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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 켜면 장나라가 등장하던 시절 '명랑소녀 성공기'

2000년 초반 '장나라 신드롬'의 상징적 작품…유치하고 전개 허술해도 '재미는 보장'

2020.03.25(Wed) 13:27:03

[비즈한국] TV만 켜면 장나라가 등장하던 때가 있었다. 2001~2003년경으로 기억한다. 드라마, 예능, CF를 섭렵한 건 물론 무대에서도 가수 장나라로 인기 폭발이었다. 물론 장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최강 동안의 얼굴로 활발히 활동 중이긴 하다. 하지만 그때의 장나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대한민국이 ‘장나라 신드롬’을 앓고 있었다고.

 

장나라의 연기 데뷔는 2001년 ‘뉴 논스톱’이지만 그녀의 매력이 만개한 것은 단연 ‘명랑소녀 성공기’였다. 커다란 눈망울의 장나라가 충청도 사투리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구만유” “사랑해유!”를 외치던 2002년의 봄,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또한 ‘명랑소녀 성공기’는 ‘추노’의 대길이가 되기 전 푸릇푸릇한 장혁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얼핏 모든 걸 갖춘 왕자님과 시골 소녀의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명랑소녀 성공기’는 이를 교묘히 뒤튼다. 장나라와 장혁은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로 성장한다.  사진=SBS 홈페이지

 

스노이화장품 창업주의 아들이자 현재 사업본부장인 한기태(장혁)는 어릴 적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부모님을 잃은 아픔이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모자랄 것이 없는 ‘다이아몬드 수저’. 그래서인지 몰라도 뭐든 자기 고집이 우선이고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휘두르는 안하무인이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회사 사보 사진을 찍기 위해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시골집 마당에서 목욕 중이던 차양순(장나라)의 목욕통 속으로 떨어진다!(이건 마치 ‘사랑의 불시착’?) 그 와중 목욕통에 기태는 부모님 결혼반지를 꿴 목걸이를 떨어뜨리고, 이내 사기꾼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가정부 생활을 하러 올라온 양순과 다시 얽힌다.(이건 마치 ‘파리의 연인’?)

 

스노이화장품 행사에서 ‘촌스러운 여자를 변신시켜준다’는 콘셉트를 계획한 기태(장혁)로 인해 변신한 양순(장나라)의 모습. 그러나 장나라는 꾸미지 않은 촌스러운 모습도 귀엽다는 게 함정.  사진=SBS 홈페이지

 

충실하게 신데렐라 스토리를 따라가는 듯하지만 사실 ‘명랑소녀 성공기’는 평강공주와 온달의 노선을 따른다. 회사를 장악하려는 오준태(류수영)의 계략에 의해 한기태는 돈 한푼 없는 거지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 기태만을 바라보던 공동창업주의 딸이자 기태의 약혼녀 윤나희(한다감, 당시 한은정)는 양순의 할머니를 교통사고로 죽이는 사고를 치며 기태에게서 떠나고, 기태가 망한 이후 모든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는 와중 남아 있는 건 오직 양순이뿐이다. 그렇게 몰락한 왕자 한기태는 가정부 출신 시골 소녀 차양순에 의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사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명랑소녀 성공기’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허술한 전개가 돋보이는 전형적인 2000년대 초반 드라마다. 악당인 준태가 기태를 망하게 하는 계략은 딱 봐도 허술한데 기태는 거기에 넘어가고, 기태와 그 측근들이 화장품 브랜드 ‘황후’를 재건하는 과정도 입이 떡 벌어지게 허술하다. 중간중간 맥락없이 삽입되는 청춘물스러운 장면들은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악에 북받쳐 흉기로 준태를 협박하는 기태를 말리고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뜬금없이 양순이 “사랑해유!”를 외친다거나 화장품 핵심 기술자인 최 기장을 찾으러 바닷가에 갔다가 갑자기 그들끼리 엠티를 벌이거나 하는 식이다.

 

‘명랑소녀 성공기’의 시작은 백마 타고 달려온 왕자가 위험에 빠지자 양순이 그를 구해내는 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와 비슷하달까. 사진=SBS 홈페이지

 

양순이 말했듯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니까 착한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고 성공한다. 죄를 지은 나쁜 사람들은 벌을 받거나 회개하고 자수한다. 물론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은 언제나 한국 드라마의 기본 명제인 데다, 장나라와 장혁의 발랄한 시너지 때문에 ‘명랑소녀 성공기’를 보는 과정은 즐거운 편이었다. 그러니 당시에도 최고 시청률 42%를 기록했겠지. 그리고 그 발랄함 때문에 지금 다시 봐도 허술한 만화 같은 전개에도 나름 즐겁게 시청할 수 있다.

 

1990년대~2000년대 트렌디 드라마를 많이 본 시청자라면 주인공 파와 반대파가 회사를 두고 알력 다툼을 하고 그 안에서 회사의 정당한 후계자와 능력만 있는 신입 사원 사이 싹트는 로맨스를 제법 본 기억이 날 텐데, 특히 ‘명랑소녀 성공기’와 1998년의 ‘미스터Q’, 1999년의 ‘토마토’가 오버랩된다면 정답이다. 세 작품 모두 이희명 작가와 장기홍 PD가 함께했기 때문. 다른 점이 있다면 ‘명랑소녀 성공기’의 양순이는 기태와 결혼에 골인하며 신데렐라에 안착하는 게 아니라 여군 부사관을 선택해 자기만의 길을 간다는 것 정도?

 

스노이화장품을 집어삼키려는 오준태(류수영)와 기태의 약혼녀였던 윤나희(한다감). 준태는 기태가 능력도 없으면서 부모 때문에 그 위치를 차지한 점과 자신이 사랑하는 나희가 기태를 좋아하기 때문에 격렬히 싫어했다. 다소 이해 가는 설정인데, 악역 포지션이기에 평면적으로 그려졌던 게 흠. 사진=SBS 홈페이지

 

2020년에 다시 보니까 재미있는 장면도 있다. 기태와 양순 패거리가 새로 만든 화장품 ‘퓨어스노이’를 선보이면서 자연주의 화장품임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화장품을 떠먹는 장면이 나오더라고. 마치 모 화장품의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가 생각하는 퍼포먼스랄까(그 화장품 브랜드보다 이 드라마가 먼저 나왔다). 조장혁이 불렀던 OST ‘Love Song’도 다시 들어보니 새삼 흥겹다. 

 

여기에 가수 장나라의 ‘Sweet Dream’이나 ‘나도 여자랍니다’까지 곁들여 듣다 보면 어느덧 완벽하게 2000년대 초반의 감성으로 넘쳐날 것이다. ‘명랑소녀 성공기’가 방영했던 2002년은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승승장구했던 때이기도 하다. 시니컬하고 싶던 20대 초반 젊은이였던 나도 ‘내 생애 이런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운이 좋잖아!’라고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18년이 지난 2020년의 대한민국이 코로나19로 우울한 상태라 더욱 ‘명랑소녀 성공기’ 같은 드라마가 생각난다. 좀 유치하고 허술하면 어때. 장나라랑 장혁이 이렇게 귀여운데! 이렇게 젊은데! 명랑하게 열심히 살면 누구든 성공한다잖아!

 

양순이 서울로 올라와 가정부 생활을 해야 했던 건 사기꾼 부모의 빚 900만 원을 갚아야 했기 때문. 극중 양순의 부모는 계속되는 사기로 교도소까지 다녀온 구제불능의 인간들이었지만 로맨틱 드라마 특성상 본성은 악하지 않은 인물들로 그려졌다.  사진=SBS 홈페이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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