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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00만 원짜리 키보드 안 쓰면 탈락? 속기사 자격증 공정성 논란

일반 키보드로 합격한 응시생 '부정행위'로 탈락하자 국민청원 올려…대한상의 “규정 개정 논의하겠다”

2020.08.11(Tue) 10:06:00

[비즈한국] 대한상공회의소 주관 국가기술자격증인 ‘한글속기’ 시험에 공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속기용 키보드를 필수로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키보드를 사용해 1급 속기자격증을 딴 뒤 자격박탈 조치를 당한 A 씨가 이 내용을 유튜브에 올리며 문제가 불거졌다. 

 

속기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선 고가의 속기용 키보드를 필수로 구비해야 한다. 사진=한국스테노 홈페이지


A 씨는 “특정 속기키보드만을 사용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부당하다”고 말하며 추후 행정소송·국민신문고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관계부처와 검토해 민원 가운데 필요한 부분은 반영하겠다”며 추후 개정 가능성을 열어놨다.  

 

#자격증 따려면 300만 원짜리 속기키보드 필수?

 

한글속기는 발언 내용의 신속, 정확한 입력 능력을 평가하는 국가기술자격 시험이다. 각 급수별로 정해진 발언 속도에 따라 낭독된 연설문 및 논설문 문장을 속기법으로 속기하면 정확도 90% 이상 여부를 판단해 합불 여부가 결정된다. 자격증을 따면 국회, 법원, 속기사무소 등에서 속기사로 일할 수 있다. 

 

2020년 8월 10일 기준 대한상공회의소 자격평가사업단 홈페이지 한글속기 시험 안내에 따르면 '한글속기 시험은 속기용 프로그램이 내장된 속기용 키보드로만 응시가 가능하다. 한글속기는 속기키보드를 빠르고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격시험이기 때문‘이라며 일반 키보드의 응시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속기사 시험에 사용할 수 있는 기기는 3가지다. 속기키보드는 속기사들을 위해 개발된 세벌식 자판으로, 일반 키보드와 배열이 다르다. 국내 시장은 한국스테노(옛 CAS 속기)와 소리자바가 사실상 과점하고 있다. 이들 회사 제품은 300만 원에 달한다. 한국스테노가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스마트 카스 플러스’의 가격은 사양에 따라 257만 4000원, 286만 원이다. 문화콘텐츠개발원의 40만 원대 KS표준속기겸용키보드도 사용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추가 생산 계획이 없는 상태로, 남아있는 재고만 판매되고 있다. 

 

규정에는 ‘기타 속기 프로그램이 내장된 속기용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지만 한국스테노와 소리자바 외에 현재 속기용 키보드를 제작하는 곳은 국내에 없다. 사실상 고가의 기기를 구매해야만 시험 응시 자격이 되는 것이다.  

 

#일반 키보드로 시험 합격 사례 나와…대한상의 “검토하겠다”


위 이미지는 7월 3일,  아래 이미지는 8월 10일 한글속기시험 안내 페이지. A씨의 문제제기 이후 ‘일반 키보드는 속도 면에서 시험을 따라갈 수 없고 소음이 크게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삭제됐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자격평가사업단 홈페이지

위 이미지는 7월 3일, 아래 이미지는 8월 10일 한글속기시험 안내 페이지. A씨의 문제제기 이후 ‘일반 키보드는 속도 면에서 시험을 따라갈 수 없고 소음이 크게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삭제됐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자격평가사업단 홈페이지


A 씨는 비즈한국에 “대한상공회의소 자격평가사업단 홈페이지 한글속기 시험 안내문구에 ‘일반 키보드는 속도 면에서 시험을 따라갈 수 없고 소음이 크게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나와 있었다. 8월 11일 현재는 일부 문구가 삭제됐다. 저소음 일반키보드로 충분히 속도를 내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속기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속기사 자격증이 필수인데, 특정 키보드를 사용해야만 응시자격이 된다는 건 부당하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일반 키보드를 가지고 시험을 쳤다”고 말했다. 

 

A 씨는 두벌식으로 된 일반 키보드를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가 1급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합격 소식을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고, 자격 논란이 일자 대한상공회의소는 A 씨에게 부정행위에 따라 자격을 박탈한다고 공지했다. 이 내용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가 8월 11일 오전 7시 기준 85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업계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안태진 속기사(진속기사무소)는 “규정을 위반한 건 잘못됐지만 일반 키보드를 사용하든 속기용 키보드를 사용하든 현업에서 일할 때는 문제가 없다. 속기사 자격증을 따는데 굳이 키보드 기종을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만 소리자바가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음성인식 AI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등 기술적 측면에서 도태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KS표준속기겸용키보드를 개발한 박해동 문화콘텐츠개발원장은 “A 씨는 특수사례다. 일반 키보드로 1급 속기자격증을 따는 건 쉽지 않다. 속기사는 보통 1초에 6자, 1분에 360자를 치는 숙련된 직업이다. 속기키보드의 금액과 관련해서는 수동 작업이 많은 점, 대량 생산을 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책정됐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시험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과정에서도 행정절차, 역사 등 시대 흐름에 맞게 발전해 온 맥락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엄연한 규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국가기술자격 시행규칙 서식 6호 상 지정된 기기 이외의 기기로 시험에 응시하는 건 부정행위에 해당한다. 이번 사례는 규정을 시험 전에 확인한 후 일반 키보드로 응시했으므로 절차상 부적격 취득으로 보고 자격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제기된 민원은 속기사 채용기관, 속기 전문가, 수험생 의견이 종합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보이므로 관계부처와 검토해 필요한 부분은 반영해 나가겠다”고 추후 개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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