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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CEO] '한국의 저커버그' 꿈은 어디로?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

'프리챌'로 천만 회원 모았지만 유료화로 몰락…'싸이월드'로 재기 시도했지만 자금난·소송에 휘말려

2020.07.02(Thu) 16:55:07

[비즈한국] “50억 원 투자 받으면 싸이월드를 살릴 수 있다.”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57)는 6월 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조국인 판사는 이날 싸이월드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를 받는 전 대표 공판에 추가 기소된 같은 혐의 사건을 병합하기 위해 공판을 다시 열기로 했다. 다음 재판은 7월 23일, 판결은 8월 예정이다.​ 전 대표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2015년 에어라이브 코리아 대표 당시 미국 LA 한인 축제를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하기로 업무협약을 맺는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 사진=연합뉴스


1세대 온라인 커뮤니티 ‘프리챌’의 창업자가 2세대 커뮤니티인 싸이월드 수장이 된 지 4년 만이다. 토종 브랜드로 SNS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전 대표는 어쩌다 직원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까.

 

#삼성 출신 1세대 벤처사업가, 1000만 커뮤니티 프리챌로 대성 

 

전제완 대표는 삼성그룹 출신의 1세대 벤처사업가다. 강원도 강릉 태생인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사내 인사팀과 그룹비서실 인사팀을 두루 거쳤다. 그룹 인사정보 시스템인 ‘PDSS’와 인트라넷 솔루션 ‘SPIMS’,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Eeasybase’ 개발을 주관했다. 1993년과 1994년에는 각각 삼성물산 최우수사원, 삼성그룹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한 전 대표는 10년 재직하는 동안 3번이나 특진을 했다.

 

전 대표는 벤처붐이 일던 1999년 4월 회사를 나와 포털사이트 ‘프리챌’을 설립했다. ‘자유와 도전(Free and Challenge)’을 기치로 현실 사회 커뮤니티를 사이버상에 구현하고자 했다. 8개월간 준비해 2000년 1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커뮤니티 생성기(Community Enabler)’를 개발해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타 업체가 정보 중심의 검색에 주력했던 반면 프리챌은 지금의 소셜네트워크에 관심을 뒀던 셈이다. 프리첼은 커뮤니티의 성공을 기반으로 2001년 회원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커뮤니티수 도 한때 100만 개에 육박했다.

 

프리챌은 유료화 정책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2002년 10월 이렇다 할 수익원이 없던 프리챌은 기존 커뮤니티 서비스를 유료화하기로 결정했다.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월 3000원을 받는 대신 이메일 용량 확장, 커뮤니티 내 광고 삭제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한 달여 기간 동안 요금을 납부하지 않은 커뮤니티는 없어지고, 향후 만들어지는 커뮤니티 개설자는 모두 요금을 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110만 개였던 커뮤니티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40만 개로 감소했다. 같은 시기 무료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싸이월드’, ‘드림위즈’, ‘하나포스’ 등의 포털사이트에서는 기존 게시판 내용을 통째로 옮겨주는 ‘이사 서비스’를 제공하며 프리챌 이용자를 흡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대표는 2002년 12월 주금가장납입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커뮤니티 유료화 정책에 대표 부재가 겹치면서 회사는 몰락했다. 2003년 프리챌은 솔본(옛 새롬기술)에 인수된다. 전 대표는 이후 주금가장납입 혐의를 벗었지만 2년의 옥살이와 23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짊어지게 됐다.

 

#동영상 기반 SNS로 재기, 싸이월드로 날개 펴려 했지만 

 

2008년 전 대표는 영상쇼핑서비스 업체 ‘유아짱’을 설립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너가 최고야(You are best)’라는 모토로 영상 중심의 SNS 구축을 시도하던 전 대표는 2008년 쇼핑앱 ‘유아짱’에 이어 2010년 라이브 방송 앱 ‘짱라이브’를 출시했다. 이 앱은 220만 명이 가입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이후 투자가 끊기면서 자금난으로 2012년 서비스를 중단했다. 

 

전 대표는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향했다. 2014년 1월 로스앤젤레스에 ‘에어(Aire)’라는 미국 법인을 꾸리고 한국법인 유아짱을 ‘에어라이브코리아’로 바꿨다. 2014년 10월 문자메시지와 화상채팅을 결합한 SNS ‘에어라이브’를 출시했다. 짱라이브의 진화한 버전이다. 실시간 동영상 중계는 물론 4명이 동시에 실시간 화상채팅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에어라이브는 개통 두 달 만에 국내 사용자 23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중국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돼 150여 개국에서 출시됐다. 전대표는 2015년까지 전 세계 이용자 1억 명 돌파를 목표했지만 실적은 이때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2015년 12월 전제완 대표는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영입 제안을 받는다. 

 

“(SK컴즈) CEO 자리에 앉진 못했다. 그런데 그때 SK컴즈가 싸이월드를 분사시킨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싸이월드는 직원이 지주인 회사로 힘겹게 버티는 중이었다. 29명의 종업원이 크라우드펀딩을 했지만 6800만 원밖에 못 모았다고 하더라”면서 “​두 회사 모두 ‘폐업’이라는 암울한 결과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에어라이브는 새 기술이 있었고 싸이월드는 역사, 데이터, 회원, 브랜드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 법인 에어와 싸이월드 주식을 교환하는 지분교환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프리챌 몰락 후 토종SNS 대표주자였던 싸이월드 역시 당시 어려운 상황이었다. 월 접속자만 200만 명을 뛰어넘었던 싸이월드는 2010년대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외국계 SNS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2011년 7월 네이트와 싸이월드 회원 3500만여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2003년 싸이월드를 인수한 SK컴즈는 4년간의 영업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2014년 1월 분사를 결정했다. 전 대표가 인수할 당시 싸이월드는 남은 직원 29명이 지분을 가진 종업원지주회사였다.

 

2일 싸이월드 공식홈페이지 메인 화면.

 

전 대표는 SNS 기반의 동영상 융합 서비스 ‘싸이월드 3.0’으로 부활을 꿈꿨다. 기존 싸이월드 SNS 플랫폼에 에어라이브 동영상 서비스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삼성벤처투자로부터 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아 뉴스 서비스를 개발하고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그러나 끝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인수 시장에 나왔다.

 

전 대표는 앞선 6월 재판을 마치며 “싸이월드 전체 부채 230억 원 가운데 170억 원 상당은 출자전환으로 부채를 소멸한 구조다. 임금체불액을 포함한 나머지는 50억 원이 있으면 부채 부담이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채 50억 원에 추가 운영비 50억 원을 더해 100억 원가량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아 회사를 회생하겠다는 의지였다.

 

전기통신사업법 제26조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자가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휴업하거나 폐지하려면 30일 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통보하고 이용자에게 백업 등의 공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싸이월드는 폐업 전 백업 공지를 하더라도 망 복구를 위해 비용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정상적인 데이터 백업조차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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