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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아들이 '아빠 미용사'를 선택한 이유

마음에 드는 미용실 못 찾아 직접 가위 들어…지금은 아들과 아빠가 교감하는 소중한 시간

2020.06.18(Thu) 10:28:10

[비즈한국] 머리를 잘랐다. 평소 같았으면 이야기하고 말 것도 없는 사소한 일이겠으나, 보통의 일상이 아닌 상황에서는 그조차 특별한 일이 되고 말았다. 

 

3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필수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장이 셧다운 되면서 미용실도 문을 닫았다. 짧은 헤어스타일 유지를 위해 한 달에 한 번 헤어컷을 받는 남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장발이 되어야 했다. 4월 말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공연을 선보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을 보면서 ‘조성진도 미용실 못 가서 장발이 됐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아들 전용 헤어 드레서로 변신한다. 처음에는 그저 외국생활의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지만 아빠와 아들은 그 시간을 통해 끈끈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사진=박진영 제공


머리가 길어져도 티가 잘 나지 않는 여자의 경우엔 남자보다 미용실 셧다운으로 인한 불편함이 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머리를 자를 타이밍에 모든 미용실이 문을 닫아 너무나 불편했다. 언제든 갈 수 있다면 차일피일 또 미뤘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갈 수 없게 되니 하루하루 길어지는 머리가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 그렇게 한 달여를 참다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를 무렵, 결국 남편에게 이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내 머리 좀 잘라줄 수 있어?”

 

남편은 눈을 반짝거렸다. 내가 미용실 타령을 할 때마다 남편은 자기가 잘라줄 수 있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부탁한 적도 없는데 유튜브에서 ‘여자 머리 자르는 방법’ 등을 열심히 검색하며 손가락을 가위 삼아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늉을 해보이기도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럴 일 없으니 시간 낭비 말라고, 남편에게 머리를 맡기느니 차라리 허리춤까지 기르겠노라고 큰소리치곤 했다.

 

그랬던 내가 머리를 잘라달라 했으니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었을 게다. 걱정이 됐지만, 긴 머리의 길이 정도 자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망친다 해도 묶고 다니면 되니까 괜찮다고, 합리화로 불안감을 잠재웠다. 

 

결과적으로 머리 자르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 번에 싹둑 대충 길이만 맞게 잘라주면 돼”라는 내 요구에도 남편은 머리를 양 옆 반으로 가르고, 다시 위아래로 갈라 여기저기 집게 핀을 꽂아가며 세심하게 자르는 등 제법 미용사 흉내를 냈다. 전문가에게 받는 것만 할까 싶지만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 것만으로도, 들쭉날쭉한 데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된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남편에게 머리를 맡길 수 있었던 건 3년 가까이 아들의 머리를 직접 자르는 남편의 실력 향상을 옆에서 봤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에 최적화된 개인 전용 헤어 드레서’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발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처음엔 2시간 가까이 걸리던 시간도 지금은 30분이면 뚝딱 자르고, 매번 스타일의 변화를 추구해가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이제는 어디 가서 아이 헤어스타일 멋지다는 소리도 듣고, 특히 이번 미용실 셧다운 기간에 독일인 친구로부터 ‘우리 아이 머리도 잘라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기까지 했다. 심지어 남편은 자신의 머리를 셀프로 자르는 ‘신공’까지 선보였다. 

 

한국처럼 프랜차이즈 기업의 형태가 아닌 독일에는 미용사 1인이 운영하는 작은 미용실이 대부분이다. 컷 시술도 한국에 비하면 디테일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인건비가 비싼 나라의 특성상 컷 비용은 많이 비싼 편. 샴푸 비용을 별도로 받거나 전기료 및 임대료의 일부가 서비스 비용에 포함되기도 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시작부터 홈 커트 시술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베를린 곳곳에 널린, 가격이 저렴한 편이고 예약하지 않아도 되는 터키시 미용실에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샴푸 서비스가 포함되지 않아 가격도 그리 싸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인 머리는 한국인 미용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베를린에 두 곳뿐인 한인 미용실을 차례로 경험해보았다.

 

두 곳 다 나쁘지 않았는데, 그 무렵 아이 머리를 직접 자른다는 한 한국인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의욕에 불타 헤어컷 장비를 풀 세트로 구매하면서 ‘아들 전용 미용사’의 히스토리가 시작됐다. 

 

아빠가 머리를 잘라준다는 말에 살짝 저항했던 아들은 2유로의 모델료를 지급한다는 것과 머리 깎는 내내 좋아하는 만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바로 넘어갔다. 그래도 초기 두세 번 컷을 할 때마다 실랑이가 없지 않았다. 아빠 미용사의 컷 시술 시간은 너무나도 길어서 앉아 있는 자체가 힘들게 느껴진 것도 있었고, 번번이 아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스타일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몇 달 내내 저항이 계속되자 남편은 다시 아들을 한인 미용실에 데려갔는데, 그날 이후 아들은 ‘아빠가 잘라주는 게 좋다’며 다시 아빠 미용사의 케어를 받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다르다는 걸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아들 머리를 잘라주는 일은 단순히 컷 시술만이 아니라고. 그 시간 동안 자신과 아들은 정서적으로 엄청난 교감을 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과정인 거라고.

 

베를린에 사는 동안 아들과 남편은 한국에서 살 때보다 분명 강한 유대감을 가진,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외부환경을 비롯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달에 한 번 아빠가 아들을 위해 바리캉을 드는 그 시간도 분명 한몫했으리라.

 

언제부턴가 아들은 아빠에게 먼저 머리를 잘라달라고 요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지금까지 못해도 대략 서른 번 가까이 잘랐으니 아들 헤어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 된 남편의 컷 실력에 대한 아들의 믿음도 있을 터다. 

 

한국에 돌아간 후에도 남편은 아들 헤어컷만큼은 직접 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언제까지 아들이 허락할지, 상황이 받쳐줄지는 모르겠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아빠와 아들의 일상 속 특별한 순간들이 둘 사이를 견고하게 만들어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컷 시술이 끝난 후 머리카락으로 난장판이 된 집 안을 치우는 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것만 빼면.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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