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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푸른 눈의 뉴요커는 왜 K팝 아이돌이 될 수 없었나

최초의 전원 외국인 아이돌 '이엑스피 에디션'의 의미있는 도전…성공 압박과 문화 충격 겪어

2024.09.03(Tue) 17:53:15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전원 외국인’ K팝 아이돌. 이제는 익숙해진 수식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멤버 전원이 외국인인 그룹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K팝 아이돌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K팝’의 정체성도 중요한 쟁점이 됐다. 특히 대형 기획사들이 해외에서 ‘현지화 아이돌’을 만들면서 ‘K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 질문를 무려 10여 년 전에 던진 그룹이 있다. ‘뉴요커 출신’ 보이그룹 이엑스피 에디션(EXP EDITION)의 이야기다. 


국내 최초의 전원 외국인 아이돌 ‘이엑스피 에디션’.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한국인=?

 

“‘K팝’이 무엇인가요?”. 내로라하는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에 물어도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K팝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라틴 팝’, ‘힙합’ 등과 같이 ‘음악적’ 장르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국적 그룹이 흔해지면서 더 이상 국적이나 인종만으로도 ‘K팝’을 정의 내리기 어려워졌다.

 

뉴욕 컬럼비아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김보라 대표는 K팝 업계에 ‘첫 질문’을 던졌다. “고등학교 때는 HOT 팬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이후에 미국 유학을 왔는데,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기서 만난 한 일본인 친구는 투애니원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사람들은 ‘K팝’을 통해서 한국을 처음 알게 되더라고요.” 

 

사회학과 미술을 전공하는 ‘한국인 여성’으로서 미국에서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당시에 제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풀어나갈 수 있는 작업은 단연 ‘K팝’이었어요. 한국의 대중문화가 K팝이 된 상황에서 제 의문은 ‘진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였죠. 자연스레 K팝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K팝이 미국 사회에 던지는 ‘순기능’도 있었다. “미국 사회는 전통적인 남자다움을 특히 중요시하죠. 그런데 K팝 아이돌이 인기를 얻으면서 아시아 남성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조롱의 대상이었다가, 지금은 매력적인 존재가 된 거죠. 이걸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또 예술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었습니다.”

 

K팝에서 ‘한국인’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김 대표는 뉴욕에서 ‘보이그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4년 여름, 졸업 전시를 목표로 아이돌 멤버를 모집했다. 

 

김보라 대표는 K팝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진=전다현 기자


이엑스피 에디션 오디션 모습.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던 ‘뉴요커’들은 김보라 대표의 ‘I’m Making A Boy Band’ 프로젝트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냈다. 오디션 경쟁률은 무려 150 대 1. “처음에는 실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촬영할 계획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K팝 보이밴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촬영할 거라고 했죠.”

 

그렇게 최초의 전원 외국인 보이그룹 ‘이엑스피 에디션(EXP EDITION)’이 탄생했다. 말 그대로 실험(Experiment)적인 그룹이다. 

 

이렇게 모인 6명의 ‘뉴요커’ 멤버들은 뉴욕에서 K팝 노래와 춤을 연습했다. 김 대표는 졸업반 친구들을 섭외해 앨범 사진을 촬영하고, 무대 의상을 만들고, 노래를 작곡했다. 콘셉트를 정하고, 음악을 만들 때는 모두가 모여 머리를 싸맸다. 뉴욕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에 초대를 받아 공연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꾸려나갔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제 디지털카메라를 팔아서 충당하는 식이었죠. 제가 가진 물건들을 조금씩 팔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K팝 아이돌 되기 위해 ‘애교’를 배웠다

 

김보라 대표의 졸업반 친구들과 함께 작업한 화보 사진.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엑스피 에디션 멤버들은 낮에는 식당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모여 춤을 연습했다.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장 중요한 건 한국에 가본 적도 없는 멤버들을 ‘K팝 아이돌’로 만드는 일이었다. 단순히 한국말로 노래하고, 단체 군무를 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김보라 대표는 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쳤다. “한국어 수업을 직접 하고, 예능 프로그램과 한국 문화도 소개했습니다. 모여서 ‘애교 수업’도 했어요. 애교의 개념부터 가르쳤죠. 다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었지만, 모두가 K팝 팬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K팝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따라 해보는 ‘문화 수업’도 했습니다. 멤버들도 프로젝트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화장을 하고, 예쁘게 꾸민 남성들의 모습도 ‘뉴요커’에겐 충격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나고 자란 시메 코스타(이엑스피 에디션 멤버)도 마찬가지였다. 시메는 이렇게 회상한다. “어릴 적 동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지역 축제와 전국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오페라와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제 인생에서 음악은 항상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가수가 되기 위해 미국 대학을 갔고, 이후 제 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가 됐죠.”

 

하지만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아 방향을 바꿨다. “당시 제 신분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뮤지컬 오디션을 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식당 서빙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던 와중 이엑스피 에디션 오디션을 알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K팝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노래 부르는 일은 좋았으니까요.”

 

이엑스피 에디션 멤버 시메 코스타는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올리브 농장을 운영하고, 아버지는 어부다. 사진=시메 코스타 제공

 

어릴적 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시메 코스타는 지역 축제와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당시 지역 신문에 실린 시메 코스타 모습. 사진=시메 코스타 제공

 

K팝 아이돌이 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큰 도전이었습니다. 서구의 남성성 개념 안에서 자란 우리는 처음 접하는 문화였습니다. 전부 배워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K팝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습니다. ‘빅뱅’의 무대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퍼포먼스는 뮤지컬 같았고, 무대의 흐름은 마치 연극 같았습니다. 완성된 무대를 보여주는 K팝에 점점 매료됐죠.”

 

멤버들은 프로젝트에 ‘진심’이었지만, 미국 사회는 비판적이었다. 김보라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은 ‘문화적 전유(한 문화집단이 다른 집단의 전통문화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한국인이 아닌데, K팝을 한다는 것을 두고 논쟁이 일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이슈도 됐죠.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한국에서의 경험, ‘트라우마’였다

 

미국에서 이엑스피 에디션은 존재 자체만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논란’으로만 끝날 수는 없었다. 2015년 봄, 이엑스피 에디션은 김보라 대표의 졸업 전시 날짜에 맞춰 음원을 발매했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한국’으로 왔다. 

 

“다음 수순은 당연히 한국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가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 멤버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는 한국으로 왔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소정의 돈을 모으고, 투자처를 찾았죠. 지인을 통해서 소액을 투자받고 아임어비비(IMMABB: I’m Making A Boy Band)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에 온 멤버들은 여느 K팝 아이돌과 같이 숙소 생활을 하고, 단체 연습을 했다. 김보라 대표는 한국어 선생님, 댄스 트레이너, 매니저를 직접 섭외했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이엑스피 에디션의 모습.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에서 공연하는 이엑스피 에디션의 모습.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이엑스피 에디션은 큰 호응을 얻었다. 전원 외국인, 그것도 백인 멤버라는 신선함이 통한 것. 2017년 LBMA 글로벌 KPOP 신인상과 국제 K-스타 어워즈 해외 아티스트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같은 해 서울한지문화제와 제8회 인천공항 bbb-day 캠페인 특임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여느 아이돌과 같이 ‘소속사’에 대한 불만은 없었을까. 시메 코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다른 아이돌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저와 보라 같은 관계는 아닌 걸 알 수 있었죠. 이 활동으로 돈을 벌지 못했고, 그런 걸 가족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는 괜찮았습니다. 당시에 돈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으니까요. 보라와는 친구 같은 관계였고, 한국에서 생활할 때도 숙식이 모두 제공됐습니다. 용돈도 받았죠. 정기적으로 보라의 어머니와 코스트코에 가서 먹을거리를 샀어요.”

 

한국에서 ‘승승장구’하던 이들은 팬데믹 이후 돌연 자취를 감쳤다. 김 대표는 이엑스피 에디션의 활동 중단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사업을 하려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예술을 하다 한국에 오니 사업이 된 경우인데, 사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방송국의 납득할 수 없는 요구나 업계의 이상한 문화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어요. 비용 문제도 있었습니다. 공연이나 행사도 했지만, 모든 게 적자였습니다. 멤버들 모두 향수병에 걸렸어요. ‘성공’에 대한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도 정말 컸습니다.”

 

김보라 대표가 겪은 K팝은 ‘희생’이었다. “K팝 업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열정으로 일하더라고요. 다들 개인 삶이 없었어요. 다 포기하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산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K팝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하고요. 활동을 끝내고 미국에 돌아왔을 때 다들 큰 트라우마를 겪은 느낌이었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멤버들과 김보라 대표는 한국 K팝 아이돌과 기획사의 관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친구 같은 관계였다. 사진=IMMABB​ 엔터테인먼트 제공

 

크로아티아에서 자라 미국에서 공부한 시메 코스타는 K팝 아이돌 생활을 어떻게 회상할까. “한국에 있을 때 연습실을 빌려서 사용했고, 그 장소를 다른 회사 연습생들도 사용했어요. 여자 연습생이었는데, 그들의 체중이 칠판에 기록돼 있었죠. 그걸 보면서 미국에서는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체계적이고, 구조화돼 있고, 딱딱한 분위기였습니다. 음악방송이 끝난 후에 모든 그룹이 줄을 서서 PD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을 이끄는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목소리를 높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시메는 애리조나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는 배우가 됐다. 부동산 중개도 함께 하고 있다. 시메는 이엑스피 에디션이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말한다. “뉴욕으로 막 돌아왔을 때는 제가 실패자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K팝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K팝에 열광하죠. 우리가 선두적으로 ‘K팝이 뭐야?’라는 대화를 시작했고, 누군가 이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미국에 K팝 육성 시스템을 가져올 때 우리의 경험을 자원으로 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는 미국 프로듀서가 본 K팝 아이돌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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