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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제주 역사 기행② 육지분, 육짓것, 육짓놈…애증의 현장

제주에 도움을 준 다섯 현인 모신 오현단, 참다못해 반란 일으킨 명월진성

2022.05.03(Tue) 18:49:21

[비즈한국] 목호의 난 이후 제주는 완전히 한반도의 일부가 되었다. 탐라국에서 시작해 고려 때까지도 나름의 독자성을 가졌지만, 이제는 한반도의 역사로 편입된 것이다. 제주인들은 육지의 통치를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론 저항의 역사를 이어가기도 했다. 

 

제주목관아의 터줏대감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제주의 중심이자 역사의 현장이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제주의 관문이자 중심, 제주목관아

 

관덕정(보물 제322호)으로 대표되는 제주목관아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관문이자 중심지였다. 세종 16년(1434) 화재로 전소된 것을 다시 지은 뒤 조선시대 내내 증개축이 지속되다가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훼손되어 관덕정을 제외한 건물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되어 지금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제주목관아의 터줏대감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세종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가 여러 번의 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제주목관아가 사라진 이후에도 관덕정은 제주의 중심이자 역사의 현장이었다. 1901년 이재수의 난 때 반란군들이 천주교도들을 처형한 곳도, 해방 이후 4△3사건의 도화선이 되는 3·1운동 기념 집회가 열린 곳도 관덕정 앞이었다. 평화를 되찾은 이후에도 관덕정은 제주시의 랜드마크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제주목관아의 망경루. 바다가 보이는 망경루에서 제주목사는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했단다. 사진=구완회 제공

 

관덕정 옆 외대문을 지나 관아 안으로 들어가면 제주목사가 일을 하던 연희각이 보인다. 동헌으로 불리던 연희각은 행정의 중심이었다. 그 뒤로는 연회장소인 우련당과 보좌진이 근무하던 영주협당, 제주목사가 휴식을 즐기던 귤림당 등이 이어진다. 가장 안쪽, 바다가 보이는 망경루에서 제주목사는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했단다. 더불어 자신을 한양으로 불러줄 소식을 가져오는 배를 기다렸을 것이다. 

 

#제주로 유배 온 현인들, 오현단

 

제주로 온 양반들은 제주목사 같은 벼슬아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벼슬을 빼앗기고 죄인의 신분이 된 이들도 있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 제주는 큰 죄를 저지른 이들을 보내는 유배지였다. 이렇게 제주를 찾은 유배객 중에는 학문이 뛰어난 이들이 많았고, 제주인들은 모처럼 육지에서 온 훌륭한 학자들을 현인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오현단은 그렇게 제주로 온 다섯 현인을 모신 곳이다. 성종 때 이름난 문인 김정을 시작으로 김상헌과 정온, 송시열, 송인수 등이 그들이다. 이 중 김정과 정온, 송시열은 유배객으로 제주를 찾았고, 김상헌과 송인수는 벼슬을 받아서 제주에 왔다.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김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지은 것이 오현단의 시작이었다. 

 

김정, 김상헌, 정온, 송시열, 송인수 등 제주에 온 다섯 현인의 비석을 모신 오현단. 사진=구완회 제공

 

그 뒤 현인의 숫자가 늘면서 그들을 모시는 서원을 세웠지만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졌고, 그 대신 오현의 위폐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비석 다섯 개를 세워서 오현단이라 부른 것이다. 오현단 내의 ‘증부벽립(曾朱壁立, 주자와 증자가 벽에 서 있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란 글자는 그 유명한 우암 송시열의 작품이다. 

 

#제주인은 살아 있다, 명월진성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제주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중에는 제주인을 괴롭힌 자들도 있었다. 아니, 그런 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육지에서 온 이들을 낮춰 부르는 ‘육짓것’이란 말이 남아 있겠는가. ‘육짓것’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제주인들은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켰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이재수의 난’이다. 

 

이때 문제를 일으킨 ‘육짓것’들은 탐관오리와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엄청난 박해를 견디며 마침내 포교의 자유를 획득한 천주교인들이 제주에서는 부패한 관리들이 부당한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 앞장을 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리들을 등에 업고 제주의 전통 신앙을 박해하는 일까지 벌였다. 나치에게 박해받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19세기 말 제주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참다못한 제주인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무예가 뛰어난 관노 이재수가 앞장을 섰다. 사실 이재수의 난은 평화로운 시위로 출발했다. 이 평화시위가 무장봉기로 바뀐 곳이 바로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명월진성이다.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머물던 평화 시위대의 지도자들을 납치하는 바람에 이재수가 전면에 나서면서 평화 시위는 민중 봉기가 되었다. 애초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서 세운 명월진성은 목호의 난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목호의 난도 이재수의 난도 결국 진압되었다. 명월진성 또한 사라졌다가 최근 명월성지란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육짓것’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제주인들은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켰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이재수의 난’이다. 애초 평화 시위가 무장봉기로 바뀐 곳이 명월진성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제주목관아

△주소: 제주도 제주시 삼성로 22

△문의: 064-722-3315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오현단

△주소: 제주도 제주시 오현길 61

△문의: 064-710-6702

△이용시간: 상시, 연중무휴

 

명월성지 

△주소: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2236

△문의: 064-710-6704

△이용시간: 상시,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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