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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약 스토리] 33호까지 나온 K-신약 '아직 갈 길 멀었다'

연구개발비 계속 늘었지만 독보적 기술 아쉬워…글로벌 시장 진출 '걸음마 수준'

2021.04.20(Tue) 14:57:25

[비즈한국]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더디게 발전했다. 국가 주도로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제약 산업은 기초 과학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요즘, 우리나라는 ‘카피약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선진국과 나란히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즈한국’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제약 산업이 지닌 잠재력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쳐본다.

 

제약업계 최고의 관심사는 ‘신약’이다. 신약 개발 소식이 들려오면 주가는 요동친다. 기존 약을 대신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환자들의 관심도 쏠린다. 미국 FDA(식품의약국) 허가를 목표로 한다면 금상첨화다. 검증만 받는다면 인구가 많은 글로벌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정부도 올해 신약 개발 등에 7718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SK케미칼 신약 시작으로 33호까지 나온 국산 신약

 

국내 제약업계가 언제부터 신약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에 몰두하던 국내 제약사들은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서 연구개발(R&D) 투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과거엔 물질이 같아도 제조방법만 다르면 문제가 없었는데, 이 제도로 인해 특허권자의 승인이 있어야 사용 가능토록 바뀌었다. 기술사용료를 내기 싫으면 R&D 투자를 늘려야만 했다.

 

150여 명의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여 신약을 개발하는 선도기술개발사업,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이 각각 1992년과 1998년에 시행되면서 신약 R&D가 더욱 확대됐다. 물론 1990년대 중반까지도 제약사가 의약품보다 자양강장 드링크류에 치중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1995년 국내 100대 제약사가 쓴 신약 R&D 비용은 총매출액의 4% 수준인 1668억 원으로 알려졌다.

 

2019년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그러나 분명 신약 R&D는 성장했다. ‘2000 보건산업백서’에 따르면 연구소를 보유한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988년 2.70%, 1991년 3.86%에서 1996년 5.02%, 1999년 5.75%로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첫 국산 신약이 탄생한다. 1999년 SK케미칼이 위암 치료제 ‘선플라주’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은 것. 개발 기간만 10년이 걸렸다.

 

이후 정부 부처들이 제약 산업 강화를 위해 신약 개발 지원사업에 뛰어들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업계의 신약 개발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연구소를 새로 짓거나 증설하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03년 79개 제약기업이 86곳의 연구소를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플라주가 출시된 이후 2001년 대웅제약 당뇨성 족부궤양치료제인 ‘이지에프 외용액’을 시작으로 2000~2010년에만 14개의 국산 신약이 나왔다. 2011~2018년에는 15개 신약이 등장했다. 질환별로 보면 항암제가 6종으로 가장 많았고, 항생제와 궤양 치료제, 관절염치료제가 뒤를 이었다. 이 시기에는 2004년과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1~4개씩 국산 신약이 등장했다.

 

2019년과 2020년엔 국산 신약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는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정’,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주’, 한미약품 호중구감소증치료제 ‘롤론티스’가 각각 국산신약 31~33호로 등재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각 제약사의 신약 개발 속도에 따라 국산 신약이 한 해에 많이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정’,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주’, 한미약품 호중구감소증치료제 ‘롤론티스’가 각각 국산신약 31~33호로 등재됐다. 셀트리온 렉키로나주. 사진=셀트리온 홈페이지


R&D 비용이 늘어난 지금, 오히려 과거보다 혁신 국산 신약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업계가 비용 대비 효율을 따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다른 제약사의 기존 신약후보물질을 이전받거나 일부 개량하면 좀 더 빨리 약을 내놓을 수 있다.

 

#글로벌 신약 단 2종 “갈 길 멀었다

 

국산 신약을 둘러싸고 업계에서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의약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생산 실적이 100억 원대 이상인 제품은 카나브정·듀비에정·놀텍정·케이캡정 정도로 알려졌다. 33개 국산 신약 중 허가 취소된 의약품도 동화약품 ‘밀리칸주’, CJ제일제당 ‘슈도박신주’, 삼성제약 ‘리아백스주’, 동아에스티 ‘시벡스트로주’와 ‘시벡스트로정’ 등 5개다.

 

국산 신약이 허가 취소된 이유는 제각각이다. 동아에스티는 약가가 낮게 책정돼 시장성이 없어 지난해 항생제 국산 신약 두 종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CJ제일제당은 농구균예방백신 신약을 조건부로 승인받을 때 약속한 임상시험을 끝내지 못해 2009년 허가 취하했다. 2018년 한미약품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올리타정’의 개발과 시판을 중단해 사실상 허가 취소됐다.

 

특히 글로벌 신약이 없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국산 신약 중 FDA 허가를 받은 약은 LG생명과학이 2002년 국내에 내놓은 ‘팩티브정’과 허가 취하된 동아에스티 시벡스트로정, 둘뿐이다.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한국에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대형 제약사가 내놓은 국산 신약 중 글로벌 신약은 드물다. 아직 독자적인 영업력이나 자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이미 해외 시장에 경쟁사들이 있는 등의 요인들로 글로벌 시장 진출이 어려웠던 듯하다”고 설명했다.​

 

국산 신약은 꾸준히 나왔지만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은 획기적인 의약품이 드물다는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중소제약사나 벤처기업의 경우 신약 개발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어렵다. 앞서의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임상3상에만 몇백억 원에서 몇천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기간도 오래 걸린다. 자본력이 약한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기술수출을 하는 이유”라며 “상장 이후 5년 연속 적자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당하는데, 한두 개 파이프라인을 가진 바이오 벤처들이 자본을 조달하려 기술수출하면 그다음은 경쟁력을 아예 잃게 된다”고 했다.

 

다만 앞으로 자연스레 국산 신약이 많아질 거란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최근 제약사들이 신약 연구개발 분야를 떼어내고 R&D 중심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편 ‘○○​호 국산 신약’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 접근성 보장 측면이라면 정부는 국산 신약 번호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미충족 의료가 발생하는지부터 먼저 점검해야 한다. 신약개발 촉진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따로 평가해야 할 듯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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