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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하도급법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보호하는 이유

중소기업 특성상 기밀정보 보관 및 유지 한계…실손해 배상 원칙상 피해복구 불가능

2022.11.21(Mon) 11:03:27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회사 영업비밀이 유출 또는 침해됐을 때 이로 인한 손해를 민사소송으로 전부 배상받기는 어렵다.


회사의 영업비밀이 유출 또는 침해된 경우 대응 조치나 구제 수단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부정경쟁방지법상 금지하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이유로 민사소송·형사고소를 제기하는 것과, 형법상 배임죄를 이유로 형사고소를 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형사소송으로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배임죄의 경우 성립요건으로 재산상 손해가 있기 때문에, 영업비밀 침해로 발생한 손해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배임죄 성립을 인정받기 어렵다. 예를 들어 회사 기밀이 유출됐지만 경쟁업체가 이를 보관만 하고 실제로 관련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경우 손해 발생 여부가 애매하므로 배임죄를 주장하기 쉽지 않다.

 

형사고소를 하면 경찰이나 특허청에서 수사관을 배정한다. 수사기관마다 영업비밀을 수사하는 전담부서가 있지만 일반 고소 사건에 전문성 있는 수사관이 배정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우리나라 법 제도는 실손해 배상이 원칙이므로, 실제 입은 손해 이상으로 배상받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손해 배상 원칙은 실제 입은 손해만큼 배상해 준다는 것처럼 들려서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실손해 배상 원칙에 따라 민사소송에서 손해 전부를 구제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손해의 전부를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원·피고 공방을 통해 청구 금액 중 일부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원고가 자신의 권리를 보전하는데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법원이 손해액의 수십 퍼센트를 감액하는 경우(과실상계)도 있다.

 

비용 문제도 있다. 고난도의 영업비밀 관련 민사소송의 경우 법률가 조력이 필수적이고 그 과정에서 거액의 비용이 소모되는데, 현재 우리나라 민사소송 제도에서는 그 비용 전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민·형사소송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데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을 맞추고 이를 입증하기도 까다로워서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언제 성립할까.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의 성립요건은 경제성, 비밀 관리성, 비공지성 등이다. 대기업은 예산이 넉넉해 영업 비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기업에선 직원 PC의 하드 디스크, USB 등을 전부 제거해 작업 중인 파일을 회사가 관리하는 클라우드에 업로드하게 한다. 클라우드 접속, 파일의 열람·수정 등은 회사로부터 권한을 받은 직원만 할 수 있다. 파일을 출력하거나 복사할 땐 자동으로 해시값이 포함된 워터마크와 함께 비밀문서임이 표기된다. 이렇게 정보와 문서를 관리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밀 관리성이나 비공지성을 입증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엄청난 비용을 소모하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허술하게 기밀정보를 보관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영업비밀 유출을 인정받는 것 자체가 큰 과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원치 않게 영업비밀을 누출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국내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과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거래 상대방인 대기업이 신제품 출시를 위한 동향 파악이나 납품하는 제품에 대한 AS 관리 등을 이유로 도면·시방서·사양서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거절하자니 거래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되고, 제공하자니 스스로 비밀 관리성과 비공지성을 포기하게 돼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길이 없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이처럼 기존 민·형사제도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데 부족하다는 문제가 나오면서 최근 개정된 하도급법에 기술자료 보호제도가 도입됐다. 하도급법은 하도급 거래가 적용되는 거래에서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하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 또한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필요성을 벗어난 과다한 범위의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한다.

 

예를 들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품질 검증’이라는 사유론 품질 검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금형 설계도면을 요구하는 것은 위법이다. 또한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기술자료를 요구했더라도 사전에 요구목적, 권리귀속 관계, 대가 등을 협의해 정한 서면을 수급사업자에게 교부하지 않으면 법에 위반된다. 

 

원사업자에게 사전서면 교부 의무를 부과하는 건 과거 원사업자가 이런저런 구두상의 이유로 자료를 받았지만, 이후 요구 사실이나 기술자료 제공 사실 자체를 부인해 수급사업자가 입증 부족으로 곤란함을 겪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자신이나 제삼자를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원사업자가 입찰 과정에서 수급사업자로부터 기술자료를 받은 후 이를 다른 중소기업에 제공해 저가로 입찰에 참여하게 하거나, 품질관리 명목으로 협력사인 중소기업에 제조공정도·작업표준서 등의 기술자료를 요구해 손쉽게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대표적인 부정 사용 사례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형사고소 횟수와 비중이 높은 것은 실손해 배상 원칙이 지배하는 민사소송으로는 손해를 배상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비밀 또는 기술자료 침해 사건의 경우, 사안이 전문적이어서 형사고소를 통해서도 보호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사업자-수급사업자 간의 거래는 대·중·소기업 간의 거래로서 거래상 지위에 격차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하도급법으로 보호 받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최근 하도급법 개정으로 관련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하도급 거래라도 어디까지나 사적 거래이므로 국가의 개입이나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관련 민사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하도급법을 통한 규제는 불가피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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