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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여수 여행 ① '밤바다'보다 이순신과 역사 기행

거북선 탄생한 '선소', 하멜 억류 생활 볼 수 있는 하멜전시관, 여순사건 희생자 묻힌 만성리형제묘 등

2022.03.08(Tue) 15:24:16

[비즈한국] 밤바다 아름다운 여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여수는 조선 수군의 근거지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중요한 해군기지였다.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조선을 탈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문 곳도 여수였다. 또 여기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이 벌어졌다. 

 

여수시 시전동의 선소유적은 조선 수군이 배를 만들던 곳이다.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바닷가에 자리 잡은 데다 앞바다엔 가덕도와 장도가 막아서고 있어 안심하고 배를 만들기 편했다. 거북선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던 곳, 선소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가 되어 당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로 부임했다. 늦깎이로 무과에 급제해 아직 벼슬이 높지 않았던 이순신에게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선조가 간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을 구한 ‘신의 한수’가 될 줄은 선조 자신도 몰랐으리라.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부임한 이순신은 곧바로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나라는 동인, 서인으로 갈려 여전히 ‘일본이 곧 쳐들어올 것이다’,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싸우던 시절이었다. 조정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이순신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 전함과 화포를 만들고, 아군과 적군을 나눠 실전 훈련을 거듭했다. 이렇게 탄생한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바다.

 

선소를 지키는 벅수. 사진=구완회 제공

 

여수시 시전동의 선소유적은 조선 수군이 배를 만들던 곳이다.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바닷가에 자리 잡은 데다 앞바다엔 가덕도와 장도가 막아서고 있어 안심하고 배를 만들기 편했다. 이런 까닭에 선소에는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들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여수의 선소가 유명해진 것은 1980년대의 발굴 조사를 통해 이곳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하던 ‘굴강’, 칼과 창을 갈고 닦았던 ‘세검정’, 수군지휘소인 ‘선소창’,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 수군들이 머물던 ‘병영막사’ 등이 복원됐다. 

 

#네덜란드인이 겪은 조선의 마지막 밤, 하멜전시관

 

조선에 억류된 헨드릭 하멜이 여수 땅을 밟은 것은 1663년이었다. 일본으로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한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이곳에서 3년 6개월을 지낸 하멜 일행은 치밀한 준비 끝에 조선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멜의 여수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전라좌수사는 이들의 노역을 모두 면제해주고 자주 연회를 베푸는 등 손님 대접을 톡톡히 했다고 전한다. 하멜표류기에도 “이렇게 좋은 조선 관리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물론 이역만리 타국의 생활이 마냥 편했을 리 없다. 더구나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억류되어 지내는 것이었으니. 거기다 새로 온 전라좌수사는 하멜 일행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재미있는 점은 하멜 일행을 잘 대해준 관리는 백성들에게도 선정을 베풀었고, 이들을 괴롭히던 관리는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탐관오리였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하멜 일행은 오랫동안 치밀하게 탈출을 준비한 끝에 마침내 일본을 거쳐 고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여수시 하멜로에 있는 하멜전시관. 그 무렵 국제정세뿐 아니라 서양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조선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사진=구완회 제공

 

하멜의 자세한 여정은 여수시 하멜로에 있는 하멜전시관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 무렵 국제정세뿐 아니라 서양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조선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여순사건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무덤, 만성리형제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마래터널을 지나면 여수 만성리형제묘가 나온다. 거대한 봉분 앞에 ‘형제묘’라 쓰인 비석이 보이지만, 여기 묻혀 있는 망자들은 형제가 아니다. 여순사건 당시 부역혐의자로 몰린 민간인 125명이 이곳에서 재판도 없이 집단 학살됐다. 불에 탄 시체가 뒤엉켜 누가 누군지 확인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유족들은 이들을 한 곳에 묻고,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였단다. 

 

여순사건 때 무고한 민간인의 억울한 죽음은 만성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제주도 4·3사건 진압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군인들의 반란은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지만, 비극은 그 뒤에도 오래 지속됐다. 군사반란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민간인들이 ‘부역자’ 혹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집단 학살당했던 것이다. 만성리 형제묘에 묻힌 이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여수 만성리형제묘. 여순사건 당시 부역혐의자로 몰린 민간인 125명이 이곳에서 재판도 없이 집단 학살됐다. 불에 탄 시체가 뒤엉켜 누가 누군지 확인할 수도 없어 유족들은 이들을 한 곳에 묻고,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였단다. 사진=구완회 제공

 

2021년 국회는 여순사건 특별법을 통과시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의 첫발을 떼었다. 여순사건이 일어나고 73년 만의 일이다. 드디어 만성리형제묘에 묻힌 이들의 억울함도 풀릴 길이 열린 셈이다. 

 

<여행정보>


선소유적

△주소: 여수시 선소마을길 33

△문의: 061-659-4756

△관람시간: 상시

 

하멜전시관

△주소: 여수시 하멜로 96

△문의: 061-659-5706

△관람시간: 09:00~18:00, 월요일 휴관

 

만성리형제묘 

△주소: 여수시 만흥동 1491

△문의: 1899-2012(여수시청)

△관람시간: 상시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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