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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브리저튼2', 리젠시 시대 펼쳐지는 '혐관 로맨스' 맛집

'오만과 편견' 세계관 바탕으로 넷플릭스식 재해석…봄날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스물

2022.03.31(Thu) 10:37:28

[비즈한국] 2020년 연말, ‘브리저튼’ 시즌1이 공개되고 난 후의 뜨거운 반응을 기억한다. 단톡방에서 누군가 ‘혹시 브리저튼 본 사람?’ 하고 쓰는 순간, 득달같이 시청 소감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뜨거운 간증 물결은 넷플릭스 영화 ‘365일’이 공개되었을 때와 흡사한 듯 또 달랐다. 맹목적인 ‘19금’을 지향하던 ‘365일’과 달리 ‘브리저튼’은 로맨스물의 원류라 할 만한 제인 오스틴의 재기 발랄한 작품들과 맞닿아 있었으니까.

 

브리저튼 가의 장녀 다프네와 흑인 공작인 사이먼 헤이스팅스의 로맨스를 그렸던 시즌1에 이어 브리저튼 자작인 장남 앤소니와 인도계 출신인 케이트 샤르마의 로맨스로 돌아온 ‘브리저튼’ 시즌2. 서로를 혐오하는 관계에서 출발하는 ‘혐관 로맨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브리저튼’ 시즌1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 발표된 1813년을 배경으로 하는 리젠시 시대(1811~1820) 로맨스물이다. 리젠시 시대는 재위 중 정신병을 앓던 조지 3세 대신 아들인 조지 4세가 섭정을 하던 시기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영문학 및 로맨스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덕분에 ‘리젠시 소설’이란 하위 장르가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강렬하다. 리젠시 시대의 감성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현대의 감성을 녹여낸 ‘브리저튼’은 ‘오징어 게임’이 등장하기 전까지 넷플릭스 사상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렇다면 지난 3월 25일 공개된 ‘브리저튼’ 시즌2의 반응은? 공개 이후 OTT 시청률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전반적으로 시즌1만큼의 열기는 아니란 반응이다.

 

명망 있는 가문의 명성을 이어 나갈 책임이 있는 앤소니는 집안에 걸맞은 안주인으로 케이트의 여동생 에드위나를 점찍는다. 그러나 자꾸 부딪치며 눈길이 가고 심장이 울리는 상대는 에드위나의 언니인 케이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시즌1이 영국 사교계에서 명망 있는 가문인 브리저튼 가의 장녀 다프네와 헤이스팅스 공작 사이의 계약 연애와 결혼을 다뤘다면, 시즌2는 브리저튼 자작인 장남 앤소니의 신붓감 찾기를 다룬다. 시즌1에서 여동생 다프네를 훌륭한 신랑감과 맺어주고자 혈안이었던 앤소니는 시즌2에서 자작이자 가문의 가장인 자신의 입장에 걸맞은 신부를 찾고자 혈안이 된다. 그런 그에게 포착된 건 이번 사교 시즌 최고의 신붓감인 ‘다이아몬드’로 꼽힌 에드위나 샤르마. 어여쁜 데다 교양과 지식을 갖춘 에드위나는 여러 모로 브리저튼 가의 안주인으로 적합해 보인다. 그런데 요상한 일이지. 자꾸 에드위나 옆에 있는 보호자인 언니 케이트 샤르마에게 눈길이 간다. 케이트는 새벽녘 들판에서 우연히 앤소니와 승마 경주를 벌이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것. 그러나 정작 케이트는 신붓감의 자격 조건만 맞으면 되지 사랑은 필요 없다는 앤소니의 의중을 알게 되며 필사적으로 동생과의 관계를 막고 있는 상태다.

 

결혼이 지상 최대의 목적인 영국 상류층 여성들과 달리 인도로 돌아가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케이트(위 사진). 다리를 벌리고 말을 타고, 직접 총을 들고 사냥에 나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혼에 기대지 않고 자주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건 브리저튼 가의 다섯째 엘로이즈(아래 사진, 오른쪽)나 정체를 감추고 ‘레이디 휘슬다운’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페넬로페도 마찬가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시즌1의 다프네와 헤이스팅스 공작도, 시즌2의 앤소니와 케이트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혐관 로맨스(서로를 혐오하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로맨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유서 싶은 관계 설정의 로맨스는 앞서 말했다시피 로맨스물의 원류인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오해로 인해 만나기만 하면 투닥투닥거리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던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미스터 다아시의 관계가 ‘브리저튼’ 주인공들의 관계와 똑 닮아 있지 않은가. 이런 혐관 로맨스는 2022년의 대중문화에서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시즌2의 주인공인 브리저튼 자작인 앤소니. 우연히 물에 빠져 젖은 셔츠 차림으로 나서는 이 장면은 명백히 1995년작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을 패러디했다.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브리저튼’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브리저튼’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고스란히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전 세계가 그토록 열광했을 리 없다.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영국 왕이 흑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왕비로 만든 이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는 가상의 설정을 삽입한 ‘브리저튼’은 시즌1에서 섹시한 흑인 공작으로 레지 장 페이지를 내세우며 눈길을 끌었는데, 시즌2에서는 여주인공 케이트에 인도계 영국인인 시몬 애슐리, 에드위나 역에 샤리트나 찬드라를 캐스팅하며 다양성을 추구하는 21세기의 기조를 이어간다. 결혼이 최고 목표인 상류층 여성의 한계를 갑갑해하는 앤소니의 여동생 엘로이즈를 비롯해 결혼에 있어 사랑을 최우선 덕목으로 치지만 자신은 인도로 돌아가 비혼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케이트 등 가부장제의 한계를 딛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21세기에 발 맞춰가려는 이 드라마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브리저튼 부인과 그의 자식들인 8남매(여섯째 프란체스카는 유럽 여행으로 사진에서 빠져 있다). 로맨스 작가 줄리아 퀸의 원작 소설은 각 권마다 8남매 중 한 명을 주인공 삼아 그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다. 현재 촬영 중인 시즌3도 원작의 순서와 같이 차남인 베네딕트가 주인공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집안에서 부여된 책임을 앞세워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애써 부인하는 앤소니와 케이트의 감정 다툼이 장장 8회까지 이어질 필요가 있나 싶고, ‘로맨스 포르노’라 불릴 만큼 성적 묘사를 ‘심쿵’하게 그려낸 시즌1과 달리 현저히 적어진 애정 신이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브리저튼’은 설레는 감정을 한껏 돋우는 봄날에 가볍게 보기에 적당한 로맨스물이다. 로맨스 작가 줄리아 퀸의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브리저튼’은 브리저튼 가문의 8남매를 주인공으로 하기에 앞으로도 계속해 시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현재 시즌4까지 제작이 확정돼 있다).

 

시즌1과 시즌2를 보고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라면 콜린 퍼스와 제니퍼 엘이 미스터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로 분한 1995년작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과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2005년작 영화 ‘오만과 편견’, 안야 테일러 조이의 상큼함이 돋보이는 넷플릭스 영화 ‘엠마’ 등 OTT에서 만날 수 있는 제인 오스틴 작품들을 다시 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킹스맨’의 중후한 콜린 퍼스만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섹시한 콜린 퍼스를 만날 수 있는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강추!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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