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며 ‘정신병원 평가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0년 의료법 개정으로 정신병원의 ‘의료기관 인증’이 자율로 전환됨에 따라 ‘의료질 저하’가 우려됐는데 이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보건당국이 정신병원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환자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병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3년 주기로 ‘정신건강증진시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2020년 이전에는 정신병원이 종별상 ‘요양병원’에 포함돼 ‘의료기관 인증’ 의무 대상이었다. 하지만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요양병원과 분리돼 의료기관 인증은 ‘자율’이 됐고, 의료질 저하 등의 우려에도 ‘정신병원 평가’만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정신병원 평가’ 제도의 빈틈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은 ‘병원장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지만, 양벌규정이 별도로 없다. 불합격 처리 후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홈페이지에 공표되는 데 그친다. 이에 병원들은 불합격하더라도 재평가를 받지 않고, 평가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140개소 가운데 1년 내 재평가를 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직전 평가에서 합격했던 춘천예현병원은 2022년 사망 사고 발생 이후 이듬해 평가를 거부했다.
병원의 이 같은 태도에 합격률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정신의료기관 평가 결과 현황’에 따르면 2021년 평가에서 정신병원 82곳 중 39곳이 합격해 합격률은 47.6%에 그쳤다. 2022년에는 64곳 중 40곳이 합격해 합격률 62.5%를 기록했다. 병원급 의료기관에 설치된 정신건강의학과의 합격률도 매 주기 하락했다. 주기별로 1주기(2012~2014년) 95.8%, 2주기(2015~2017) 68.8%, 3주기(2018~2020) 44.8%였다.
평가의 ‘실효성’ 지적도 나온다. 2016년 사망 사고가 났던 해상병원은 2021년 평가에서 합격했는데, 올해 사망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강박 지침 위반 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2021년 합격 평가보고서에는 ‘강박에 대한 규정이 있다’, ‘강박을 안전하게 시행하고 기록한다’ 항목 등에서 ‘상’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보다 엄격한 ‘의료기관 인증’을 받더라도 정신병원은 중간현장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우려가 남는다. 인증 사후관리 차원에서 진행되는 중간현장조사이지만 정신병원은 자체평가만으로 인증이 유지된다. 5월 강박된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더블유진병원은 2021년 의료기관 인증을 받았다. 병원이 당시 ‘적절하고 안전한 격리, 강박 규정이 있고 이를 준수한다’ 항목에서 ‘완전히 달성함’ 평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중간현장조사 평가가 있었다면 사망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오태훈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은 “정신의료기관들이 운영이 어렵고 인력을 채우기도 힘들어 현장조사가 제외됐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의료법 개정안 시행 초기부터 정신병원의 평가, 인증 관련 우려는 꾸준히 나왔다. 대한정신건강재단은 앞선 2021년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서 “주기를 거듭함에 따라 평가 기준과 방법이 강화돼 합격률이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합격에 따른 별다른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 불합격하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이 낮은 합격률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병원 내 격리, 강박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지난달 현장조사에 나섰다. 인권위 조사관, 정신장애 분야 전문가,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방문조사단이 전국 20개 곳 정신병원을 방문했다. 인권위는 인권침해 최소화 방안 등을 마련해 관련 부처에 권고할 계획이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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