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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도심 속 미술관 역사 산책, 남서울미술관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 영사관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 되기까지 이야기

2020.08.04(Tue) 11:32:05

[비즈한국] 바야흐로 휴가철이지만 휴가 분위기는 아직이다. 코로나19와 집중호우 탓이다. 당장 서울과 수도권에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이나 비 예보가 줄을 이었다. 이럴 땐 아이랑 지하철을 타고 도심 속 미술관을 찾는 건 어떨까. 누구나 다 아는 미술관 말고, 아직은 찾는 이 많지 않은 곳이면 더 좋겠다. 여기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오래된 근대문화유산이면 금상첨화일 듯.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 자리 잡은 남서울미술관이 바로 그렇다. 대한제국 시기의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니. 아직은 코로나19 탓에 부분 개관 중이니 사전 예약이 필수다. 

 

코로나19 이전 평온하던 시절의 남서울미술관 풍경. 옛 벨기에 영사관의 고풍스런 건물과 나무와 햇살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모습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대한제국 벨기에 영사관이 강남에 온 까닭은?

 

하마터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쎄게’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대한제국 시절의 외국 영사관이라니. 더구나 이 건물은 분명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이해가 된다. 화강암 계단이 튀어나온 현관에 붉은 벽돌, 무엇보다 수십 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도열한 건물의 좌우 발코니가 서양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마당에 들어선 전시물들은 이곳이 미술관임을 말해주지만, 사뭇 이국적인 건물의 풍경은 여기가 근대문화유산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에 벨기에 영사관이 들어선 것은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이었다. 처음 영사관이 지어진 곳은 사대문 안인 중구 회현동. 그러다 1982년 도심 재개발 사업에 밀려 이곳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짐만 옮긴 것이 아니라 아예 건물을 통째로! 그만큼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로 인정을 받은 까닭이다. 

 

화강암 계단이 튀어나온 현관에 붉은 벽돌, 무엇보다 수십 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도열한 건물의 좌우 발코니가 서양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제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마당에 들어서 안내판을 보고 있자니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한제국이 유럽의 소국인 벨기에와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언제일까? 왜 벨기에 영사관은 다른 나라 영사관들이 몰려 있던 정동이 아니라 한참 떨어진 회현동에 자리를 잡았던 것일까? 대한제국이 사라진 이후 벨기에 영사관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 

 

대한제국과 벨기에가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901년이다. 당시 벨기에는 일본,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청나라에 이어 대한제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열 번째 나라였다. 13년의 짧은 기간에 대한제국이 통상조약을 맺은 나라는 모두 11개국. 벨기에에 이어 이듬해 조약을 맺은 덴마크가 그 마지막 국가다. 그 무렵 벨기에는 유럽의 떠오르는 신흥 강국이었다.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나 19세기 중반에 독립,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거대한 부를 쌓았다. 덕분에 콩고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렸지만. 

 

#돌고돌아 이제는 미술관으로

 

아무튼 넘쳐나는 국력으로 극동의 작은 나라에도 숟가락을 얹은 벨기에는 우선 정동에 공사관을 개설했다. 정동은 고종이 있던 덕수궁과 가깝고 다른 나라의 공사관들이 몰려 있을 뿐 아니라 치외법권 지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벨기에의 국력을 과시할 거대한 건축물을 새로 짓기에는 정동은 이미 만원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벨기에는 자신의 공사관 건물을 회현동에 짓기로 결정했다. 대신 크고 웅장한 설계도를 그렸다.

 

일본 건축회사의 주도하에 멋진 건물을 세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건물이 완공되고 본격적인 외교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른바 을사늑약이 맺어졌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했고, 공사관으로 계획되었던 건물은 한 단계 아래인 영사관이 되었다. 거기다 1910년 대한제국이 주권마저 빼앗기자 벨기에 영사관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다. 몇 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스위스와 함께 영세중립국을 선포했던 벨기에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끼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벨기에 영사관은 이 웅장한 건물을 일본 보험회사에 팔고는 충무로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 내부 풍경. 건물 안의 문과 창과 기둥에도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페이스북

 

이후 이 건물은 일본 해군 관저로, 해방 후에는 해군 헌병대 건물로 쓰이다가 1970년 상업은행이 소유하게 된 뒤 1982년에 지금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상업은행이 우리은행으로 바뀐 후에는 서울시에 무상 임대하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으로 쓰이고 있다. 벨기에 영사관에서 남서울미술관에 이르는 과정은 상설 전시인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영사관’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행메모>


남서울미술관 

△위치: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문의: 02-598-6247

△관람시간: 화~금요일 10:00~20:00, 토~일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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