양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실제 우주 공간에서 은하 원반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뒤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입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내가 다뤄야 하는 것은 은하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원반 은하가 서로 충돌과 상호작용을 하는 은하쌍이다. 결국 각각의 두 은하 원반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에 따라, 실제 상황은 총 네 가지의 경우가 가능해진다. 통계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총 네 가지의 자유도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번 연구에서 네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는 새로운 방식을 동원했다. 비록 정확하게 두 은하의 원반과 회전축이 서로 어떤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경향성은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두 은하의 원반과 회전축이 얼마나 비슷한 방향으로 정렬되는지에 따라, 은하 간 상호작용으로 인해 별 탄생율이 증가하는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우선 앞선 연구에서 확인했듯이, 접근하는 은하가 별을 잘 만드는 가스를 많이 품은 은하일 때에만 상호작용으로 인해 은하의 별 탄생이 증가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인다. 이것은 상호작용에 의해 별 탄생이 증가하는 것이 가스 물질과 같은 유체역학적인 요인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상호작용하는 두 은하의 원반과 회전축이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잘 정렬될수록, 별 탄생의 증가 정도가 더 뚜렷해진다! 은하 원반이 서로 수직으로 기울어질수록 상호작용하는 두 은하에서 별 탄생이 증가하는 정도가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두 은하 원반이 ‘이쁘게 잘 정렬’된 상태로 충돌할 때, 그 충돌로 인해 별 탄생이 촉진되는 정도가 더 큰 것이다. 

 

사실 인접한 두 은하의 정렬 상태 자체도 두 은하의 상호작용의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즉, 두 은하의 증가된 별 탄생과 정렬 상태, 둘 모두가 상호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관측된 경향만 보고 단순하게 은하의 정렬 상태가 좋을수록 은하의 별 탄생 증가가 더 강하게 촉진된다고 바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것을 점검하기 위해 나는 인접한 두 은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두 은하 원반의 정렬 상태에 뚜렷한 변화가 생기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무런 경향성을 찾을 수 없었다. 즉, 내가 분석한 관측 데이터 속 은하들의 정렬 상태는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진 상호작용의 결과가 아니란 뜻이다! 상호작용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원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은하들의 정렬 상태가 상호작용의 결과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하나는 은하 원반이 잘 정렬될수록 은하 원반의 충돌면이 넓어지고 각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끼리 역학적인 마찰, 즉 램압력이 더 강하게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스 물질의 반죽이 더 많이 촉진될 수 있고, 충돌면을 따라 별 탄생이 빠르게 증가된다. 

 

또 다른 가능성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보통 인접한 두 은하의 회전축이 잘 정렬된 경우, 각 은하의 회전축뿐 아니라 서로의 궤도도 비슷한 방향으로 잘 정렬된 경우가 많다. 중심 은하의 자전 방향, 그리고 그 곁에 접근해서 곁을 맴도는 이웃 은하의 공전 방향이 비슷한 방향으로 정렬된 경우를 ‘순행’이라고 한다. 이런 ‘순행’이 이루어지게 되면 중심 은하와 곁을 도는 이웃 은하가 서로 중력을 주고받는 시간, 유효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고 은하 간 상호작용의 효과도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정리하자면 인접한 두 은하가 서로 충돌하고 상호작용한 후 별이 얼마나 더 많이 탄생할지는 다음과 같은 요소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접근하는 은하에서 별이 얼마나 많이 탄생하는지, 즉 그 은하에 얼마나 많은 가스 물질이 존재하는지와 두 은하가 서로 어느 정도 기울어진 상태로 접근하는지.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실제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주의 모든 은하는 혼자서 살아가지 않는다. 멀든 가깝든 곁의 다른 은하들과 기나긴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간다. 이 넓은 우주에도 ‘외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d2063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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