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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뒤 '빨간 건물' 국립극단 자리에 '멀티플렉스'? 연극계 한탄하는 까닭

민자방식 15층 복합문화시설 조성…"돈 안 되는 기초예술공간 없앤다" 반발에 문체부 "공연예술 중심 구성"

2023.06.19(Mon) 16:43:11

[비즈한국]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예매했어요. ‘믿고 보는’ 국립극단 연극이었는데 아쉽습니다. 보존과 소멸을 다룬 이야기를 끝으로 극장이 문을 닫는다니 아이러니하네요.”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폐관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역 15번 출구 맞은편 부지에는 전면이 빨간색으로 칠해진 낮은 컨테이너 건물들이 있다. 생소한 외관을 하고 있지만, 완성도 높은 연극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봤을 법하다. 이곳은 문화시설이라는 현재의 모습과 사뭇 다른 과거도 품고 있다.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수송대 터였던 부지는 2010년 공연장과 연습실로 쓰일 가건물이 세워지며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극장 폐관 후 새롭게 조성되는 복합문화시설을 두고 문화체육부와 연극계의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한국 연극의 거점 공간이라는 기대를 안고 시작한 극장은 이번 달 씁쓸함을 남긴 채 퇴장한다. 얼마 전 마지막 공연도 마쳤다. 이 자리에는 3년 뒤 지상 15층, 지하 4층 규모의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선다. 극장이 조용히 문 닫을 준비를 하는 반면 새 시설을 두고는 조성 계획 발표 후부터 1년 반 가까이 진통이 끊이지 않았다. 공연계의 미묘한 입장차도 갈등을 키웠다. 새 복합공간은 ‘멀티플렉스’ 강행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컨테이너 극장 철거, 1244억 원 들여 15층 복합시설 세운다

15일 오후 다시 찾은 극장은 구조물과 물품을 정리하는 인력들 외에는 방문객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18일까지 상연됐어야 할 공연은 11일부터 남은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연극 포스터는 대부분 내려갔고 티켓 부스도 비어 있었다. 7일에는 ‘다시 만나요, 서계동’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보존과학자’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는 극장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하 아무개 씨(30)는 “색다른 연극을 볼 수 있고 쉴 공간도 넓어 회사 문화행사 때마다 동료들과 방문했다. 지인에게 소개할 정도로 매력 있는 공간인데 곧 사라진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프로덕션 사정으로 11일 조기 종연했다”고 설명했다. 

극장은 지난 11일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폐관을 준비 중이다. 사진=강은경 기자

극장은 지난 11일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폐관을 준비 중이다. 사진=강은경 기자


이 부지에는 3년 후 연극, 무용, 뮤지컬을 아우르는 15층 규모 복합문화시설이 조성된다. 총 사업비 1244억 원을 들여 올해 착공, 2026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휴공간이 많았던 지금에 비해 형태나 구성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현재는 각각 180석, 100석의 객석을 갖춘 두 극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대극장(1200석), 중극장(500석), 소극장(100·200석·300석) 등의 공연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이곳에선 폐관까지 1년간 넘게 극장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됐다. 정부가 ‘돈 안 되는’ 기초예술 전용 공간을 축소하고 그 자리에 ‘콘서트장’ 내지는 ‘멀티플렉스’ 개발을 추진한다는 데 대해 비판이 일었다. 연극을 올리는 극장은 마이크 없이도 대사가 전달되는 정도의 규모가 많다. 비교적 큰 극장의 경우에도 객석 수를 늘리는 것보다 관람 집중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게 여겨진다. 업계에 따르면 민간 극장은 운영난 때문에 거의 고사 상태다. 탄탄한 기초예술이 상업문화의 기반이 되는 만큼 자생을 돕는 문화정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는 새 시설이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장르에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수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발 방식 때문에 우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계획 발표 직후 공청회에서는 전면 백지화 등 강한 반대도 이어졌다. 당시 심재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은 “오랜 기간 연극계가 어렵게 사용해온 공간이다.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타 장르와) 분배하겠다는 식의 발상이 경악스럽다”고 지적했다. 

#“멀티플렉스 강행” 논란으로 진통…수익성 집중될까 우려도

문체부는 부지 개발을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Build Transfer Lease)으로 추진한다. 민간사업자가 시설물을 짓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유권을 정부에 양도하는 방식이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한 공공시설을 정부가 임대 사용료를 지불하고 일정 기간 빌리는 형태라 수익성을 추구한다. 기능적으로 연관된 시설을 함께 입주시키는 복합화 사업이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새 복합문화시설에는 행복주택과 식당·카페 등의 민간 수익시설이 들어선다. 행복주택은 예술인 임대주택으로 계획됐는데 민간참여 공모방식으로 200호가 건립될 예정이다. 이 시설의 민간사업자는 20년간 시설에서 나오는 수익 외에 정부로부터 운영비 1004억 원을 받게 된다. 2014년 기본계획을 세운 문체부는 2018년 민자 적격성 검토 등을 거쳐 2021년 사업 계획을 고시, 지난해 초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 

지난해 6월 한국연극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건립 계획’ 항의 집회가 국립극단 앞마당에서 열렸다. 사진=한국연극협회


사업은 기존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와 국립극단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민간사업자와 구체적인 내용을 협상 중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 검토와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착공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건물 일부가 문체부와 국립극단의 업무 공간으로 이용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모든 문화공연 시설에 공연장만 있는 건 아니다. 운영 관리를 위한 사무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카페나 식당 등이 들어오는 것인데 조금 더 규모가 커지는 정도”라며 “상업시설도 기념품숍 등 예술산업 관련 시설들이 먼저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범연극인 연대의 단체 행동까지 이끌어낼 정도로 깊었던 갈등이 근본적으로는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수익성에 방점이 찍혀 공공재로서의 극장 역할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김경익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은 “기업 건물 안에 자리 잡은 몇 층짜리 문화공간이 아니라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이 조성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문체부가 서울시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인 데다 상당 수준 진행된 내용을 민간 협회 차원에서 막거나 원점으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생업이 있는 연극인들이 넋 놓고 계속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한탄했다.

문체부는 BTL 방식을 향한 회의적인 시선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는 문체부가 운영하는 공공시설이라며 선을 그었다. 민간 사업자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 7월 민간 사업자 선정 후 건설, 무대·콘텐츠, 유지·관리, 재무 등 4개 분야로 구성된 자체 협상단을 꾸려 논의하고 있다. 모든 시설을 기본적으로 공연 예술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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