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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씹고 뜯고 맛보는 '오징어게임'의 신선함과 익숙함

전형적 데스게임 장르물에 추억 한 숟갈…뻔한 설정 속 반짝이는 창의력에 반응 '극과 극'

2021.09.22(Wed) 10:59:47

[비즈한국] ‘10억 주면 1년 동안 감옥을 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고교생과 대학생 절반 이상이 찬성한다는 뉴스를 보았는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들의 생각 아니냐고? 30대를 넘어 40대가 태반인 주변에 같은 질문을 던지면 예상 외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10억 원에 1년의 자유를 포기하고 전과자의 낙인을 감수하며 감옥을 갈 수 있다면, 그보다 큰돈에는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456억 원이라는 큰돈이라면?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2009년 완성한 대본이 이제야 빛을 발한 ‘오징어 게임’. 이정재, 박해수가 주연을 맡은 가운데 정호연, 김주령 등 신선한 얼굴들이 출연해 눈길을 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9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은 인생의 밑바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희망퇴직 후 치킨집과 분식집 장사에 연거푸 실패하고 대리기사를 뛰지만, 수시로 어머니의 돈을 훔쳐 경마장에 달려가는 한심한 인생. 이혼한 아내가 키우는 딸의 생일에도 경마장에 갔다가 사채업자에게 걸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오락실에서 뽑기로 겨우 딴 선물을 딸에게 건네는 한심한 아빠다. 사채와 은행 대출로 4억 원이 넘는 빚이 있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에게, 수상한 남자가 접근한다. 딱지치기를 해서 이기면 한 번에 10만 원을 준단다. 대신 지면 돈 대신 뺨 맞는 것으로 탕감할 수 있다.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가 그려진 수상쩍은 명함은 기훈(이정재)을 비롯해 인생의 밑바닥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유혹을 던진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는 걸 뼈에 사무치도록 알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얼마 후 뺨을 수십 대 맞아 벌개진 얼굴로 수십 장의 지폐를 들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 기훈. 보통 사람 같으면 낯선 사람의 딱지치기 게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터다. 그러나 돈이 없는 건 고사하고 돈 때문에 목숨줄이 간당간당한 사람에게 그깟 뺨 좀 너덜너덜해지는 게 대수겠나. 창창한 젊은이들도 돈 때문에 감옥에 간다는 판국에. 이때, 이 수상한 남자가 말한다. “선생님, 이런 거 며칠만 하시면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아, 이건 신종 피라미드 수법인가, 현대판 메피스토펠레스인가. 그렇게, 기훈은 남자가 준 수상한 명함(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그려진)의 번호로 전화를 건다.

 

기훈(이정재)과 상우(박해수), 새벽(정호연)은 기괴하고 잔혹한 생존 서바이벌 게임을 겪으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절박한 상황에서 이들이 각자 지키는 마지막 가치는 무엇일까.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에서 수상쩍은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기훈처럼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거의 백이면 백, 돈과 연관이 있다. 그러니 정체불명의 가스에 취한 채 낯선 공간으로 납치당하듯 끌려와, 가면과 붉은 점프수트 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진행요원들의 손으로 번호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갈아 입혀진 채 깨어나도 큰 저항없이 수상한 게임에 동참하게 되는 거다. 기훈과 같은 동네에서 자라 서울대를 나온 ‘쌍문동의 자랑’이지만 증권회사에서 잘못된 투자로 거액의 빚은 물론 수배까지 떨어진 조상우(박해수)도, 북한에 있는 엄마와 보육원에 맡긴 동생을 찾아와야 하지만 탈북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 새터민 강새벽(정호연)도, 조직 보스의 돈을 가로채 쫓기고 있는 조폭 장덕수(허성태)도 모두. 심지어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탈락해 ‘죽은’ 사람이 말 그대로 총을 맞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중 태반은 게임을 계속하길 원한다. 죽은 사람 1명당 1억 원의 돈이 상금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을 관리하는 게임판의 진행요원들은 일견 똑 같은 가면과 똑 같은 옷을 입고 평등해 보이지만,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로 나뉘는 계급 구조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도 게임 참가자와 마찬가지로 돈을 위한 절박한 움직임이 엿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은 익숙한 설정과 전개가 곳곳에서 보이는 작품이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대본을 2009년 썼다지만, 일각에서 언급하는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를 비롯해 ‘배틀 로얄’이나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 우리는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설정과 비슷한 분위기를 충분히 경험해 봤다. 심지어 붉은 점프수트 입은 진행요원들의 모습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이 떠오를 정도다. 게임을 진행하지 않을 때는 전개도 느리다. 게임에 참여하기까지, 중간에 다시 게임을 재개할 때까지 다소 빤한 캐릭터들의 설정과 서사가 그렇지 않아도 느린 전개를 더욱 지루하게 느끼게 만든다. 막장 인생이지만 일말의 인간미는 잃지 않는 기훈과 똑똑하고 이성적이지만 돈 앞에서 변해가는 상우의 대조는 물론, 새터민과 조폭과 민폐 여성과 의뭉스러운 노인 등 게으른 캐릭터들은 ‘오징어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정적 요소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게임에 탈락하면 문자 그대로 죽는다. 단, 게임 참가자들의 과반 이상이 게임을 중단하는 것에 찬성하면 그만둘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죽어갈 때마다 쌓이는 거액의 돈을 보면서 사람들의 눈빛은 변해간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재미난 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잘 섞고 버무린 데다 중장년층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놀이들을 목숨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도입시킨 창의력엔 박수를 보낸다. 덕분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은근히 무서워졌다고. 동화적이고 판타스틱하게 꾸며진 압도적인 스케일의 게임 공간들은 CG를 최소화하고 실제로 지은 세트라는데, 게임 참가자들의 상황과 대비되어 한층 이질적인 공포감과 몰입을 선사한다. ‘옥자’ ‘기생충’ 등을 작업한 음악감독 정재일의 음악은 이 드라마를 한달음에 내달리게 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코어 OST를 발매했을 정도다.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하던 놀이 중 가장 과격(?)한 놀이로 꼽히는 오징어(지역에 따라 ‘오징어 달구지’라고 불리기도) 게임까지, 추억을 파괴하는 옛 놀이들이 소환되어 기괴한 잔혹동화를 완성한다. 그에 맞춘 세트장도 볼거리. 사진=넷플릭스 제공


장점과 단점이 확연해서인지, ‘오징어 게임’은 공개 직후 평가가 극도로 갈리는 중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본 작품 중 가장 지루한 작품이었다는 냉혹한 평과 역대급 스릴러라는 평이 팽팽하게 엇갈린다. 화제성은 최고. 전 세계 스트리밍 플랫폼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월드 랭킹 2위(9월 21일 기준)에 올랐고, 추석 연휴 기간에 몰아서 봤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SNS를 도배하고 있다. 재미없게 본 사람들도 오징어 다리 씹듯 잘근잘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요소가 많다는 것도 ‘오징어 게임’의 재미. 일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부터 먼저 ‘정주행’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배려 없는 스포까지 이야기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직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다면 도전해 보시라. 정말 재미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흥미진진한 대화의 요소가 되어줄 테니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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