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규모 전세사기의 여파로 전세시장에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증보험) 가입이 필수 조건이 됐다. 임대인들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전세 대신 월세나 반전세로 방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보증금 반환이 전세사기의 원인이 됐다고 보고 요건을 강화했지만, 전세보증금을 낮춘 임대인들의 불만은 크다. 전세사기 우려 속에 높은 비용을 들여가며 ‘안전한 집’을 찾으려는 임차인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 강서구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A 씨는 월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전세를 알아봤지만 끝내 포기했다. 반지하, 소형 평수, 외진 곳을 제외한 집은 전세보증금이 2억 원 중반을 훌쩍 넘었기 때문. 목돈을 잃을까 걱정이 앞선 A 씨는 70만 원대 월세를 ‘안전 비용’으로 생각하며 다시 원룸 월세를 계약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이사할 곳을 찾던 직장인 B 씨는 고민에 빠졌다. 입주하려는 오피스텔에 월세 15만~20만 원, 보증금 1억 4000만 원대인 ‘반전세(월세와 전세를 합한 형태)’ 매물밖에 없어서다. B 씨는 고정비용을 줄이고자 전세로 바꿀 수 없는지 문의했지만, ‘보증보험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맞추기 위해 전세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받는 임대인이 늘고 있다. 전세사기의 여파로 보증보험 가입이 필수 조건이 되면서다. 이 같은 추세에 월세 보증금도 오르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11월 서울 연립·다세대 월세 보증금은 평균 1억 원을 돌파해 1억 530만 원이 됐다. 지난 1월 7585만 원 대비 약 40% 뛰어오른 수준이다. 월세도 적지 않다.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11월 서울 평균 월세는 84만 원에 달했다. 전세사기를 피하고 싶은 임차인 입장에선 전세 수준의 월세 보증금을 내거나, 매월 비싼 월세를 내야 하는 셈이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은 임차인도 월세를 선호한다. 그러나 임대인은 다음 세입자를 받으려면 보증금이 필요하니까 최대한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수준에 맞추고 월세를 받는다”라며 “요즘 오피스텔에서 완전 전세 매물은 드물다. 대부분 반전세나 월세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도 “임대인은 전세로 돌리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전세사기, 규제 강화 등으로 몇 년 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라고 전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란 HUG가 전세 계약 종료 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반환해야 하는 전세보증금의 반환을 책임지는 보증상품이다. 보증 대상은 단독·다가구·다중·연립·다세대주택, 노인복지주택, 주거용 오피스텔, 아파트다. 보증 조건은 전세보증금과 선순위채권을 더한 금액이 주택 가격에 담보인정비율(LTV) 90%를 곱한 금액보다 낮아야 한다.
HUG는 2023년 임차인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보증금 반환이 쉬운 탓에 전세사기가 늘었다고 판단해서다. HUG는 보증보험 가입 시 주택 가격을 산정할 때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담보인정비율은 100%로 90%로 낮췄다. 이를 계산하면 전세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 이하여야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당시에도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보다 낮은 빌라(다세대·연립주택)는 전세보증금을 더 내려야 해 임대인의 반발이 거셌다.
최근 HUG가 담보인정비율을 80%로 추가 하향하는 계획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또 한 번 시장이 요동쳤다. 담보인정비율이 80%가 되면 보증보험 가입 요건은 공시가격의 112%까지 내려간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는 공시가격의 112%로 강화할 경우 전국 빌라의 약 69.1%가 기존 보증금으로는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자기 자본이 적은 ‘갭 투자’를 한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논란이 일자 HUG는 지난 9일 “현시점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담보인정비율의 하향을 검토하지 않는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세시장이 구조적인 한계를 맞은 만큼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의 전세시장은 지속 불가능한 구조다. 게다가 책임을 정부가 다 떠안는 상황이라 보증 비율을 낮출 수밖에 없다”라며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훨씬 낮아져야 소위 말하는 깡통전세나 무자본 갭 투자를 막을 수 있다”라고 짚었다.
정부는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도 강화했다. HUG는 임대인이 가입하는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의 기준도 임차인 보증보험과 동일하게 공시가격의 126%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임대사업자는 임대보증 제도 가입의 의무가 있는데, 미가입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기준 변경은 지난 7월부터 시행 예정이었지만 지연돼 2025년 1월 1일 시행(신규 기준)으로 변경됐다.
전세가 줄면서 고액 월세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UG는 최근 고액 월세 임대차계약의 보증보험 가입을 막기 위해 전세 보증 제도를 개편했다. 월세가 있는 경우 전월세 전환율 6.0%를 적용한 금액을 기준으로 전세보증금이 수도권 7억 원, 그 외 지역 5억 원 이하일 때만 가입이 가능하게 했다. 올해 12월 30일 신규 신청 건부터 변경된 기준을 적용한다.
다만 임 교수는 “우려하는 것처럼 월세화가 심하게 진행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라면서도 “정부가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세입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만드는 동시에 안전한 전세시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라고 짚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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