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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별이 없는 떠돌이 행성에 생명체가 있다?

우리 은하엔 별 없는 떠돌이 행성이 훨씬 많아…그 곁의 얼음위성에 생명체 존재할 가능성

2021.04.05(Mon) 11:28:55

[비즈한국] 천문학자 드레이크는 우리 은하 속 외계 문명의 존재 가능성을 추정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만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식이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간단한 개념이다.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체가 고등 기술 문명으로 진화에 성공하기까지 필요한 여러 변수를 하나하나 단계별로 따져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드레이크 방정식의 첫 번째 변수는 우리 은하에서 매년 얼마나 많은 별이 태어나는가다.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일단 그 행성이 중심에 두고 돌고 있는 별이 먼저 필요할 테니 가장 먼저 우리 은하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는지부터 따져보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보통 행성을 생각하면 별 곁을 도는 모습을 떠올린다.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든 행성이 별 주변을 맴도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우주에는 중심에 아무런 별 없이 홀로 존재하는 ‘떠돌이 행성(rogue planet)’이 있다. 

 

별 없이 혼자서 우주를 떠도는 떠돌이 목성형 행성의 상상도. 이미지=NASA, JPL-Caltech


떠돌이 행성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작은 가스 구름이 혼자서 수축하면서 재료가 부족한 탓에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지는 못하고, 목성의 수 배 정도 규모의 거대한 떠돌이 가스 행성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경우다. 또는 별 곁을 돌던 평화로운 행성이 중심 별이 폭발하거나 주변 또 다른 별의 중력 섭동으로 인해서 궤도를 벗어나면서 우주 공간을 헤매고 다니는 떠돌이 행성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행성은 별에 붙잡혀 그 주변을 돌고, 떠돌이 행성은 수가 훨씬 적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반대다. 별 주변을 도는 행성이 ‘평범한’ 행성일 것 같지만, 그 수를 보면 떠돌이 행성이 훨씬 흔한 ‘평범한’ 행성이고 별 곁을 도는 지구 같은 행성이 훨씬 드문 ‘독특한’ 행성이다. 

 

떠돌이 행성은 충분한 빛과 열을 제공하는 뜨거운 별이 중심에 없기에 당연히 생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적지않은 천문학자들은 별이 없는 떠돌이 행성에서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구처럼 별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영양분을 얻으며 살아가는 생명체보다 오히려 별빛 에너지 없이 어둠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생명체가 우주에서는 훨씬 더 흔하고 보편적일 수 있다. 

 

과연 지구 생태계는 우주 전체로 봤을 때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오히려 이상한 형태의 생태계였을까? 대체 천문학자들은 중심에 별을 두고 있지 않는 떠돌이 행성에서도 어떻게 생명체를 기대하는 걸까? 그리고 그런 어둠 속의 떠돌이 행성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별을 두지 않고 혼자서 우주를 떠도는 떠돌이 행성들이 있다. 과연 그런 행성에서도 생명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은하는 사실 떠돌이들의 세상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외계행성은 대부분 어떤 별 곁을 맴돈다. 예를 들어 케플러 우주 망원경은 외계행성이 별 곁을 맴돌면서 규칙적으로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 때 별빛의 밝기가 살짝 어두워지는 현상을 활용해 외계행성을 발견했다. 별 곁을 도는 외계행성은 그 외계행성으로 인해서 별의 밝기나 움직임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현상을 근거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중심에 별을 두지 않은 떠돌이 행성이라면 어떨까? 행성이 그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밝기가 어두워지게 만들어줄 별 자체가 없지 않은가?

 

아주 드물긴 하지만 떠돌이 행성이 훨씬 멀리 떨어진 은하수 속 다른 배경 별 앞을 지나갈 때 벌어지는 흥미로운 현상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떠돌이 행성이 다른 별에 비해선 훨씬 질량이 가볍기는 하지만 분명 자신의 중력으로 주변 시공간을 왜곡한다. 그렇게 주변 시공간을 작게 왜곡하는 떠돌이 행성이 우연히 다른 먼 배경 별 앞을 지나가게 되면 그 배경 별의 별빛이 떠돌이 행성에 의해 왜곡된 시공간을 지나오면서 별빛의 경로가 휘어진다. 떠돌이 행성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이 돋보기처럼 먼 배경 별빛을 모아서 밝기를 더 밝게 증폭한다. 바로 이 ‘마이크로 중력 렌즈(Gravitational Microlensing) 효과’를 통해서 떠돌이 행성은 아주 드물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배경 별 앞으로 우연히 떠돌이 행성이 지나가면서 그 주변에 미세하게 왜곡된 시공간의 영향으로 배경 별빛의 밝기가 잠깐 증폭되는 마이크로 중력 렌즈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지=Jan Skowron/Astronomical Observatory, University of Warsaw

 

은하수에 놓인 어떤 먼 별의 밝기가 갑자기 밝아졌다가 다시 원래 밝기로 돌아온다면 그 별 앞으로 떠돌이 행성이 지나가면서 마이크로 중력 렌즈 효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계행성이 중심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 때 밝기가 살짝 어두워지는 현상을 근거로 케플러 우주 망원경이 외계행성을 찾았다면, 배경 별빛의 밝기가 살짝 더 증폭되는 마이크로 중력 렌즈 효과로 떠돌이 행성의 존재를 유추한다. 

 

다만 배경 별 앞으로 정확하게 떠돌이 행성이 지나갈 확률은 아주 낮아서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하는 관측이다. 게다가 별을 중심에 두고 맴도는 외계행성이라면 일정한 주기로 반복해서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지만, 떠돌이 행성이 어떤 먼 배경 별 앞을 우연히 지나가는 것은 다시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을 포착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지구 정도 크기의 떠돌이 행성에 의한 마이크로 중력 렌즈가 먼 배경 별빛을 증폭하는 현상은 겨우 몇 시간 안에 끝나버린다.

 

떠돌이 행성이 우연히 배경 별 앞을 지나가는 현상을 더 빈번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별들이 빽빽한 은하 중심부 쪽을 관측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실제로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이 마이크로 중력 렌즈 현상을 통해 발견한 떠돌이 행성 대부분은 은하 중심부 방향에서 목격됐다. 그렇다면 우리 은하에는 얼마나 많은 떠돌이 행성이 존재할까? 

 

천문학자들은 칠레에 위치한 1.3미터짜리 망원경을 동원해 우리 은하 중심 방향에서 떠돌이 행성들에 의한 마이크로 중력 렌즈 현상을 관측하는 광학 중력 렌즈 실험(Optical Gravitational Lensing Experiment, OGL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OGLE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10여 년간 5000만 개 넘는 별을 관측했고 약 2600번이 넘는 마이크로 중력 렌즈 현상을 포착했다. 떠돌이 행성 하나가 우연히 배경 별 앞을 지나가는 건 아주 드문 우연의 결과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엄청 많은 횟수다.

 

2024년 발사 예정인 WFRIST 우주 망원경은 우리 은하 중심부 방향을 바라보면서 배경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떠돌이 행성의 존재를 밝힐 예정이다. 이미지=NASA


천문학자들은 이렇게나 많은 마이크로 중력 렌즈 현상을 설명하려면 우리 은하에 떠돌이 행성이 얼마나 존재해야 하는지를 추정했다. 그 결과 우리 은하를 떠돌고 있는 목성 정도 규모의 덩치 큰 떠돌이 행성의 수는 우리 은하의 일반적인 별 전체 개수의 4분의 1 수준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보다 더 작은 지구 정도 크기의 떠돌이 행성의 수는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일부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떠돌이 행성의 전체 개수가 전체 별 개수의 두 배를 넘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았다. 그 수만 놓고 보면 우리 은하의 주류를 차지하는 진짜 주인공은 밝은 별도, 그 별 곁을 도는 지구 같은 행성도 아니다. 별 곁을 돌지 않고 홀로 우주 공간을 떠도는 우주 유목민, 떠돌이 행성이 우리 은하의 진짜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별 주변을 도는 행성이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 은하는 중심에 별을 두지 않은 떠돌이 행성이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ESO/M. Kornmesser

 

#별빛도 없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떠돌이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고도로 발전된 외계 지적 문명도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지구의 경험만 놓고 보면 별빛도 없이 그저 암흑 속에 차갑게 얼어 붙어 있을 떠돌이 행성에서는 생명 활동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만약 이 떠돌이 가스 행성 곁에 위성이 함께 맴돌고 있다면 그 위성에서 생명체를 기대해볼 수 있다. 바로 우리 태양계 목성과 토성 곁을 맴도는 얼음 위성들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목성과 토성 곁을 맴도는 얼음 위성, 유로파와 엔셀라두스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물론 목성과 토성은 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위성 역시 생명이 살 수 없는 아주 추운 온도로 얼어 있다. 하지만 얼음 내부는 다르다. 중심의 육중한 행성이 발휘하는 강한 중력, 조석력과 강한 자기장에 의해 얼음 내부는 얼지 않고 녹은 채로 유지될 수 있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얼음 위성 표면의 갈라진 얼음 틈 사이로 선명한 물 기둥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관측했다. 이후 갈릴레오 탐사선이 직접 유로파 곁을 돌면서 유로파의 중력 분포를 측정했고 이를 통해 얼음 표면 아래 지구의 바다 전체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이 있음을 확인했다. 

 

유로파의 물과 지구 바닷물 전체의 양을 비교한 그림. 놀랍게도 지구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얼음 위성 유로파에는 지구의 물 전체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이 들어있다. 이미지=Kevin Hand(JPL/Caltech), Jack Cook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Howard Perlman(USGS)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약 20광년 거리에서 우주 공간을 떠도는 거대한 떠돌이 가스 행성에서 강한 자기장의 존재를 암시하는 오로라를 관측했다. VLA 전파 망원경으로 검출된 오로라 빛의 신호를 보면 이 떠돌이 가스 행성은 목성에 비해 무려 200배나 더 강한 자기장을 형성해서 선명한 오로라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떠돌이 행성들도 오랫동안 강한 자기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주변의 얼음 위성들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목성의 유로파처럼 얼음 위성 깊은 곳에 얼지 않고 녹은 상태로 보존된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지=Chuck Carter, Caltech, NRAO/AUI/NSF

 

한편 2015년 10월 토성 곁을 돌던 카시니 탐사선은 궤도를 틀어 얼음 위성 엔셀라두스로 향했다. 엔셀라두스의 갈라진 얼음 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우주 분수의 물방울을 직접 통과하면서 그 물 속에 어떤 물질이 녹아 있는지를 직접 탐사했다. 운이 좋으면 뿜어져 나온 물줄기 속에서 외계 크릴 새우, 외계 플랑크톤을 포획할지도 모르니까! 

 

물론 아쉽게도 물줄기 속에서 정말 살아 있는 엔셀라두스 생명체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이 역사적인 ‘엔셀라두스 스파이르트 샤워’를 통해 카시니는 놀랍게도 수소 분자를 검출했다. 카시니가 발견한 수소 분자는 엔셀라두스의 깊은 바다 속에 높은 온도 속에서 물과 암석이 화학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시니 탐사선은 엔셀라두스가 내뿜는 물줄기 속을 지나가면서 물 속의 성분을 검출했다. 사진=NASA


수소 분자는 지구에서 깊은 바닷속 심해 열수구 주변에서 사는 미생물들에게 아주 중요한 영양분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최초의 생명체 역시 바로 이런 심해 열수구와 같은 환경에서 탄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엔셀라두스의 지하 바닷속 물줄기 속에서 수소 분자가 검출되었다는 건, 그 해저에 지구의 심해 열수구처럼 뜨거운 지열과 각종 미네랄, 영양분이 공급되는 환경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외계 미생물이 존재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란 뜻이다! 천문학자들은 떠돌이 행성 곁을 도는 얼음 위성에도 이런 환경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과거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한 것으로 추측되는 심해 열수구와 비슷한 조건의 환경이 유로파나 엔셀라두스의 지하 바닷속에 조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NASA/JPL-Caltech

 

#별빛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

 

떠돌이 행성 곁 얼음 위성의 지하 바닷속에 지구의 심해 열수구와 비슷한 환경이 형성되어 있고 원시적인 수준의 외계 생태계가 싹트고 있다면, 별빛은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지구에서도 햇빛이 거의 도달하지 않는 깊은 심해에 또 다른 생태계가 존재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중심에 별을 두지 않은 암떠돌이 행성 곁 위성에도 색다른 모습의 외계 생태계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드레이크 방정식에서는 가장 먼저 우리 은하 속 별의 개수를 세는 것부터 시작해 외계 생명체의 수를 헤아리려 했지만, 그러한 관점은 어쩌면 별 곁을 돌지 않는 훨씬 더 많은 떠돌이 행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곳에선 원시적인 수중 미생물뿐 아니라 고도로 발전된 지적 문명도 나올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평생을 지구에서만 살고 배운 나로서는 그런 환경에서 고도로 발전된 지적 기술 문명까지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로파, 엔셀라두스와 지하 바다의 가장 큰 단점은 불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보면 불은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중요한 요소다. 불이 있어야 음식을 데워먹고, 어둠을 밝혀 맹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금속을 제련하고 연료를 태우면서 기술 문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하지만 두꺼운 얼음 표면 아래 밀폐된 지하 바닷속에서만 진화해야 한다면 불의 사용이 어렵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 가지 재밌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만약 유로파나 엔셀라두스와 같은 얼음 위성의 해저 깊은 곳 특정한 지역에 지하의 마그마와 지열로 인한 뜨거운 열과 충분한 영양분이 계속해서 공급될 수 있는 심해 열수구가 있다면, 그러한 곳 주변에서는 제한적으로 고도로 발전된 생명체, 나아가 문명의 발전도 가능할지 모른다. 심해 열수구는 바닷속에서 그나마 뜨거운 열과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이라면 생명이 탄생하기에 유리할 뿐 아니라,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연료를 태우고 금속을 제련해 다양한 도구를 만들기에도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 

 

탐사 잠수정을 통해 촬영한 지구의 심해 화산. 바닷속에서도 불과 열을 사용해야 한다면 이런 심해 화산 주변 정도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 사진=NOAA/National Science Foundation

 

인류 문명은 큰 강 주변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만약 유로파, 엔셀라두스와 같은 얼음 위성의 지하 바닷속과 같은 세상이라면 문명의 기점은 물가가 아닌 ‘불가’, 바로 심해 열수구를 중심으로 시작될지 모른다. 지구로 치면 판과 판이 만나면서 가장 빈번하게 화산 폭발이 벌어지고 마그마가 많이 뿜어져나오는 바닷속의 지진대, 심해 화산을 따라서 문명이 피어나는 셈이다. 지구의 문명은 거대한 강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면, 떠돌이 행성 곁 얼음 위성에서는 거대한 심해 화산을 기점으로 시작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유명한 강의 이름이 아닌, 유명한 화산, 지진대의 이름이 붙은 세계 4대 문명이 되지 않았을까? 

 

평생을 얼음 속 지하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와 문명이 존재한다면 안타깝게도 그들은 두꺼운 얼음에 가려 우주를 보지 못한 채 살고 있을 것이다. 얼음 너머 아름다운 우주가 펼쳐져 있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천문학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 세계일지 모른다. 그 대신 평생을 물 속에서 살아야 하기에 유체역학과 같은 과학이 고도로 발전된 문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우주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생태계와 문명이 존재하고 있을까? 떠돌이 행성 곁 얼음 위성에 유로파, 엔셀라두스 같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고 그 바닷속에 외계 생태계가 존재한다면 우리 은하에는 지구와 같은 문명보다 그런 바닷속 문명이 더 흔하게 존재할 것이다. 즉 지구, 인류는 우리 은하에서 소수이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전혀 다른 모습의 생태계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다수일지 모른다. 언젠가 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참고

https://science.nasa.gov/science-news/science-at-nasa/2011/18may_orphanplanets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65/aac2d5/meta

https://www.sciencemag.org/news/2011/02/outcast-planets-could-support-life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1084-020-09591-z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3881/aba75b

https://www.nasa.gov/feature/goddard/2020/unveiling-rogue-planets-with-nasas-roman-space-telescope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19/04/aa34641-18/aa34641-18.htm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0092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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