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같이의 가치’라는 말이 있다. 10여 년 전 한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말이다. 함께하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멋진 카피다. 같이 한다는 것은 공감 혹은 소통을 뜻하고, 이 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 예술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때 가치를 지닌다. 공감은 시대정신과 보편적 예술 언어에서 나온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쉬운 미술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 시즌 10을 맞으면서 공자가 말한 ‘좋은 예술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는 작가를 응원한다.
예술가의 상상력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 과학이다. 서양 근대 문명을 이끈 과학 발전에 끊임없이 자극을 준 것은 예술이었다. 즉 예술이 과학을 이끌어왔던 셈이다. 그런데 산업혁명의 결실이 본격화된 19세기 들어서면서 이런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진화가 예술가의 상상력을 앞질러 버렸던 것이다. 현대 문명 시기로 일컬어지는 20세기로 들어서면 과학이 예술을 이끌고 있다.
과학의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예술 탄생의 촉매가 되는가 하면, 과학적 사고가 새로운 예술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새로움의 탐험으로 미학의 진화를 찾으려는 서양 예술의 생리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예술의 변신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적 사고는 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현대 문명의 새로운 동력으로 순수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디자인을 회화의 한 방법으로 본격 시도한 이는 후기인상주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다. 그는 도시의 유흥 이미지를 주제로 작품을 하면서 상업 포스터의 개념을 자신의 회화 기법으로 승화시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장식적 미술 양식으로 예술의 영역을 넓힌 아르누보(새로운 예술이라는 뜻)는 디자인의 요소를 회화의 표현 언어로 만들어주었다. 이 양식을 대표하는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1860-1939)는 여성의 미를 식물의 패턴과 결합하여 디자인적 감각의 회화를 보여주었다.
디자인의 시각적 요소를 본격 회화 언어로 만든 이는 추상화가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다. 기하학적 추상을 창시한 그는 회화의 기본 언어인 점, 선, 면, 색채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회화를 만들었다. 선과 색채가 정확한 구획과 비례의 조화를 이뤄 만드는 시각적 쾌감이 몬드리안이 추구한 예술성이다. 따라서 철저한 계산에 의한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정확한 시안만 있으면 작가 없이도 제작이 가능하다. 작가가 디자이너 위치에 있는 제작 방식인 셈이다.
디자인의 시각 효과를 극대화해 새로운 회화 언어로 만들어낸 것은 옵아트 작가들이었다. 이 계열을 대표하는 빅토르 바사렐리(1908-1997)의 작품은 패턴화된 디자인 문양으로 화면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보여준다. 이런 제작 방식을 회화적으로 바꾼 것은 팝아트 작가들이다. 팝아트 작가들의 회화에는 디자인적 요소가 기본 언어처럼 존재한다.
디자인계에서 자리를 굳힌 박영하는 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디자인 언어를 회화의 표현 기법으로 채택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넓히고 있다.
작가는 패턴화된 디자인 언어로 현대적 장식성과 일상적 아이디어를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순수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의 행보는 이 시대 새로운 미술 언어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좌표로 떠오르고 있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0] 김기섭-외로움의 풍경
·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0] 공예나-물건의 초상화
·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0] 한샘-부조리의 판타지
·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0] 엘리 정-캔버스 위의 파티시에
·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0] 김연-전쟁 같은 일상에 '쉼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