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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코로나 6개월,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방역 일부 성공'은 의료진과 환자 희생 덕분…사람들 경각심은 사라지고,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2020.07.09(Thu) 14:57:23

[비즈한국] 0. 코로나 사태는 이제 6개월째 접어들었다. 아직 언론 보도는 많이 나오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코로나’라는 단어는 더 이상 두렵게 와닿지 않는다.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식당과 술집도 사람들로 차 있다. 건강하고 활동 가능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으로 학습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소간 코로나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의료진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공식적인 경계 방침은 전혀 느슨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나는 지난 6개월간에도 대학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했을 때 전방에 있으면 커다란 사실을 목격할 수밖에 없다. 일선은 너무 달라졌다. 진료 행위 자체가 이제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변모했다. 나는 이 격랑의 과정에서 발생한 혼돈과 희생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제 6개월째 접어들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코로나’라는 단어는 더 이상 두렵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진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서울 이태원 선별진료소에 대기한 시민들 사이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1. ‘코로나 방역’에는 ‘확진자 치료’, ‘확진자 찾기’, ‘전파 방지’ 정도가 있다. ‘확진자 치료’는 그야말로 확진자를 병상에서 치료하는 일이다. ‘확진자 찾기’는 선별 진료소나 외래에서 검사를 하고 자가격리를 안내한 다음 결과를 개인에게 통보하는 일이다. ‘전파 방지’는 의료 기관에서 이차 감염을 방지하는 일이나, 행정 조직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고 접촉자를 격리하는 등의 일이다. 확진자 치료나 환자를 검사하는 일에는 최대한의 방역 조건이 요구된다. 모든 행위에 높은 수준의 보호장구가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체력적 부담이 막대하다. 보호장구의 소비 또한 발생한다. 행정 조직은 불특정 다수의 행적을 복기하고 통제하고 연락을 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막막한 일이다. 어느 하나 위험하거나 고되지 않은 일이 없다. 모두가 방역의 핵심이다.

 

나는 응급실에서 일한다. 응급실은 ‘확진자 찾기’와 ‘전파 방지’를 모두 담당하는 최일선이다. 열이나 호흡기 증상, 기타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자가격리를 안내하고 결과를 통보하는 일도, 의심 환자를 격리해서 전파를 방지하는 일 또한 맡는다. 단순한 설명이지만 실제 적용해보면 관련된 모두에게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응급실은 선별 진료소나 기타 외래처럼 환자를 검사하고 귀가시킬 수 없다. 그들 대부분은 입원이 필요하거나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선별 진료소나 외래에서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응급실로 오고, 그들 또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잠재적 확산을 막아야 한다. 일단 코로나 ‘의심 환자’로 판단되면 우리는 그 환자를 코로나 환자에 준해서 진료해야 한다. 기한은 ‘코로나 음성’이 확인되는 12시간에서 24시간까지다.

 

방역 당국이나 대다수의 병원은 ‘코로나 청정’ 지역을 강조해왔고, 이를 일선에 전달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무는 처절하다. 기준은 높고 맹목적이며, 이론상으로는 코로나 환자가 아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노인이 폐렴에 걸렸다. 사실 와병 생활 하는 노인 대부분에게는 폐렴이 호발한다. 당연히 모두가 코로나 의심 환자다. 항암치료 받고 열이 났다. 감염 확률이 없지 않아 코로나 의심 환자다. 발등에 상처가 있어서 봉와직염으로 발전해서 열이 났다. 코로나 의심 환자다. 술을 먹고 정신을 잃어서 길에 누워 있었는데 본인이 의식이 없으니 접촉력을 말할 수 없다. 코로나 의심 환자다. 무단횡단으로 사고가 났는데 체온이 높다. 코로나 의심 환자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눈썹 찢어져서 피 흘린다. 코로나 의심 환자다. 어제 열이 있었고, 감기 기운이 있었고, 공황장애로 숨이 가쁘고, 모두가 코로나 의심 환자다.

 

이는 행정적인 영역도 있다. 초반 정신과 병동에서 코로나 전파 사태가 있었다. 예방 목적으로 모든 정신과 환자는 입원 전 ‘코로나 음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과 입원이 예상되는, 대체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정신과 질환 증상이 발현되어 실려온 사람들까지 코로나 의심 환자가 되었다. 수술도 감염 위험이 다분하기 때문에 코로나 음성을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모든 촌각을 다투는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까지도 코로나 검사를 필수적으로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위험 없는 ‘정신과’ 환자나 ‘수술’ 환자 또한 코로나 환자에 준하게 되었다. 계속 이 명단은 늘어났다. 현재 코로나를 배제할 수 있는 중환이 별로 없을 지경이며, 솔직히 이런 조치에도 완벽히 막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단 이 방비가 엄청난 고역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환자는 음압이 갖춰진 음압실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그와 접촉하는 모든 의료진은 보호 장구를 입고 덧신을 신고 장갑을 끼고 고글을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접촉한 모든 의료진을 별도로 마련된 서류에 기록해야 한다. 그 환자가 CT를 찍으러 가거나 병실로 올라간다면 통로를 통제해야 되므로, 피 흘리고 팔다리 부러진 사람, 우는 아기들 모두 응급실에서 쫓겨 나갔다가 들어와야 한다. 거의 30분에 한 번 정도 환자들은 우르르 나갔다가 들어온다. CT를 찍는다면 그 기계는 두 시간가량 사용할 수 없고 소독해야 한다. 그들이 나온 방 또한 일정 시간 동안 환기하고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소독해야 한다. 그 버려지는 방역복, 청소 도구와 기록의 고단함과 통제의 불가피성과 행정의 황망함과 이론상 방역 실패가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이 응급실이다. 그 대부분이 코로나 환자가 아님에도 이뤄지는 조치라고 생각하면, 호수에 돌을 던져 메우는 느낌이다.

 

​2. 단도직입적으로, 현재의 체계에서 불가능한 방비였다. 비용도 문제지만, 시설과 장비가 이렇게 갖춰지지 않았으며, 모든 발열, 호흡기 환자를 격리해서 진료한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다. 왜 이런 시스템을 갖춰놓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동서고금의 어떤 병원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사스와 메르스 사태 전만 해도 이 시스템은 이론만 있었다. 그전에는 감염 환자가 타인에게 전염되는 시스템이었냐고 물으면, 그렇다. 병원에서 일하다가 잡균에 감염되는 것도, 옆 환자의 각종 병원균이 환자에게 옮는 것도, 필연적이었다. 이 방비를 완벽히 갖추기 위해서 너무 많은 자원이 필요했고 진료에 커다란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그래서 유례없이 전염성 높은 ‘코로나19’의 출현으로 대다수 국가의 의료 체계가 붕괴에 가까운 결말을 맞았다. 그러니 우리나라만의 문제였던 것도 아니다.

 

하나당 20억 원짜리 음압실을 갖춰놓고 온갖 방역 장비를 일회용으로 투입해서 감기, 몸살, 국소 염증을 포함한 모든 발열 환자를 보는 것은 사실 효율적이지 않다. 그나마 몇 차례의 감염병을 겪은 우리는 설비를 마련했다. 그 준비 상태가 20 정도 되었다면, ‘코로나 청정 지역’이라는 방침은 갑자기 100의 수준을 요구했다. 이론상 코로나를 막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가 하달된 셈이다. 이 차이를 메우는 일은 고스란히 일선에 부가되었다.

 

처음 응급실은 난장판이었다. 격리 기준도 해제 기준도 불분명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었고 의료진 개개인이 판단해야 했다. 맹장 수술하러 왔는데 마취과에서 코로나 검사를 요구하면, 그때부터 음성을 확인할 때까지 이 사람을 그대로 진료해도 될까? 호발 지역에 사는데 그냥 집에만 있었다고 한 사람은? 아직 발발이 확인되지 않았던 요양원에 누워 있었는데 열나는 사람은? 정신과 환자로 자해 난동을 간신히 제압했는데 코로나 검사 나간다면? 격리 환자 가족인데 발목이 접질렸다면? 모조리 음압 격리실, 최고 수준 방역, 보행자 통제, 접촉자 기록이었다.

 

명백히 코로나 환자가 아닐 것 같은 사람을 방역복 입고 진료하는 것도 대단히 고역이고, 심정적으로 무한한 일이었다. 정말 취객이나 행려, 중증외상, 흡인성 폐렴, 정신과 환자들까지 코로나 환자 진료할 때 입는 옷을 다 갖춰 입고 진료해야 할까? 자원의 낭비는 아닐까? 하지만 코로나 방비를 위한 이론상으로는 그래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자원을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부족한 물품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의료진은 고되고 보람 없는 작업에 익숙해졌다.

 

우리 응급실에 음압이 가능한 곳은 일곱 자리다. 많은 수준이지만, 한 번 검사가 나가면 음성이 확인될 때까지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환자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와병 생활 하는 노인이나 행려 환자 등, 응급실 24시간 중 대부분은 음압실이 다 차 있었다. 그러면 원칙대로 하면 되었다. 중앙센터에 ‘발열, 기타 감염 의심 환자 이송 불가’를 통보하고, 음압실 부족으로 의심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몇 시간씩 대기시켰다. 부러진 손발이나 찢어진 턱으로 여섯 시간쯤 대기하는 일은 예사였다.

 

한 구급대원이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병원 응급센터에 이송한 뒤 나오고 있다. 일선의 인력은 보강되지 않았고 시설과 물자는 매번 부족하고 행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의료진은 점점 지쳐간다.사진=이종현 기자

 

‘코로나 의심 환자’와 ‘기타 환자’들의 고통은 어마어마해졌다. 예견된 결과였다. ‘코로나 청정 지역’을 만들기 위해 희생이 돌아간 곳은 대부분 여기였다. 일단 ‘집에 갈 수 있는 발열 환자’는 모두 코로나 음성 확인을 받을 때까지 집에서 대기해야 했다. 만 하루가 지나야만 그들은 병원에 다시 찾아와서 추가 검사와 처방이 가능했다. 무리하게 집에 보냈다가 나빠진 경우는 열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일반적인 치료가 하루씩 미뤄진 셈이며, ‘코로나’라는 단일 질환 때문에 겪는 다른 환자들의 고통이었다. 현재도 거의 모든 발열 환자는 이 고통을 겪는다. 위험 높은 중환자일수록 더욱 병원 오갈 때마다 통제되고 검사받고 격리당하고 있다.

 

그러자 이송 체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각 병원은 타원에서 ‘코로나 검사 중’인 환자를 받지 않았다. 타원에서 열이 나는 환자도 받지 않았다. 발열 환자를 접수받은 119 대원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게 되었다. 환자들은 제때 이송되지 못했다. 타원에서 열이 나도 코로나 음성이 확인되어야 전원이 가능했다. 방역복을 모두 갖춰 입은 119 대원들은 도로를 헤매게 되었다. 여기서 코로나 환자가 다녀가 폐쇄되는 응급실이 생겨났다. 의료진 또한 격리되었으며, 그 인력이나 병상만큼의 가용 자원을 잃었다. 그만큼의 환자가 다른 곳으로 쏠렸다. 여력이 있는 응급실 앞에 환자들과 대원들은 장사진을 치게 되었다. 이것은 절대로 단순 혼돈이 아니다. ‘코로나’라는 단일 질병 때문에 기타 많은 질환의 사람들의 고통이 배가되는 장면이었다.

 

3. 한 노인이 왔다. 팔십 세가 넘었다. 소변보는 일이 힘들어 병원을 다녔고, 오늘 밤에도 소변을 보지 못해 왔다. 당장 소변만 보게 해주면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열이 있었다. 높은 열은 아니었지만 정해진 수치를 넘었다. 열이 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변을 참으며 급하게 달려오느라, 혹은 바깥이 더워서, 혹은 감기 몸살이 있어서, 혹은 다른 감염이 있어서, 혹은 아주 낮은 확률로 신종 감염병일 수 있었다. 여하튼 응급실에 들어올 수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음압실에서 흉부 사진이 정상임을 확인하고, 특이 접촉력이 없음까지 확인된 이후에야 들어와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노인은 화를 냈다. 만성 질환에 시달리다가 당장 소변이 급해 응급실에 찾아온 노인을 독채 음압실에 넣고 대기를 시키면, 화를 안 낼 수가 없다. 그 정도의 인내심은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 없다. 그는 처음에는 음압실로 들어갔으나, 계속 탈출했다. 빨리 소변만 빼주면 갈 텐데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는 감염원 취급을 받았다. 마스크와 방역복을 입은 보안요원이 나서서 그를 제지했다. 영화 속에서 탈출한 사람 같았다. 그럴수록 진료는 진행될 수 없었고, 그는 점점 더 소변이 급해졌다. 그가 내지르는 소리가 응급실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차라리 집에 가겠다고 접수를 취소했고, 딱 2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제발 소변을 빼달라고 했다. 제발.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사실 그는 코로나 환자가 아닐 것이었다. 저 노인이 하필 코로나19로 열이 날 확률은 누가 보기에도 낮았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열이 나거나, 접촉력이 있거나, 위험지역을 방문했거나, 입원이나 수술을 해야 할 경우, 무조건 관련된 검사를 받았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그런데 노인 한 명만 예외로 해주어야 할까? 나는 정이 많고 윤리적인 사람이니, 그를 빨리 응급실 안으로 들여 소변을 빼주고 보내면 되는 걸까?

 

그건 안 된다. 심지어 나는 원칙상 나가서 그를 설득할 수도 없었다. 그와 대면하는 것조차 감염 위험이 있는 일이라서 전화나 인터폰으로 해야 했다. 당장 방광이 터질 것 같다는 노인과 인터폰으로 병력과 접촉력을 묻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당장 방호복을 갖춰 입고 나가서 소변을 빼주면 되는 걸까? 확인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가 추가 검사를 받지 않고 갈 가능성 또한 높다. 나는 내일 아침까지 환자를 마주하고 진료해야 하는데, 확인되지 않은 감염의 위험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더 윤리적이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혼잡한 응급실에서 생각이 꼬이는 동안 그는 다시 소리를 지르다 나가버렸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그 다급함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모른다. 그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4. 단일 질환인 코로나를 방비하기 위해서 응급실에서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일들은 더 이상 나열할 수가 없다. 이걸 그만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라는 질환이 번질 경우 발생할 잠재적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희생이 필요하다. 적어도 그렇게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상태다. 또 궁극적으로 병원은 안전해져야 하며,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를 막아야 한다. 이번 사태로 감염 기준이 강화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나쁜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대단히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일선의 기준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매번 강화되지만, 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사실 일선에도 온도 차이가 있다. 대학병원 안에서도 응급실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검사를 하고 음성 확인되면 그다음 처치를 하겠다거나, 왜 그런 방비가 필요하냐고 묻거나, 왜 환자를 못 받느냐고 묻곤 한다. 응급실은 초반 환자가 줄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제 사람들의 경각심은 사라졌고, 환자 수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환자들에게 해야 할 일만 곱절로 늘었다. 그 일선의 인력은 보충되지 않고, 그 사람들이 그대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솔직히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119 대원들, 매번 방역복 입고 감염 위험 안은 채 거리를 배회하며 문전박대 당하고 있다. 전화 거절할 때마다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우리 보안요원들도 병원 들어오는 모든 사람 24시간 감시하고 방역복 입고 감염 위험 환자 통제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청소하시는 분들도 방역복 입고 24시간 불려다니면서 온갖 방 청소를 하고 있다. 나는 담당 공무원들 노고를 보지 못해 모르지만, 그쪽이야말로 기절 직전일 것이다. 모두 이전에 하던 일에서 추가된 것이다. 의사의 일 또한 복잡해지고 형식 많고 분류할 거 많고 행정적 처리 많고 감염 위험 높고 갖춰 입을 거 많고 설명할 것 많고. 이걸 다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간호사들 보면 진짜 눈물 난다. 우리 응급실 입구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24시간 환자 분류하고 감염 위험도를 체크하고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받는다. 응급실 못 들어오는 사람, 진료 불가능이나 대기 통보받는 사람들이 모조리 그 간호사를 붙들고 욕한다. 원칙상 감염 위험이 있어서 도와주기도 어렵다. 그 몸 아픈 사람들이 뱉는 분노, 증오 같은 것, 안 들어본 사람은 모른다. 또 코로나 의심 환자 있으면 따라다니면서 조선시대 사관처럼 접촉자를 엑셀 파일로 매번 적어서 보고하고 애먼 사람들 통제해야 한다. 환자들 의식 없고 통제 안 되고 모든 수기마다 방역복 갖춰 입고 고글에 김 서려서 안 보이고, 하지만 인원 보강은 된 적 없다. 일하던 그 사람들이 욕먹으면서 추가로 그 일들을 다 하고 있다.

 

가끔 확진자 나오면 응급실이 뒤집힌다. 접촉자 누구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장갑을 두 개 껴야 하는데 한 개만 꼈고, 왜 이런 사람을 응급실 어디에 뉘었냐는 등 말이 나오고, 언론에서는 방역에 구멍 운운하고, 이런 실무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 그때그때 튀어나와서 준엄하게 꾸짖는다. 솔직히 장갑 벗어던지고 너희가 해보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들 때가 많다.

 

나도 세 달 전 태어난 조카를 아직 사진으로밖에 못 봤다. 방콕 공항 경유로 돌아와서 올해 휴가 전부 반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울 경계 벗어나 본 적도 없다. 사람 많은 자리 열심히 피하고, 열나면 출근할 수 없으니 꾸준히 몸 관리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했다. 그래도 나는 정말 괜찮다. 우리 간호사들은 감염 위험 있다고 아이 친정에 맡겨놓고 얼굴도 못 보고, 각자 사연들 들으면 정말 몸을 갈아 넣어서 일을 하고 있다. 이 생활 시작한 이래 이번처럼 그만두고 싶은 위기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언제 끝난다는 기약은 없다.

 

무엇보다도 이건 약자들의 이야기다. 애초에 변화는 약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나는 이 준비되지 않은 체계와 요구되는 수준을 메운 것은, 20%의 의료진 희생과 80%의 환자들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뇌출혈 환자들 코로나 결과 안 나왔다고 전원 거부당하고, 기타 빨리 수술해야 되는 환자들 수술 지연되고, 고름 생긴 채로 코로나 음성 나올 때까지 참고, 음압격리실 없다고 다른 병원 보내고, 이것들 하나하나 환자들에게 분명한 위해다. 아예 정상 진료가 어려운 판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 얼마나 고통받는지 보도하는 언론 봤나? 매번 구멍, 위험, 무방비, 확진자 충격적인 동선, 이런 것이나 보도하지, 이 약자들 직접적으로 고통받는 거 보도하는 언론이 있었나?​

 

‘방역의 일부 성공’으로 보이는 일들은 사실 인력과 물자를 갈아 넣은 어마어마한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의료진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진=최준필 기자

 

결국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대부분 이전부터 고통스러웠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코로나 환자군 자체가 열악한 노동 집단이나 소수자였다는 것도 주요한 사실이지만, 코로나 환자가 아닌 다른 기타 질환 환자들의 막대한 희생 또한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집에 갔다가 다음날 진료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의 희생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렇지 않은, 매번 응급실 오갈 때마다 코로나 때문에 입원 거부당하고 병원 전전하고 병 키워서 오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도 관심이 없다. 원래 관심 못 받고 아프기만 했던 사람들이라 그렇다. 고통의 총량은 배가되었고 생명을 위협하는 일도 많았다.

 

일선의 인력은 보강되지 않았고 시설과 물자는 매번 부족하고 행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우리는 점점 지쳐간다. ‘덕분에 캠페인’ 같은 것, 사실은 낯간지러워서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어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 자리가 워낙 희생을 요하는 일이라서 한다. 영웅주의는 상상력의 소산이며, 특정한 집단이 한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위선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사태에서 진짜 일해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 누가 실질적으로 고통받는지에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조명은 이상한 곳으로만 향했다. 얼마 전 드론쇼 같은 것,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진짜로 화가 났다.

 

‘방역의 일부 성공’으로 보이는 일들은 사실 인력과 물자를 갈아 넣은 어마어마한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그 희생, 할 수 있는 일이다. 코로나 방역은 필요한 일이고, 궁극적으로 체계는 완성되어야 하니까. 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무리하더라도 일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희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언제까지 이렇게 위험 앞에서 일해야 할지. 어떤 기한이나 계획 없이 일선에서 한정된 인력과 물자로 머리를 짜내고 희생하며 버텨내야 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누군가 그것을 몸으로 막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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