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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혁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사기 행각

열풍 분 암호화폐 '원코인', 대마 스타트업 '주시 필즈' 등 결국은 '폰지 사기'로 드러나

2023.08.30(Wed) 10:09:31

[비즈한국] 혈액 진단 키트 하나로 250여 가지 질병을 판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기업가치가 약 12조 원에 달했던 창업가가 있었다. 이를 통해 투자자로부터 1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같은 ‘만능 키트’는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 받던 창업가는 법정에 서게 된다. 이제는 모두 사기였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만 해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망한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이야기다.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포천’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의료 분야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던 그녀의 아이디어는 어디까지가 혁신이고, 어디부터 사기였을까. 명문대를 중퇴한 화려한 언변의 소유자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돈과 꿈을 투자했다. 언론은 열광했고,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혁신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떠오르는 별은 한순간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홈즈는 지난해 말 미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11년 형을 선고 받고, 투자자들에게는 4억 5200만 달러(60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포천’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 테크계에서도 혁신적 아이디어가 결국 사기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  

 

#유럽을 거점으로 한 코인 대통합 ‘원코인’

 

유럽 테크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기극은 ‘원코인(OneCoin)’ 사건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코인은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회사다.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꿈을 안겨주었던 이 회사의 결론은 암호화폐 기반의 폰지(ponzi) 사기였다. 폰지 사기의 원리는 돌려막기다. 실제로는 이윤이 창출되지 않지만, 앞으로 이윤이 창출될 것이라는 꿈과 희망을 기반으로 투자를 받는다. 투자를 받은 돈은 다른 투자자에게 수익인 것처럼 돌아간다. 쉬운 말로 다단계 금융사기라고 볼 수 있다.

 

원코인은 2014년 불가리아계 독일인 루자 이그나토바(Ruja Ignatova)가 창업했다. 루자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10세 때 독일로 이주해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에서 국제사법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다. 

 

여전히 FBI의 수배 대상에 올라 있는 루자 이그나토바. 사진=FBI


원코인은 다른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채굴이 가능하며, 별도의 결제 시스템을 통해서 실제 화폐로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코인이 암호화폐를 유통하기 위해서 처음 설계한 비즈니스 모델은 ‘강의자료 판매’다. 회원가입 후 암호화폐 관련한 강좌, 교육자료 등의 학습 패키지를 구입하면, 여기에서 덤으로 암호화폐 토큰을 채굴해 지급한다. 단, 사용자가 직접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원코인 회사가 채굴해 주는 방식이다. 교육 상품의 특성상 이를 사용하면 환불이 어렵기 때문에 위탁 채굴 방식을 이용했다. 

 

문제는 원코인을 받을 수 있는 교육 상품의 구입 방식이 철저하게 1대1 소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최하 200달러에서 최고 30만 달러까지 투자해 상품을 구입하면 사업자 자격이 생겨 다른 사람에게 상품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투자하도록 소개하면 그 투자액의 10%를 소개한 사람이 가져가는 구조다. 일반적인 다단계 방식과 차이가 없다. 루자 이그나토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단계 회사인 암웨이, 애터미, 뉴스킨 등의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서 이보다 더 좋은 유통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이런 수익 구조는 끊임없이 다른 이의 투자로 자금이 수혈 되어야만 굴러갈 수 있다.  

 

투자 유치 수수료의 일부가 통장에 꽂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열광했다. 불가리아, 독일, 영국을 비롯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베트남, 중국, 한국 등 전 세계에 원코인 열풍이 불었다. 2014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수십 개의 국가에서 약 40억 유로(5조 7000억 원) 이상이 투자되었다. 

 

원코인에는 암호화폐를 작동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부재했다. 루자 이그나토바가 원코인 아이디어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자자를 모으는 동안 실재하지 않는 블록체인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회사는 전문 엔지니어를 고용하려고 물밑 작업을 한다. 추후 원코인의 실체를 폭로한 블록체인 전문가 비욘 비예르케(Bjorn Bjerck)가 그 대상이었다. 비예르케는 “2016년 10월 헤드헌터로부터 불가리아 암호화폐 스타트업의 CTO 역할을 제안 받았다. 아파트와 자동차가 제공되고 연봉으로 25만 파운드(4억 2000만 원)를 받는 조건이었다. 그 회사는 이미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있었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없었다. 단순히 숫자만 찍어내고 있었다. 헤드헌터에게 회사의 이름을 물었더니 ‘원코인’이라고 답했다”고 증언한다.

 

2016년 당시 불가리아 소피아에 있던 원코인 사무실. 사진=위키미디어코먼스/Ronny Martin Junnilainen

 

2017년 원코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다는 소문이 돌자 루자 이그나토바는 돌연 잠적했다. 이어 그의 남동생인 콘스탄틴 이그나토바(Konstantin Ignatova)가 원코인을 이끌게 된다. 콘스탄틴은 2019년 미국 LA에서 돈세탁 및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다. 원코인은 결국 역대 최대 규모의 국제 금융사기라는 기록을 남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루자 이그나토바는 여전히 수배 중이며,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원코인의 수익을 광고하는 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기존 기득권 세력이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녀사냥으로 원코인을 몰아갔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소액 대마 재배투자가 결국 폰지 사기로 드러나

 

최근에는 독일의 대마 관련 스타트업이 스캔들에 휩싸였다. 지난해 7월 베를린 검찰은 불법 폰지 사기를 이유로 대마초 관련 스타트업 주시 그로우(Juicy Grow GmbH)의 대표 앨런 글랜즈(Allen Glanse)를 기소했다. 글랜즈는 “나는 모회사 주시 필즈 홀딩스의 대주주 러시아인 세 명의 허수아비였다. 나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주시 그로우는 2020년 2월 베를린에 설립된 대마 관련 스타트업이다. 2021년 10월에 첫 제품이 출시됐다. 독일에서 곧 대마가 합법화된다는 전망 속에서 관련 스타트업이 한창 뜨던 시기였다. 주시 그로우는 대마 관련 스타트업 중에서도 가장 많이 주목을 받았다. 대다수 스타트업이 주로 의료용 대마를 재배하거나 대마 성분이 함유된 다양한 기호식품을 생산하는 것과 달리 주시 그로우는 그들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주시 필즈 웹사이트는 아직도 살아 있다. 사진=juicy fields


독일에서 대마 생산 및 판매가 합법화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주시 그로우는 웹사이트 주시 필즈(Juicy Fields)를 열고 대마 재배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상품을 판매했다. 투자자와 대마 재배자를 연결해주는 이 플랫폼에서는 최소 50유로(7만 원)가량 대마 재배에 투자하면, 108일 후 수확물 판매를 통해서 68~83유로(10만~12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소액 투자로 부담이 없고, 플랫폼을 통해 재배자와 연결이 되면 이들이 알아서 재배, 수확, 유통을 해준다. 이 아이디어는 평소 대마를 접하지 않은 많은 소비자들까지 이 산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전도했다. 주시 필즈 플랫폼을 통해서 최대 18만 유로까지 대마 재배에 투자하고 매달 약 10%~18%의 수익을 얻는 이 모델에 많은 사람이 열광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국, 호주, 뉴질랜드까지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이 사업에 투자했다.

 

작동방식은 단순했다. 처음 적은 금액을 투자한 사람에게 약속한 날짜에 수익을 가져다준다. 이들이 점점 많은 돈을 투자하게 만드는 유인책이었다. 투자자들은 손에 쥐어진 수익을 보고 주변의 가족과 친구에서 열성적으로 이 사업을 홍보한다. 소개 수수료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좋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처음 50유로를 투자해 80유로의 매출을 내자 다시 100유로를 투자하고, 이후 1000유로, 1만 유로까지 투자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시 필즈는 SNS에 매우 공격적으로 홍보를 진행했고, 대형 박람회의 제1 후원사로 지속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매우 높아졌다. 사람들에게 점점 신뢰감을 주는 브랜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2022년 3월이 되어서야 독일 금융감독위원회 바핀(Bafin)은 이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해 감독에 들어갔고, 광고 내용과 실제가 불일치한다고 발표했다. 그제야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돈이 정말 대마 재배자에게 건네졌는지 의심하게 됐다. 실제로 투자금이 재배자에게 투자되지 않은 정황이 포착됐지만, 이미 회사는 금융 당국의 규제를 피해 거점을 베를린에서 네덜란드와 스위스로 각각 분산 이전했고, 자금도 대부분 빼간 뒤였다.

 

주시 필즈는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여전히 재판 중이다. 투자자들이 플랫폼에 더 이상 로그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후의 누군가는 유튜브에 제2의 주시 필즈가 곧 출시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기기도 했다. 아직 정확한 피해액조차 산출되지 않았는데, 원코인 사례와 피해 규모가 맞먹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투자자는 누구나 적게 투자해서 크게 벌기를 바란다. 투자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사기와 창업은 한 끗 차이가 된다. 사람들의 내밀한 욕망을 자극하면 할수록 돈과 관심이 모이는 것을 목격하고, 실체 없는 아이디어는 어느 순간 점점 부풀려지고 포장된다. “빨리 투자 받아 실체를 만들면 된다”거나 “아직 아이디어 단계지만 시간과 돈만 확보된다면 금방 실현된다”라는 안일하고 모순된 생각을 버팀목 삼아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망치는 창업의 가장 안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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