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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유명인 권리 보호하는 '퍼블리시티권'은 왜 법적근거가 없을까

대법원 판례 없고 향후 입법 가능성도 낮아…침해 시 다른 방법으로 손해배상 가능

2021.03.08(Mon) 09:37:13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법률 논쟁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는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문제였냐는 식으로 넘어가는 쟁점이 있다. 이러한 시류를 읽지 못하고 지나간 논쟁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면, 그 자체의 품질과 무관하게 평가절하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법학 분야에서 흘러간 쟁점을 하나 소개한다. 바로 퍼블리시티권 논쟁이다.

 

광고 사진에 연예인 사진을 함부로 사용하면 문제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광고 문구에 연예인 이름을 언급하기만 해도 불법일까? 예를 들어 ‘수지 스타일 원피스’와 ‘수지 st 선글라스’도 불법일까? 연예인 초상, 이름 사용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이러한 사례를 퍼블리시권 침해라고 했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사람이 그가 가진 이름, 초상이나 그 밖의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연예인 등 유명인은 이름이나 초상에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정당한 사용계약 없이 유명인의 이름과 초상 등을 사용하는 것은 유명인의 경제적 이익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퍼블리시티권이라는 별도의 권리가 인정된다.​

 

연예인 등 유명인은 이름이나 초상에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2020년 2월 신용산역 광고판에 게시된 BTS(방탄소년단) 제이홉 생일광고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연예인 수지의 초상을 광고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연예인과 광고 계약을 하고 출연료 등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광고계약 없이 수지의 초상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경우 이는 수지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수지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게 이른바 퍼블리시티권 이론이다.

 

퍼블리시티권을 명문으로 보장한 법률은 없다. 퍼블리시티권을 판단한 대법원 판결도 없다. 이 때문에 퍼블리시티권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결(1심, 항소심)만이 있는데, 2000년대까지 하급심 판결은 대체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법 2005가합80450 판결(2006. 4. 19. 선고)은 “유명인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획득한 명성·사회적인 평가·지명도 등으로부터 생기는 독립한 경제적 이익 또는 가치로서 파악할 수 있다. 유명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의 성명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성명권 중 성명이 함부로 영리에 이용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민법상의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와 같이 보호되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성명 등의 상업적 이용에 대하여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퍼블리시티권으로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인격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는 하나 독립한 경제적 이익 또는 가치에 관한 이상 인격권과는 독립된 별개의 재산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0년대까지 연예인 성명, 초상 무단사용은 퍼블리시티권 침해 사례로 불렸다. 다수의 논문과 기사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한 구제 방법 등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2010년 이후 선고된 판결에서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된 판결은 거의 찾기 어렵다.

 

최근 법원 판결은 대체로 우리나라가 성문의 법률에 따라 권리·의무가 발생하는 성문법주의를 취하고 있는 이상 실정법 등의 근거 없는 한 퍼블리시티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인의 이름과 초상 등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허락 없이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이 사용됐을 경우, 인격권에서 파생되는 성명권, 초상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인정해 위자료 청구를 인용한다.

 

2010년 이후 선고된 판결에서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된 판결은 거의 찾기 어렵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비즈한국 DB


결과적으로 퍼블리시티권에 의하든 인격권에 의하든 배상을 받는 점은 같다. 단지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재산적 손해의 관점에서, 인격권 침해는 정신적 고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나라 실무상 위자료로 인정되는 금액이 워낙 적다 보니, 인격권 침해로 구성할 경우 인용되는 손해배상액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2010년대 이후 법원의 판결은 법에서 정하지 않는 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이 때문에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기사와 논문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또 최근에는 이러한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 입법 논의가 가라앉았을까?

 

퍼블리시티권을 법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미국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조차도 캘리포니아주 등 몇몇 주만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퍼블리시티권을 법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나라는 외국 유명인과 유명 상표권자들이 제기하는 소송의 천국이 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권리 의식이 높아지자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하는 기획 소송이 증가했는데, 이를 두고 은근한 비난 여론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화한다면, 과거의 사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소송으로 발생하는 배상금은 대부분 해외 유명인과 유명 상표권자로 이전될 것이다.

 

또 퍼블리시티권이 입법화된다 해도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연예인이 득 될 것은 별로 없다. 전 세계에서 퍼블리시권을 보호하는 국가는 얼마 되지 않고, 우리나라 법률이 해외에 적용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퍼블리시티권 입법론도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과거에는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으나 지금은 논의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용두사미와 같은 상황이다. 퍼블리시티권으로 논문을 작성한다면 괜한 노력을 했다는 핀잔만 들을 것이니,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은 법률 분야에서도 중요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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