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무대 위 아이돌. 이렇게 최정상에 있던 인기 아이돌의 ‘사망’ 소식을 듣는 건 늘 황망하지만, 새삼스럽지 않다. 많은 ‘어린’ K팝 스타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마다 기획사의 시스템이 도마에 오른다. 어린 나이부터 엄격한 통제 속에 생활하는 탓에 정신적 압박이 심하다는 비판이다. 보이그룹 틴탑의 전 멤버였던 방민수 작가를 만나 아이돌을 그만둔 이유를 물었다.
#‘아이돌’만 아니었다면…
“띠리링….” 새벽의 희미한 벨소리는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난 민수는 아이돌 동료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클릭했다. 부고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도 힘들다 말한 적 없던 친구였다.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TOP100 귀’ 국민MC 유재석이 선택한 그룹. 지난해 MBC ‘놀면 뭐하니’에서 그들을 찾았다. 2010년 데뷔한 ‘2세대’ 아이돌에게 찾아온 흔치 않은 기회였다. 팬들은 환호하고, 대중은 이들의 노래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수는 제2의 전성기가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포기했다. 혹자는 그가 팀에 ‘재를 뿌렸다’며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그는 13년간의 아이돌 생활을 끝내 정리했다.
이제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방민수’로 방송을 한다. 민수는 막노동이 아이돌보다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직 아이돌 친구들에게 가끔 ‘고맙다’는 연락이 옵니다. 일면식이 없는 친구들한테도요. 그분들도 아는 거죠. 이 업계가 얼마나 이상한지를….”
민수의 표정은 후련했다. 아이돌에 미련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에게 물었다.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가수를 계속했을까요?” 찰나의 망설임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윽고 입술이 떨어졌다. “네. 가수였다면 그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저 랩 하는 거 아직도 좋아합니다.”
#13년의 아이돌, 불면증을 얻었다
18살. 그림을 사랑하던 민수는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무대 위의 가수들은 멋졌다. “멋있어 보여서 한 번쯤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도전한 거죠.”
연습생 기간은 짧았다. ‘랩’에 재능이 있던 그는 바로 데뷔 조에 합류했다. “소속사도 작았고, 자본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급박하게 준비하고 데뷔를 했죠. 연습생은 반년 정도 했습니다. 반년 동안 데뷔곡을 계속 연습했습니다.”
연습생이 된 후에는 학교를 가지 못했다. 민수의 하루는 매일 똑같았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운동을 했다. 이후 밤 10시까지 연습의 반복. 12시간 동안 춤과 노래를 했다. “월화수목금토일 똑같은 루틴으로 연습했죠. 라이브부터 춤까지 모든 동작을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무엇을 대중이 좋아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다’ 잘해야 했습니다. 춤도 열심히 추면서 라이브도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반년을 지냈습니다.”
19살. 민수는 ‘캡’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시작은 순탄했다. 업계에 흔한 ‘소속사와의 갈등’도 없었다. 히트곡도 여럿 생겼다. 그룹 이름에 걸맞게 ‘탑’ 아이돌이 됐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수익 배분도, 대우도 괜찮았습니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었죠. 결국 저라는 사람을 지워야 하는 일이니까요. 틴탑 캡은 방민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연기’한 것일 뿐이죠.”
시장이 커지면서 아이돌을 ‘상품화’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포토 카드를 팔고, ‘최애’ 아이돌과 프라이빗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들이면 아이돌과 직접 만나 사진을 찍거나 영상통화를 할 기회를 얻는다.
“제가 생각하는 아이돌은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이에요. 무대를 통해 대중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퍼포먼스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현실의 아이돌은 저를 성 상품화하는 일이었죠.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아이돌은 그걸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른 연예계 직군보다 아이돌에게 유독 잣대가 엄격한 것도 이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 뭉쳐야 산다
아이돌에겐 정신적인 압박과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 “주변 아이돌을 보면 10명 중 9명은 회의감을 느끼고 힘들어합니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티 내지 못하고, 계속 숨겨야 하는 거죠. 감정을 묵히고 묵히다 보니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느낍니다.”
민수는 불면증이 생겼다. 잠은 2~3일에 한 번 잘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혼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군대에 가서 관련 학점을 취득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13년을 버텼다. “사실 계속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때마다 멤버들과 지인들이 만류했죠.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2023년, 캡은 다시 방민수가 됐다. 그림을 좋아하던 민수는 작가가 됐다.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됐다. 카페도 운영하고, 가끔은 아르바이트로 ‘예초’ 작업도 한다. 종종 유튜브 방송도 한다. 아이돌이 아닌 작가로, 카페 사장으로, 유튜버로,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실 고민이 많았죠. 저랑 맞지 않는 일이란 건 처음부터 알았지만, 20대 중반이 되니 아이돌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컸죠. 그러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나마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운이 좋았던 거죠.”
그는 아이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돌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죠. 이걸 말하지 않으면 절대 풀어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노조를 만들잖아요. 아이돌도 뭉쳐야 해요. K팝 업계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꼭 있어야 해요.”
민수는 아이돌 산업이 사라지기보다 오히려 커져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의 경쟁력이 커지면 그만큼 문화산업도 중요해집니다. 산업이 커지면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가적으로도 K팝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기획사도 결국 소상공인이거든요. 전속계약서의 수정도 필요합니다. 투자 비용이 아까워 볼모로 잡아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회사원들도 내 연봉을 높이고 경력 쌓기 위해 옮겨가잖아요. 연습생은 1년, 전속계약은 5년 정도로 줄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 편에는 아이돌 부모가 본 K팝의 문제(하이라이트 멤버 부친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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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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