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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낙태약' 조제권 논란 뒤엔 의약분업 문제가…

지금도 낙태로 입원하면 병원서 조제 가능…의약분업 두고 의사·약사 시각차 여전

2020.11.03(Tue) 16:49:57

[비즈한국] 정부가 약물 요법의 임신중절(낙태) 시술 방법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먹는 낙태약 조제권이 병원과 약국 중 어느 곳으로 향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의약분업제도에 따라 환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약국에서 사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낙태 약물은 예외로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직접 투약하자고 주장하며 논란이 점화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아직 제약회사나 수입업체의 낙태약 국내 허가 신청은 ‘0건’이지만 벌써부터 관심이 뜨겁다.

 

#현행법상 약사에게 조제권…낙태약 예외로 할 것인지가 쟁점

 

제약회사나 수입업체의 낙태약 국내 허가 신청은 ‘0건’이지만 벌써 관심이 뜨겁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비즈한국 DB


지난 7일 보건복지부는 임신 초기 14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지난 2019년 5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에 따른 후속조치다. 입법예고안에는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을 합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임신 중기인 15~24주에는 성범죄 피해나 사회·경제적 사유 등이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기로 했다.

 

앞으로 미프진 등 먹는 낙태약의 국내 도입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의료계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제기된 상황이다. 환자가 낙태를 하러 병원을 찾아 외래 진료를 받을 경우 낙태약을 병원에서 바로 받을 수 있게 할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발급해 약국으로 향하도록 할지를 두고서다. 우선 현행법대로라면 후자를 따라야 한다.

 

‘약사법 제23조 4항’는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며 조제권이 약사에게 있다고 명시한다. 다만 △약국이 없는 지역 △응급환자 및 조현병 또는 조울증 등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조제하는 경우 △입원환자 △주사제를 주사하는 경우 △감염병 예방접종약이나 진단용 의약품 등을 투여하는 경우 △사회봉사 활동을 위해 조제하는 경우 등은 의사가 약을 직접 지을 수 있다.

 

산부인과의사회를 포함한 의료계는 낙태약을 예외로 둬 병원에서 처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정신과 약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병원에서 직접 조제한다. 낙태약도 똑같이 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약사계는 원칙대로 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현행법대로 해도 응급상황이나 입원 시에는 병원에서 조제 받을 수 있다는 것. 약업계 관계자는 “낙태를 해서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입원을 하게 되는데 그 경우는 이미 병원에서 투약받을 수 있게 돼 있다”고 밝혔다.

 

#의약분업 예외 두기 어렵단 전망 나오는 이유

 

미프진(사진) 등 먹는 낙태약의 국내 도입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낙태약을 병원에서 조제하게 할지, 약국에서 받게 할지를 두고서 또다른 고민이 제기된다. 사진=외국 의약품 판매 사이트 캡처


낙태약을 의약분업 예외 항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은 도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낙태약을 예외로 두면 제도 자체를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앞서의 약업계 관계자는 “형평성 문제가 일 수 있다. 질병은 민감 정보, 즉 프라이버시인데 이는 낙태뿐 아니라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라며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불가피한 경우 병원에서 바로 조제할 수 있게 해놓은 상황에서 예외를 하나씩 추가하게 되면 의약분업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앞서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도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며, 정부 안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따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미페프리스톤(제품명 미프진), 미소프로스톨 등 낙태약 성분은 투약 이후 부작용을 계속해서 추적 관찰해야 하는 약이다. 미페프리스톤은 자궁 내막을 파괴해 태아를 자궁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고, 미소프로스톨은 자궁 수축 작용을 한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이사는 “신체기능을 일시적으로 저해하는 기능을 하는 약이라 당연히 장복하면 안 되는 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부작용이 우려돼 복용에 신중해야 하는 약이라고 해서 이것이 약 조제권을 병원과 약국 중 어디에 넘길지를 판단하는 요소는 되지 않는다. 법이 바뀌지 않더라도 낙태약은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내주며, 처방 내역이 전산 기록에 남아 약을 어디서 구매하든 병원에서 부작용 등 환자 관리가 가능하다.

 

#의약분업 둘러싼 의·약계 시각차 반영

 

법이 수정되지 않더라도 낙태약은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내주며, 처방 내역이 전산 기록에 남아 약을 어디서 구매하든 병원에서 부작용 등 환자 관리가 가능하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번 논란이 의약분업제도를 둘러싼 의·약계의 근본적인 시각차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있다. 의약분업제도는 항생제 등 오남용의약품의 사용 방지 및 약제비 절감 등을 취지로 지난 2000년 7월 시행됐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환자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약국에서 모든 약을 구입했는데, 제도 시행 이후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기조가 정착됐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의약분업 실시 후 약국 조제료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추가 부담이 늘었다는 등의 이유로 의약분업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약국에서 청구한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중 조제료는 2017년 2조 760억 원, 2018년 2조 2115억 원, 2019년 2조 3686억 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의료계에서는 환자가 병원과 약국 중 약을 어디서 조제 받을지를 정하는 선택적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약업계에서는 의사의 처방에 대한 약사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토록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대로 약사가 약을 조제해야 하는 데다 처방약 리스트가 공개되지 않아 환자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같은 성분의 약이라면 약사가 대체 약을 조제할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다. INN(국제일반명) 제도 요구도 지속해서 나온다. INN 제도는 한 개 성분당 몇백 개의 브랜드 제품을 허가하지 않고,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통일된 국제일반명(성분명)을 정해 시판 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그래야만 의사와 약사 사이 상호견제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편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3일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를 받게 됐다. 청원인은 “국회는 주수 제한 없이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법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에 역행하는 것이자 여전히 여성의 몸을 국가의 인구재생산 기계로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괄적으로 임신 주수에 따른 제한적 임신중지 허용안을 고수하는 점도 여성들의 다양한 건강 상태와 경제적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가는 낙태죄 존속의 방식이 아니라 성 인지 감수성에 입각한 피임 교육과 성교육·성 평등 교육을 체계적으로 전 연령층의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부터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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