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그런데 그 팽창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1998년 우주 끝자락 초신성을 관측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한 우주의 가속 팽창은 이제 우주의 진화를 설명하는 정설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주의 시공간이 갈수록 더 빠르게 부푸는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우주는 수많은 은하로 채워졌다. 은하들은 서로 중력으로 잡아당긴다. 중력만 있다면 오히려 우주는 점점 더 작아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주가 더 빠르게 팽창한다는 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우주 시공간을 부풀리는 미지의 에너지가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에너지에게 암흑 에너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주고 열심히 그 정체를 쫓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암흑 에너지의 기원을 두고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됐다. 암흑 에너지 못지않게 우주의 또 다른 거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인 블랙홀이 바로 암흑 에너지의 기원일지 모른다는 가설이다. 암흑 에너지가 블랙홀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니! 우주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두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이란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다. 정말 블랙홀이 우주를 점점 더 빠르게 살찌우는 범인일까?
블랙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블랙홀의 경계는 사건의 지평선까지다. 그 너머의 어둠은 볼 수 없다. 시공간이 너무 깊게 왜곡되어 있어서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블랙홀 중심에는 모든 질량이 한 점으로 모인 특이점이 있을 거라 추정할 뿐이다. 하지만 일부 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이 완벽하게 붕괴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일종의 반발력이 내부에서 작동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테면 블랙홀 안에 진공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공 에너지는 말그대로 텅 빈 진공 자체가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것을 말한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진공도 사실 텅 빈 것은 아니다. 실시간으로 아주 짧은 찰나에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 없이 고요하고 텅 빈 세계 같지만 사실 진공에서도 입자들이 쉬지 않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1m³ 부피의 진공은 약 1나노 줄의 진공 에너지를 갖고 있다. 막강한 중력으로 붕괴된 블랙홀 내부에도 이런 진공 에너지가 작동할 수 있다. 블랙홀 내부에서 형성된 진공 에너지가 중력에 대항해서 블랙홀의 완전한 붕괴를 저지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부터 놀라운 마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공식 E=mc²은 질량이 곧 에너지, 에너지가 곧 질량이라는 등가 원리를 말한다. 우주가 팽창하면 당연히 우주 시공간에 존재하는 블랙홀도 팽창한다. 그리고 블랙홀은 더 많은 진공 에너지를 머금게 된다. 블랙홀이 품고 있는 에너지가 증가했다는 것은 곧 블랙홀의 질량이 무거워진다는 뜻이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우주 시공간의 팽창 자체가 블랙홀을 더 무겁게 성장시키고 있다고 추정한다.
2023년에는 우주 팽창과 블랙홀 성장 사이의 연결 고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됐다(관련 기사 [사이언스] 우주 최대 미스터리, 블랙홀과 암흑에너지의 '묘한 관계'). 당시 이 연구 논문의 저자 파라하 박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110억 년 전, 60억 년 전, 그리고 오늘날 우주에서 관측되는 은하들 속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질량 분포를 비교했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블랙홀의 질량 분포가 꾸준히 성장한 것.
더 놀라운 것은 우주의 스케일이 팽창할수록 블랙홀의 질량이 우주 스케일의 정확히 세제곱에 비례해서 무거워진 것이다! 파라하 연구팀의 결과에 따르면 우주가 두 배 커지면 블랙홀의 질량은 그 세제곱인 8배 커지는 방식으로 질량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주의 부피가 늘어나면서 그 부피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블랙홀 자체의 질량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이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은하 중심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성장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순히 작은 블랙홀들이 오랜 시간 병합해서 성장한 건 아닌 듯하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 있던 거대한 분자 구름이 한꺼번에 수축하면서 한 번에 이런 거대한 블랙홀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역시 확실치 않다. 그나마 최근 들어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통해 훨씬 먼 우주 끝자락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발견하면서 그 힌트 조각을 찾고 있을 뿐이다.
천문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우주 전역 은하들의 세밀한 입체 지도를 그리는 DESI(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 관측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키트 피크 천문대 망원경으로 하늘 전역 은하들의 지도를 그린다. 이를 통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주의 구조, 은하의 밀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비교한다. 그리고 우주의 팽창률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최근 DESI의 첫 번째 관측 결과가 공개되었는데, 아직은 일부 관측 결과이기는 하지만 흥미롭게도 암흑 에너지가 계속 일정했던 것이 아니라 우주의 나이에 따라 변화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더 정밀하게 암흑 에너지의 변동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추가 분석을 진행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주에서는 별이 태어나는 정도가 꾸준히 변했다. 극초반에는 별들이 폭발적으로 태어났지만 우주가 점점 넓어지고 별을 만들 재료가 고갈되면서 별을 만드는 효율이 잠잠해졌다. 별들은 질량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로 진화한다. 특히 무거운 별들은 더 빠르게 블랙홀로 붕괴한다. 우주가 나이를 먹으면서 매 시기에 얼마나 많은 블랙홀이 만들어지고 붕괴되었을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정말로 암흑 에너지가 블랙홀과 연결되어 있다면 블랙홀의 생성률 변화는 우주의 가속 팽창 정도 및 암흑 에너지의 변화와 비슷한 경향을 보여야 한다.
위 그래프에서 x축은 우주의 시간이다. (보통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단순한 년 단위가 아니라 얼마나 과거부터 흘러왔는지를 보여주는 적색편이를 사용한다.) 그래프에서 왼쪽이 현재, 오른쪽으로 갈수록 빅뱅 직후 초기 우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온 순서대로 보려면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가는 방향으로 봐야 한다. 그래프에서 이번 첫 번째 DESI 관측 결과로 파악한 암흑 에너지의 변화는 색깔로 표현됐다. 아직 첫 번째 데이터만 사용했기 때문에 오류 범위가 상당히 넓다.
그래프에서 검은색 실선과 점선이 보인다. 점선은 기존에 알고 있던 우주의 별 생성 역사를 반영해서 재현한 결과다. 실선은 가장 최근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도 별들이 아주 폭발적으로 많이 태어나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다시 반영해서 적용한 결과다. 그래서 검은 실선은 오른쪽(빅뱅 직후)에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색으로 표현된 DESI 관측 결과의 영역이 오류가 너무 넓기는 하지만 기존의 모델(점선)과 제임스 웹 관측 결과를 반영한 모델(실선) 모두 블랙홀의 생성률과 우주의 팽창률이 잘 맞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래프의 가장 왼쪽 끝, 최근 20억년 사이에는 그래프가 크게 어긋난다. 20억 년 전의 과거 우주까지는 관측 결과와 모델이 우주 팽창을 모두 잘 설명하지만, 가장 최근 20억 년에 들어오면서 관측과 모델이 크게 어긋난다. 이번 논문은 이에 대해 최근 20억 년 사이에 무거운 별들이 블랙홀로 붕괴하는 비율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블랙홀이 생산되는 양이 줄었기 때문에 암흑 에너지도 줄었고 가장 최근에 오면서 다시 우주 팽창이 가속되는 정도가 조금 줄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굉장히 흥미롭다. 사실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암흑 에너지를 시간에 따라 절대 변하지 않는 상수로 설정하고 분석해왔다. 대부분의 우주론적 시뮬레이션도 그렇다. 하지만 이번 결과를 보면 암흑 에너지가 변하지 않는 상수로 주어지는 기존의 ΛCDM 모형(암흑 에너지-차가운 암흑 물질)보다 암흑 에너지가 블랙홀과 연결되어있다는 가정 하에 암흑 에너지의 양이 시간에 따라 변하고 있다고 가정한 모델이 훨씬 더 DESI 관측 결과를 잘 설명한다. 게다가 가장 현재에 와서 모델과 관측 결과가 어긋난다는 점은 최근 들어 천문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허블 텐션이라는 유명한 미스터리를 떠올리게 한다.
허블 텐션은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측정한 비교적 최근 우주의 팽창률과 우주 배경복사를 통해 관측한 아주 먼 우주 전역의 팽창률의 값이 조금 어긋나게 측정되는 문제를 말한다. 어쩌면 이 차이는 시간에 따라 우주 전체의 팽창이 가속되는 정도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 정말로 암흑 에너지가 블랙홀과 연결되어 있다면, 우주가 얼마나 더 빠르게 팽창할지는 우주에서 블랙홀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블랙홀의 생산량에 따라 결정되는 운명일 수도 있다.
아직은 확실치 않다. 블랙홀이 암흑 에너지와 연결됐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두 가지 질문에 완벽하게 답을 내야 한다. 첫 번째, 우주는 정말 가속 팽창을 하고 있는가? 우주의 팽창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가속 팽창 자체에 대한 의문이 아직 완벽히 해소되지 않았다. 두 번째, 우주가 암흑 에너지로 인해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면 암흑 에너지는 정말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을까? 아니면 최근 거론되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암흑 에너지의 양도 변하고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모두 확실하게 결론이 나야 우리는 비로소 암흑 에너지와 블랙홀의 연결 고리를 더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블랙홀은 얼핏 모든 걸 빨아들이기만 하는 ‘수축’의 끝판왕처럼 생각한다. 절대 무언가를 팽창시키는 존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블랙홀이 우주 전체를 더 빠르게 부풀리고 있는 암흑 에너지의 원천이있을지 모른다니! 이토록 극적인 반전 매력이 또 있을까?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ac2e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b704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475-7516/2024/10/094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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