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엔터

[정수진의 계정공유] '재벌집 막내아들' 흥행을 지켜보는 복잡미묘한 시선

후반 갈수록 모순에 빠지는 오락가락 전개…재벌 악습 총망라한 진양철 회장의 인기가 주는 씁쓸함

2022.12.23(Fri) 11:21:07

[비즈한국]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는 시선은 묘하다. 드라마에선 보통 주인공에 응원을 보내고, 주인공에 적대적인 캐릭터에 힐난의 눈초리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엔 엄밀히 말해 응원을 보낼 만한 주인공이 없다. 재벌그룹 순양에서 머슴처럼 일하던 윤현우(송중기)가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재벌가의 막내 진도준(송중기)으로 회귀했을 때는 그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순양그룹 오너 일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윤현우가 죽음을 맞으며 어찌된 영문인지 1987년, 순양그룹의 막냇손자 진도준이 되어 눈을 뜬다. 환생인지 빙의인지 회귀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건 기회다. 사진=JTBC 제공

 

‘재벌집 막내아들’ 1화의 윤현우는 직장생활 하는 사회인의 비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캐릭터다. 고졸 출신으로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 팀장이란 번듯한 명함으로 출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업무는 오너 일가의 뒤치다꺼리로, 그 실상을 아는 이들은 모두 그를 머슴처럼 취급한다. 운 좋게 머슴 중의 왕인 집사나 마름이 될 기회를 잡고 순양그룹의 비자금을 찾아 해외로 갔지만, 철저히 이용당하고 살해당하는 불운의 캐릭터. 그런 그가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모든 기억을 지닌 채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막내아들의 막내아들, 그러니까 막냇손자가 되어 1987년에 깨어난다. 웹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회귀물 설정이다.

 

돈이 최고의 정도경영(正道經營)이라 여기는 진양철 회장. 보편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진양철 회장은 선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악역이지만, 이성민의 몰입도 높은 연기로 시청자들을 설득시켰다. 사진=JTBC 제공

 

미래를 알고 과거에 온 자는 ‘먼치킨’일 수밖에 없다. 윤현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진도준 역시 그렇다. 갓 열 살 넘은 꼬마아이지만 당시 정세를 기억하고 진양철 회장에게 대선자금을 줘야 할 인물을 충고하고, 그로 인한 보상으로 돈 대신 분당 땅을 받아 240억이라는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얻게 된다. 진도준이 재벌가 막냇손자라는 막강한 배경과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과정은 시청자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순양그룹에서 일하던 40대 남성이었던 윤현우의 상식과 경제 지식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 과거로 회귀하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큰돈을 만져볼 가능성이 높다. 하다못해 아마존이나 삼성에라도 투자할 테니까.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이미 내가 진도준이라면 어디에 투자했을 것인가를 흐뭇한 미소를 띠고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정신차리자, 그건 윤현우가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핏줄을 나눈 가족이지만 돈이 최우선이라는 진양철 회장의 자식들답게 진 회장 일가는 호시탐탐 순양을, 혹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얻고자 몸부림친다. 그들만의 리그를 쌓는 화려한 혼맥이 더해질수록 부와 권력을 향한 탐욕은 더 커지는 형국이요, 심지어는 살인교사까지 일어난다. 사진=JTBC 제공

 

윤현우, 아니 진도준에게 무의식적으로 감정이입하고 열광하는 건 딱 그가 돈을 불리기까지. 도준은 윤현우인 자신을 죽인 순양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자 자신이 순양을 돈으로 사들이려 마음먹는다. 현우를 죽인 인물이 순양그룹 첫째아들 진영기(윤제문)의 아들인 진성준(김남희)인지, 아니면 둘째아들 진동기(조한철) 쪽이거나 딸 진화영(김신록) 쪽인지, 혹은 다른 인물인지 알 순 없지만 그게 누구든 순양그룹을 차지하려는 사람임은 확실하니까, 순양을 아예 삼키겠다는 진도준의 계획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동력은 희석된다. 남편이 아진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그 충격으로 심장마비로 죽은 윤현우의 엄마(서정연)가, 순양그룹 비자금 조성을 위한 주식 작전 세력에 희생당하며 자살하는 결말로 바뀌며 진도준의 복수심은 커지는 듯 했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그렇게나 애달프게 윤현우의 엄마를 살리고자 했던 진도준이지만 윤현우의 아빠나 몸이 아팠던 윤현우의 동생은 그의 우선순위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14화에서나 진도준은 현실의 고단함에 절어 있는 윤현우를 우연히 마주할 뿐이다.

 

서민영 캐릭터는 여주인공 롤이지만 안타깝게도 진도준의 형수이자 순양가 손자며느리 모현민 캐릭터의 존재감에 미치지 못한다. 진도준이 된 윤현우로 인해 서민영 검사의 미래의 활약(순양그룹 저승사자)도 달라지게 될까? 사진=JTBC 제공

 

더 아이러니한 건 진양철 회장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 ‘진양철 회장 때문에 드라마 본다’라는 세간의 평은, 진양철 회장의 분량이 적은 회차에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답보하는 것으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13화에서 진양철 회장은 사망했지만 아마 끝나는 순간까지 곳곳에 회상 장면으로 나오는 등 존재감을 놓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사실 진양철 회장은 한국 재벌들의 악습을 총망라한 존재다. 정경유착, 불법증여 및 편법승계, 비자금 조성 같은 모든 범죄의 핵심에는 진양철 회장이 있다. 돈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신념 또한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진양철 회장 캐릭터엔 모순이 많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인물은 가족이라 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인물이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핏줄들을 용서한다. 경쟁자에게 협력하며 뒤통수를 쳤던 둘째아들 진동기도, 회삿돈을 횡령해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경영권까지 잃은 고명딸 진화영도,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하여 결국 사업 수주에 실패한 장손 진성준도 벌을 줄지 언정 처절히 내치진 않는다. 순양과 무관한 삶을 주장하고 허락하지 않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진도준의 아빠인 셋째 아들 진윤기(김영재)네 가족을 10년 세월 동안 외면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나?

 

미래를 알고 온 진도준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놀라웠던 진양철 회장. 진양철 회장을 연기한 이성민의 열연은 ‘재벌집 막내아들’ 흥행의 원동력이었다. 진양철 회장에 대한 기이한 지지는 ‘선덕여왕’의 미실을 향한 지지와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사진=JTBC 제공

 

절대 호감을 살 수 없는 캐릭터이자 모순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성민의 강렬한 연기로 진양철 회장에 대한 지지는 어마어마하다. 진양철에 대한 지지가 도덕이고 나발이고 어찌됐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한 자락인 것 같아 씁쓸하다면 내가 비뚤어진 걸까? 심지어 사람들은 아내에 의해 죽을 뻔하고, 죽기 전 섬망으로 나약한 노인이 되어 버린 진양철의 모습에 안쓰러움까지 느낀다(동시에 ‘그래, 재벌이면 뭐해’라는 자기위안도 얻는다). 나라를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재벌가와 그에 대항하는 힘없는 서민의 모습을 그렸던 2012년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에서는 시청자들이 한오그룹 서동환 회장(박근형)에게 경외감을 느꼈을진 몰라도 지지하는 인물은 그 일가에 대항하는 백홍석(손현주)이었다. 그러나 10년 뒤인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서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진도준보다도 진양철에 대한 지지가 더 크다. 10년 사이 변한 것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다’란 체념 어린 마음 같아서 서글픈 감이 든다. 진양철 회장이 아들보다 더 신뢰한 수족 이항재(정희태)가 14화에서 진도준을 배신한 것에 놀라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진양철 회장마저도 이항재에게 제대로 된 치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 것도 서글프다.

 

6.1%로 시작해 14회에서 24.9%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보인 파죽지세의 ‘재벌집 막내아들’은 JTBC 드라마 역대 시청률 1위를 넘보고 있다(현재 1위는 28.4%의 ‘부부의 세계’). 남은 15, 16화에서 시청률 기록을 쓸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의 인기와는 별개로 진양철 회장의 가치만큼은 얼른 잊혀지기 바란다.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이 모든 신념을 이기는 세상에 살고 싶진 않으니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별로 없는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 [정수진의 계정공유] 여왕이 떠나고 보니 더욱 애틋한 '더 크라운' 시즌5
· [정수진의 계정공유] 악인들이 벌이는 아사리판 생존극, '몸값'
· [정수진의 계정공유] '20세기 소녀', 90년대 추억팔이에 언제까지 응답할까
· [정수진의 계정공유] 무대를 준비하는 뮤지션의 희로애락, '테이크 원'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