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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비닐하우스가 집, 화장실은 고무대야…외국인 노동자 숙소 가보니

월 180만 원 중 20만 원 숙소비로 공제…불법 가설건축물 사용 금지했지만 실효성 의문

2021.02.25(Thu) 13:17:04

[비즈한국] 경기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지. 이곳에는 농작물 대신 조립패널이 들어선 비닐하우스가 있다. 캄보디아인 20대 여성 노동자 마리 씨(가명)​가 생활하는 숙소다. 마리 씨는 지난해 5월 근처 비닐하우스 농가에 취업해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우스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는 주택이 아닌 ‘임시 주거시설’을 숙소로 쓰기로 하고 이곳에 왔다. 마리 씨가 받는 임금은 법정 최저 수준인 시간당 8590원(2020년 기준), 한 달에 약 180만 원을 벌어 20만 원을 기숙사비로 낸다.

 

경기 북부 한 농장의 외국인 숙소와 화장실 모습. 사진=차형조 기자

 

마리 씨가 생활하는 숙소 내부는 가로 2m, 세로 4m 남짓. 창문이 없어 불을 켜지 않으면 대낮에도 어둡다. 난방시설은 전기난로와 전기장판이 전부.​ ​농사용 전기를 끌어​다 형광등과 온열기구를 켠다. 숙소 옆에는 부엌이 있다. 그러나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지하수를 쓴다. 기온이 내려가면 이마저 얼어 농장에서 물을 길어온다. 화장실은 숙소와 농로 사이에 지었다. 철골로 기둥을 세우고 천막과 패널로 외부를 덧댔다. 변기는 고무대야에 나무판자를 올려 만들었다. 별도 하수시설은 없다.  

 

지난해 12월 유명을 달리한 캄보디아 출신 여성 외국인 노동자 속헹(NOUN Sokkheng) 씨도 이런 숙소에 살았다. 속헹 씨는 이곳에서 약 27km 떨어진 포천시 일동면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에서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농어업 외국인 노동자 70% 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에 거주 

 

농·어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 10명 중 7명이 이런 가설건축물에 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가을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 3850명의 주거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 69.6%가 가설건축물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 99.1%는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했지만, 대부분 조립패널(34%)·컨테이너(25%)·비닐하우스 내 시설(10.6%) 등 가설건축물었다. 일반주택(25%)이나 고시원·오피스텔·숙박시설(2.6%)을 숙소로 받은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부터 사업주는 불법 가설건축물을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로 쓸 수 없다. 고용부는 1월 1일부터 농·어업 분야 사업주가 ‘비닐하우스 내 시설’​ 등 불법 가설건축물을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축조 신고 필증’​​을 받은 합법 가설건축물은 기숙사 설치 기준 실사를 거쳐 기숙사로 쓸 수 있게끔 했다. 고용부는 앞선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의 ‘농·어업분야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전 업종으로 지침을 확대키로 했다.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설치기준은 내국인과 같다. 외국인고용법에 따라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때는 근로기준법 상 기숙사 설치기준을 따라야 한다. 침실에는 15명 이하로 거주하고 △적절한 화장실과 세면 및 목욕 시설 △적절한 채광·환기 설비 △적절한 냉난방 설비 또는 기구 △소방법 등이 정하는 화재 예방 설비와 장치를 갖춰야 한다. 소음, 진동, 자연재해, 습기, 침수, 오염 등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장소에 설치해선 안 된다.

 

경기 북부 또 다른 농장의 외국인 노동자 숙소. 사진=차형조 기자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관계자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등 농지법을 위반한 농지 위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려는 사업주에게는 원칙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불허하기로 했다. 대지에서 신고 절차를 거치고 기숙사 기준을 만족한 가설건축물에 한해 고용허가 승인을 해준다. 고용부는 현재 다섯 개 업종에 고용허가를 실시하는데 이 중 농·어업종의 주거시설이 열악했다. 지난해 8월 수해 이재민 8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로 나타나 개선안을 마련코자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농·어업​ 분야 가설건축물 거주 비중이 높게 나타나 제도를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합법 가설건축물​은 허용…외국인노조 “땜질 처방”

 

문제는 합법적으로 지은 가설건축물이다. 가설건축물은 임시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져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구조적으로 철골 및 철근콘크리트조가 아니기 때문에 소음, 단열, 화재, 수해 등에 취약하다. ​전기, 수도, 가스 등 간선공급설비를 새로 설치할 수 없어 생활에 필수적인 설비를 갖추는 데도 한계가 있다. 더욱이 건축법 시행령에 따라 ‘임시숙소’로 사용되는 가설물은 신고 절차만으로 지을 수 있다. 이번 대책에 따르면 가설건축물이 기숙사 설치 기준을 ‘적절하게’ 충족했는지, 최대 3년간 근로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온전히 실사에 달렸다. 

 

국토교통부도 이런 가설건축물을 주거 용도로 써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가설건축물을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등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임시·한시적인 용도가 아닌 지속적으로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가설건축물의 취지와 맞지 않게 되므로 건축물과 이용자 안전 등을 감안할 때 건축법과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건축물로 건축해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12일 밝혔다. 

 

9일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노동자 기숙사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보통 한 사업장에서 몇 년씩 상주하며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숙소가 임시숙소, 가설건축물이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외국인 노동자 속헹 씨가 살던 포천 숙소의 경우, 차로 3분 거리에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이 있었다. 월 10만 원을 기숙사비로 내던 속헹 씨가 동료와 함께 이 원룸에 살 수만 있었더라도 비극적인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사실상 국제 직업소개소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고용부가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화재, 전기사고, 자연재해 등의 위험에 무방비인 가설건축물에 사람을 살게 해선 안  된다.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주택과 같은 기숙사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가 국가와 양해각서를 맺고 외국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만큼 타국에서 가난하고 힘 없이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땜질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6일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가설건축물을 일률적으로 금지할 경우 농경지 주변에 숙소로 이용할 시설이 없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며 “(가설건축물을 허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지 않아 (이주 노동자의) 주거환경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상 기숙사 설치 요건을 숙박시설에 준하는 건축물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는 환노위 의원의 지적에 대한 답이었다.

 

우리나라는 2004년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정부는 국가 간 양해각서를 체결해 외국인 노동자를 선정하고 내국인 고용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노동력을 알선한다.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상시노동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이 최소 1개월 이상 내국인을 구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채용에 실패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국내 취업기간은 3년으로 제한된다. 헌법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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