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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부실기업 살려 성장한 신호그룹, 결국 외환위기에…

'인수 후 경영 정상화'로 재계 30위 올랐지만…이순국 회장 은퇴 후 스포츠과학 활동

2021.02.25(Thu) 17:34:25

[비즈한국] 신호그룹은 1977년 동방펄프를 인수해 제지업에 본격 진출했다. 이순국 신호그룹 회장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을 매수 합병해 정상화시키며 사세를 확장했고 그 능력을 재계에서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제지업을 통해 그룹을 일군 이순국 회장은 해외까지 발을 뻗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호그룹 역시 결국 막대한 차입금으로 경영난을 맞으며 매수 합병의 위기에 처하고 만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시작해 제지업계 전문경영인으로

 

1942년생인 이순국은 1968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제지에 입사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회에 발을 디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집안의 큰 도움은 받을 수 없었지만 그는 서울대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만큼 두뇌가 명석했다. 그의 형 이순목은 1978년 우방주택을 통해 우방그룹을 일궜다.

 

이순국 신호그룹 회장의 1995년 모습. 사진=비즈한국 DB


1977년까지 평범하게 제지회사에 다니던 이순국 씨는 삼성특수제지 사장으로 스카우트돼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했다. 당시 정부는 볏짚펄프 수입을 대체하기 위해 볏짚펄프 공장을 만드는 데 애썼다. 그 중 하나가 1974년에 완공된 동방펄프였다. 하지만 동방펄프는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채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업계 예측대로 동방펄프는 3년 만에 경영난으로 서울신탁은행의 관리를 받게 된다.

 

이순국 삼성특수제지 사장은 자본잠식에 빠진 동방펄프를 인수해 온양펄프로 사명을 변경한 후 볏짚펄프 대신 골판지를 생산했다. 이후 온양펄프는 일산에 100톤 규모 생산시설을 확장해 정상 경영화에 돌입했고, 이 성과를 만든 이순국 사장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1979년 12월 이순국은 삼성특수제지에서 온양펄프를 들고 나와 별도 법인을 만들어 자신의 사업을 꾸려간다. 그가 떠난 삼성특수제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1982년 1월 부도를 맞았다. 여러 법정관리인이 삼성특수제지를 살리고자 노력했지만 지지부진했다. 

 

삼성특수제지 근무 경험과 온양펄프 정상화 경험이 있던 이순국 온양펄프 사장에게도 기회가 왔다. 이순국 사장은 11월 법정관리인 자격으로 삼성특수제지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자본금 7억 원에 자본잠식 60억 원이던 회사를 1년 6개월 만에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삼성특수제지 사명을 신호제지로 바꾼 후 경영을 이어갔고, 1991년 7월 신호제지는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이순국 사장은 신호제지 경영 정상화와 더불어 부도 위기의 제지 기업 인수에 박차를 가했다. 1983년 동신제지를 비롯해 대화제지, 신강제지, 일성제지, 성광제지, 창도제지 등 6개 기업을 인수하며 신호제지를 종합제지그룹으로 만들었다. 이순국 사장은 신호그룹을 일구던 중 자신이 가진 주식 25만 주 중 15만 주를 종업원의 근로복지기금으로 출연해 무상으로 양도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로 무너진 이순국의 꿈 

 

이순국 신호그룹 회장은 제지업 외에 금융업, 철판, 철강, 의약품 등 여러 업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온양상호신용금고, 극동산업, 극동철강, 경향약품을 차례로 인수했고, 종합건설업체 신천개발과 컴퓨터 하드웨어 생산업체 한국종합전산도 인수했다. 

 

제지업을 통해 해외 진출도 힘썼다. 1988년 캐나다에 목재회사 카카베카팀버사, 태국에 신문용지 업체 신호타이를 설립했으며 미국 시애틀에 신호USA, 캐나다 온타리오에 무역업 위주의 신호코퍼레이션을 세웠다. 

 

1996년 8월 후안 카를로스 와스몬시 파라과이 대통령을 만난 이순국 회장. 사진=연합뉴스


신호그룹은 국내 제지업체 11개를 포함해 국내와 해외에 총 22개의 계열사를 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 이순국 회장은 유럽 진출과 더불어 전자산업에도 관심을 갖고 국내외 여러 기업을 인수했다. 신호그룹은 1995년에만 4개의 계열사를 추가로 인수하기에 이른다. 이순국 회장은 1995년 4월 그룹 창립 18주년 행사에서 ‘신호비전 2000’을 발표하며 제지, 철강, 전자, 무역, 금융 부문에서 8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선보였다.

 

그러나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하며 성장한 신호그룹도 외환위기라는 악재 앞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고금리 상황을 버텨내지 못했고 1200억 원의 어음을 회수당하며 자금난에 시달렸다. 1996년 재계 30위에 진입​하고 ‘신호비전 2000’을 꿈꿨던 이순국 회장의 꿈이 무색하게 신호그룹은 ​2002년 4월 ​워크아웃과 함께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신호제지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이순국 전 회장은 국일제지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여기서 그가 패배하면서 신호제지는 2006년 국일제지에 편입됐다. 이후 2008년 한솔그룹에 매각됐고 2017년 한솔제지에 합병돼 그 이름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신호그룹의 많은 계열사들은 그룹이 해체된 후 폐업의 길을 걸었다.

 

이순국 전 회장은 회사의 자산을 무담보로 빌려준 배임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자취를 감췄다. 협심증으로 한 차례 쓰러졌던 그는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스포츠과학 석사 학위, 상명대 운동생리학 박사 학위를 딴 후 책을 내는 등 경영과 무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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