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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기술] 로커 김창완이 '삶의 허무와 통증'을 다스리는 방법

아린 감정을 피하기 보단 그대로 담아놓을 것…상처가 치유되는 과정도 행복의 일부

2024.05.20(Mon) 15:48:50

[비즈한국] 기자 재직 시절, 김창완 밴드의 로커 김창완을 배우로 인터뷰한 이력이 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 약속된 카페에 슬리퍼를 끌고 나른하게 들어온 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유의 따뜻한 미소와 비 갠 날의 바람결 같은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카페 주인장의 기타를 빌려 별말 없이 기타를 퉁기기 시작했다.

 

그런 김창완을 보다가 “혹시 신청곡도 받아주시나요?”라고 장난치듯 물었더니, 그는 “물론이지!”라고 답하며 첫 번째 신청곡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본연의 임무를 잊고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을 때쯤, 그는 “에이, 비와 관련한 노래는 이게 더 좋아!” 하며 자신의 또 다른 노래인 ‘비의 마음’을 불렀다.

 

사진=‘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유튜브 화면 캡처

 

인터뷰를 갔다가 의도치 않게 귀가 호사했던, 게다가 인터뷰 답변의 깊이도 헤아릴 수 없었던 경험 덕분에, 이후로 아티스트 김창완을 오래도록 좋아했다. 그래서 쉬는 날엔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다시듣기로 꽤나 열심히 들어왔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3월, 무려 23년간 김창완이 진행해 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이하 ‘아침창’)’가 종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3년간 자신의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직접 써온 그가 책을 냈다고 한다. 얼마 전 출시한 신간 서적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라는, ‘아침창’의 오프닝 멘트를 모은 에세이집이다. 김창완의 신간 소식을 접하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세바시’ 인터뷰 동영상 덕분이었다. 내용이 단순한 책 홍보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김창완의 인생관과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깨알 같은 질문이 가득했고, 그의 답변은 보석같이 빛났다. 주옥같은 김창완의 답변 중 가장 오래도록 필자의 귀를 사로잡았던 건, 프로그램 촬영을 주도하는 화면 너머의 여성 제작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마지막 질문이 나직하게 나왔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다 무의미해진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뭘 해도 이 무기력함을 극복 못하겠을 때,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 질문을 들은 김창완은 두 눈을 한 번 꿈뻑이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제가 많이 다치면서 배웠는데, 매일매일 그 통증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너무 많이 힘들어요. (그럴 땐) 통증을 껴안을 수 있는 내성을 기르는 것도 방법이에요. 마음에 방 한 칸, 방 한 칸도 힘들면 서랍이라도 하나 장만해 보세요. (그 마음을) 버릴 수는 없으니 통증이든 이별이든, 혹은 나를 갉아먹는 콤플렉스 등 이런 것들을 넣어두는 방 한 칸, 서랍 아니면 봉지, 그거 하나 마련해 놔요. 통증 하나가 마음을 다 흩트려 놓아서 다른 일이 안 되는 것, 그것만 피하면 돼요.”

 

살면서 어찌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허무함과 고통. 이런 감정을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그의 말에 어딘가 뒷통수를 한 방 ‘툭’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창완은 뒤이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통증은 없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고 하니까 담아놔요, 그냥. 이것도 내 건데. 그런데 말이에요. 나중에 보면 거기서 심지어 향기도 나요. 괜찮아요. 그런 것들이 자기를 풍요롭게 만들 거예요. 답이 될까?”

 

마지막 특유의 나른하고 나직한 어투로 “답이 될까?”라는 김창완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씩 미소가 지어졌다. 피할 수 없는 통증이라면 품어서 나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자양분으로 삼으라는 그의 말에, 어떤 무기력한 청춘은 팔딱 뛰는 새 기운을 얻을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통증으로 감각되는 상처는 없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아프다. 그런데 김창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통증을 경험하고 상처가 치유되는 그 경험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가 겪었던 그 통증과 상처는 후에 그 감정을 느껴본 것을 기회로 정말 중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판단의 기준 또한 배우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 경험이 내 마음과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게 통증을 담아둘 작은 방 한 켠, 혹은 서랍 하나를 만들어 두라는 김창완의 말은 인생을 오래 살아본 어른의 혜안과 같은 처방전이다. 그리고 그의 처방전에 따르면 통증과 상처는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러니 무서워하지도 무기력해하지 않아도 된다. 고통을 품고, 그냥 그렇게 아프면 아픈 채로 살아가는 것, 그게 인생이니까.​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베베스킨 라이프’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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