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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송골매 덕후가 12년 만에 완성한 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

배철수·구창모 재결합 콘서트와 맞물려 펼쳐지는 여고 동창생 4명의 이야기

2023.11.02(Thu) 09:50:01

[비즈한국] 아마도 1980년 9월 21일이었을 게다. 전두환 정권 초기 KBS가 청년층을 겨냥해 선보인 ‘젊음의 행진’이 첫 방송을 탔다. 이택림-진미령의 사회로 출발해 송승환-왕영은 콤비로 전성기를 누린 이 쇼프로그램은 1980년대를 관통한 신세대 음악의 전진기지였다. 오프닝과 함께 무대에 오른 뮤지션은 ‘송골매’. 배철수의 기타 연주로 ‘탈춤’이 흘렀다. 간주가 흐르는 동안 어색한 탈춤을 추던 당대의 청춘스타가 전영록이었다.

 

이경란 작가는 송골매 덕후다. 그에게 “왜 하필 송골매냐?”고 물었더니 “무슨 말이 필요해. 난 그냥 송골매야”라고 답했다. 필자도 한때 조용필 마니아였고, 아내는 이문세를 ‘오빠’로 모셨다. 송골매로 치면 필자는 ‘활주로’의 배철수, 아내는 ‘희나리’의 구창모 취향이었다. 딱 1년 전 50대 부부가 의기투합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송골매 콘서트를 찾아간 것도, 그곳에서 이틀 연속 야광봉을 흔들다 실신한 이경란 작가를 만난 것도 모두 80년대 유산이다. 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교유서가)는 이런 인연이 가능한 이유를 끈적하게 풀어냈다.

 

디어 마이 송골매

이경란 지음 교유서가

224쪽, 값 1만 5000원

 

작가는 2011년 가을, TV 토크쇼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 그날 배철수는 이런 멘트를 날렸다. “저는 53년생입니다.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사랑하세요.” 배철수는 1990년부터 무려 33년간 음악프로그램 DJ로 스튜디오를 지키고 있다. 3년도 아닌 33년이기에 그의 멘트는 늘 울림이 크다. 2020년 국난 극복 릴레이 캠페인 당시 영화감독 봉준호는 다음 주자로 배철수를 지목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면 평화로운 일상을 느낀다”는 이유로!

 

작가가 ‘송골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2011년, 강현철 감독의 영화 ‘써니’가 개봉했다. 전남 벌교를 배경으로 7공주가 펼치는 하이틴 난장과, 대구지역 여고 동창생 4명이 ‘디어 마이 송골매’에서 털어놓은 후일담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감성이다. ‘써니’의 주인공들이 리즈 시절 ‘짱’이었던 ‘하춘화(진희경, 강소라)’의 영정 앞에서 ‘새드엔딩’ 공연을 선보였다면, 송골매 마니아들은 38년 만에 실현된 올드보이들의 재결합을 ‘해피엔딩’으로 자축했다.

 

사춘기 시절 아이돌을 짝사랑한 경험은 보편적이다. ‘디어 마이 송골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송골매를 사랑했고 첫 마음을 평생 간직했다. “송골매 그 날라리들이 이차방정식이라도 풀어준대냐?”고 놀리는 수학 교사 앞에서 통곡했고,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선 파격적인 ‘탈춤’ 떼창으로 80년대 학생운동 특유의 엄숙주의를 화끈하게 뒤집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천만 원 상당의 결혼 30주년 기념 크루즈 티켓을 쿨하게 포기할 만큼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는 그들에게 양보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축제였다.

 

이경란 작가는 원조 송골매의 여섯 남자 중 배철수를 사모했다.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한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생방송에서 두 사람의 케미는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티키타카’처럼 수려했다. 작가는 마치 스토커처럼 배철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훑었고, DJ는 작가가 골라온 앨범 리스트를 세심하게 짚었다. 이날 게스트의 마지막 인사는 대한민국 ‘축빠’의 황홀한 신화이자 두 사람이 각자의 삶에서 이룬 예술적 성취였다. “여러분, 꿈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꿈은 이루어집니다.” 배철수를 사모한 이경란 작가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뒤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 앨범과 책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케미는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티키타카’처럼 수려했다. 사진=작가 제공


송골매는 배철수가 라디오 DJ로 전업한 1990년부터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후 한국 대중음악은 천지개벽에 가까운 반전을 거듭했고 어느덧 빌보드차트의 맨 꼭대기까지 넘보는 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MZ세대에게 배철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나 보컬이라기보다 주말 저녁 ‘콘서트 7080’을 14년간(2004~2018) 진행한 MC로 기억될 듯하다. 축구팬이라면 음악방송임에도 이따금씩 조미료처럼 투입되는 촌철살인 코멘트에 중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는 좀처럼 정치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가 현직 대통령이 출연한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하며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를 선곡한 장면에서,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애독자이자 애청자로서 사족을 붙인다. ‘디어 마이 송골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하나만 꼽자면 소설의 막바지에 송골매의 서식지로 화려하게 등장한 새만금 수라 갯벌이다. 이곳은 송골매가 은퇴할 무렵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2023년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로 시대의 묵시록이 됐다. 

 

필자는 이경란 작가의 등단 이전 미공개 단편을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절망적 현실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언어”란 후기를 남기곤 했다. 운명적 인연을 소재로 무려 12년에 걸쳐 장편소설을 완성한 작가의 현재 심정은 어떠할까? 송골매 히트곡에서 답을 찾자면 나는 이게 아닐까 싶다.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더 이를 곳도 없더라.” 배철수가 부른 ‘산꼭대기 올라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멋지고 정겹다!​

육성철 전직 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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