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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인간은 '별의 죽음' 덕분에 탄생했다

초신성 폭발로 다양한 원소 생겨나…우주적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별 프랑켄슈타인'

2020.09.14(Mon) 10:09:04

[비즈한국]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추억과 경험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쌓이면서 나의 성격과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그 하나하나의 추억들은 씻을 수 없는 때가 되어 나의 일부가 되고, 고스란히 남아 앞으로의 인생에 계속 영향을 준다. 폭발과 함께 사라진 별처럼 모든 사랑과 인연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가슴 깊은 곳에.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은 각자의 질량에 따라 정해진 수명이 있다. 대부분의 별들은 그 수명이 다하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별들은 이런 성대한 장례식을 겪으면서 자신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핵융합 엔진을 불태우며 심장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노폐물들을 주변의 우주 공간으로 내보내게 된다. 별들은 일생 동안 핵융합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수소와 헬륨과 같은 가벼운 원소를 땔감 삼아 이들을 뭉치면서 더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무거운 원소들을 바로 태우지 못하고 찌꺼기처럼 남기게 된다. 

 

가스 구름에서 빚어진 별들이 질량에 따라 어떤 진화 경로를 걷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 별의 운명은 그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질량이 무거우면 훨씬 더 격렬한 핵융합 반응을 통해 아주 장엄한 폭발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반대로 질량이 가벼우면 훨씬 느리게 핵융합 반응이 진행되며 작은 폭발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이미지=ESA

 

#별의 폭발은 또다른 탄생으로 이어져 

 

특히 태양보다 더 무거워 그 속에 품고 있는 에너지가 훨씬 뜨거운 별들은 더 격렬한 폭발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 더 이상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태울 땔감이 남지 않은 별의 엔진은 작동을 멈춘다. 별의 빵빵한 크기를 유지할 수 있는 내부의 열 에너지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별은 자신의 비대한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강한 중력에 의해 급격하게 수축한다. 이 수축은 순식간에 벌어지며 거의 붕괴에 가깝다. 높은 빌딩이 단 1초 만에 폭삭 가라앉는 것과 비슷하다. 별들을 이루는 모든 가스 입자들이 한순간에 중심으로 자유 낙하를 하는 셈이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별의 외곽부에 전해지며, 순식간에 외곽부를 모두 날려버리는 강한 진동을 발생시킨다. 말 그대로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폭발이다. 

 

기본 수억, 수천만 년 시간 스케일로 살아왔던 별이 통째로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초신성 폭발은 은하 하나의 전체 밝기에 버금갈 정도로 아주 강한 섬광을 남긴다. 별 하나가 죽으면서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다잉 메시지가 별 수천억 개가 모여 있는 은하 하나의 밝기에 맞먹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밝기 덕분에 초신성 폭발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은하까지의 거리를 재는 데 쓰이기도 한다. 물론 초신성 폭발은 예측할 수 없는 현상, 일종의 우주 자연 재해다. 중세 서양의 기록이나,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기록에도 과거 하늘에서 갑자기 밝은 별이 나타나, 며칠간 달보다 더 밝게 보였다가 사그라졌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기록에 남아있는 곳을 지금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면, 한때 큰 폭발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가스 덩어리 잔해만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의 초신성 폭발은 머나먼 은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먼 곳 불구경하듯 구경한다. 자주 터지지 않는 것을 아쉬워할 정도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폭발한 별이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이 강력한 충격파는 별을 산산조각내어 별을 이루던 모든 가스 물질을 주변 우주 공간에 뿌려버린다. 거대한 별이 빛나던 그 위치에는 이제 뿌연 가스 먼지 안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가스 구름, 성운에서 태어나 수억 년 동안 우주의 한구석을 밝게 비추던 별은 다시 가스 구름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별이 존재하기 전의 가스 구름과는 다르다. 

 

폭발과 함께 별이 사라지면서 주변 공간에 별이 일생 동안 만들었던 철, 탄소 등 각종 무거운 원소들을 새롭게 덮어주었다. 과거 그 별이 존재하기 전, 이곳에는 끽해야 수소나 헬륨과 같은 비교적 가볍고 단순한, 양성자 한두 개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간단한 형태의 원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타오르기 시작한 별은 오랜 시간 천연자원을 꾸준히 태우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무거운 원소들을 계속 생산했다. 그리고 끝내 불의의 사고로 그 별 공장에 큰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그동안 공장에서 생산한 중원소 폐기물들이 주변 공간을 오염시키게 된다. 별이 태어나는 순간과 함께 이미 그 공간은 별 공장이 내뱉는 추억들로 조금씩 때 묻기 시작했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양한 원소들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를 보여주는 주기율표. 수소와 헬륨 대부분은 빅뱅 순간에 벌어진 빅뱅 핵융합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철까지 대부분의 원소들은 별의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 대부분이 다 별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핵융합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무거운 금과 은 같은 원소들은 중성자 별이 충돌하거나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 등 더 극단적인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미지=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3/6426/474/tab-figures-data


#별 하나 하나는 우주를 오염시킨다 

 

다만 인간이 만든 공장과 별 공장이 다른 점은, 별 공장의 폐기물은 오히려 유익하다는 점이다. 우리 몸, 친구 가족들의 몸, 지금 내가 글을 쓰며 앉아 있는 의자, 우리가 숨 쉬는 공기, 게다가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지구 자체도 온갖 다양하고 복잡한 중원소들이 함께 반죽되어 만들어졌다. 만약 우주가 지금껏 오로지 수소와 헬륨과 같은 단순한 원소로만 이루어져 있었다면 애초에 우리를 만들 재료가 없고, 우리가 존재할 수도 없다. 지난 130억 년의 시간 동안 일련의 과정을 거쳐 초기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런 다양한 원소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가 우주에 나타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우주에서 이런 중원소를 만들 수 있는 과정은 단 하나, 바로 별의 핵융합이다. 우주 곳곳을 오염시키고 있는 별 공장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다른 가능성은 없다. 즉, 우리 몸과 지구 곳곳에 녹아 있는 모든 원소들은 과거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주변 어딘가에서 짧은 삶을 마무리한 초신성의 파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를 우주에 존재할 수 있게 한 레시피는 수십억 년 전 사라진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게 성운을 남긴 초신성 폭발의 순간을 재현한 영상. 영상=ESA/Hubble(M. Kornmesser & L. L. Christensen)

 

어쩌면 우리의 몸속에는 오래전 그들의 하늘을 비추던 태양이 폭발하면서 우주에 사라진 외계인들의 살점이 조금씩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또 우리의 태양이 폭발해 우리도 지구와 함께 우주 공간으로 산산조각 나서 흩어지게 되면, 먼 미래 우리의 살점이 또다른 외계인의 피부 속에 녹아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별 프랑켄슈타인'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 어떤 별이 죽음과 함께 남긴 연기 잔해는 다시 재활용되어 그다음 세대 새로운 별들의 재료가 된다. 과거 우주 한편을 차지했던 선배 별의 살점이 갈갈이 찢어져 섞이게 된다. 우리의 태양도 그렇게 태어났다. 우리의 태양,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행성들, 그 중에서 지구라는 행성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우리들 몸 속에도 지금가지 130억 년간 폭발과 함께 사라진 많은 별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리는 오래전 폭발한 초신성의 후손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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