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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談] '영업왕' 노재권 대표가 공익 전문가가 된 사연

이직 횟수만 5번 '프로 이직러' 노재권 대표가 말하는 '실패는 진행형'

2020.05.26(Tue) 17:15:20

[비즈한국]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실패에 인색한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인 중 절반가량이 파산·해고·이혼 등 인생의 ‘실패’ 한 번으로 낙오자로 전락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의 경험이다. 비즈한국은 화려한 성공에 감춰진 경영인들의 실패 경험을 들어보고자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기업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생산 및 영업활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경영 목표만을 충족시키는 시대는 저물었다. 기업의 이해 당사자와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이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고, 윤리적으로 경영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는지 평가한다.

 

코즈웍스는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면서 떠오른 ‘공익 비즈니스 컨설팅’ 기업이다. 기업, 공공기관, 비영리단체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V(Creating Shared Value), 코즈(Cause) 마케팅을 위탁 운영하는 업체다. 지금까지 제작한 캠페인만 500가지가 넘는다.

 

노재권 코즈웍스 대표는 실패는 언제나 진행 중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최준필 기자


현재 코즈웍스의 수장은 노재권 대표다. 2007년 네이버의 온라인 기부 플랫폼 ‘해피빈’에 몸담으며 경력을 쌓은 그는 2017년부터 코즈웍스 대표로 있다. 공익 비즈니스계에서 전문가로 꼽히는 노 대표 역시 해피빈 입사 전 이직과 퇴사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왔고, 해피빈 입사 후에도 수많은 실패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실패를 ‘진행형(ING)’이라고 표현했다. “사업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늘 곁에 있고 언제나 진행 중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하는 노재권 대표는 어떤 실패를 겪었을까.

 

#직장 생활을 결심한 후 맞이한 첫 번째 전환점

 

Q. 코즈웍스 대표로서 첫 인터뷰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주제가 ‘실패담’이네요.

 

A. 네이버 퇴사 후 첫 인터뷰네요.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얘기를 하는 게 부담되기보다는 실패를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바라보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 ‘저게 실패야?’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요(웃음). 사업가들은 실패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되고 있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 의례라고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도 실패 중이라고 생각해요. 

 

Q. 네이버 해피빈에서 경력이 꽤 길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 직장이었습니까.

 

A. 원래 꿈은 사업가였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했던 터라 저도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죠. 1997년 외환위기로 가세가 기울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군 입대를 선택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니 그동안 놀았던 게 한심스럽더라고요. 그동안 공부를 안 했던 게 부모님께 미안하기도 했고요.

 

직장인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예요. 나름 장학금도 받으면서 공부했는데 사장님 소리 듣는 게 쉽지 않겠더라고요.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기만 하다가 이제 공부를 시작한 입장에선 술장사 말고는 할 게 없더라고요. 네이버가 첫 직장은 아니고요. 이전부터 직장 생활을 했어요. 3년 정도요. 네 곳 정도를 다녔던 것 같아요.


Q. 어떤 회사길래 3년 동안 네 번이나 이직을 한 겁니까.

 

A. 첫 직장은 보안 시스템 판매를 위탁하는 업체였는데요. 방문 판매 업무를 맡았어요. 기업이 아닌 가정을 상대로 보안 시스템을 팔아야 했죠. 하루는 불광동으로 간 적이 있는데요.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날씨 탓에 영업이 참 안 되는 날이었죠.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려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데 몇 시간을 돌아다니니까 바지 밑단부터 빗물이 스며들면서 결국 하의 전체가 다 젖은 겁니다. 

 

그렇게 허탕 치고 돌아가려는데 마지막에 방문한 집 주인이 제 모습을 보더니 계약을 해주더라고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영업하러 온 제가 짠했나 봐요. 한 달에 3만 원 정도 내면서 한 업체에 자기 집 보안을 맡기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거든요. 계약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오늘이 내 인생의 최저점이겠다’ 싶더라고요.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저는 그날을 아직도 곱씹어요. 정말 상징적인 하루였죠. 3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지만 그달에 부서 영업왕은 찍고 나왔습니다(웃음).

 

#이 길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빠르게 대처하는 게 중요


노재권 대표는 같은 실패를 하더라도 얼마나 빨리 다음 동작을 취하느냐가 그 사람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사진=최준필 기자


Q. 인생의 최저점이었다지만, 그 뒤로도 세 번이나 회사를 옮겼는데요.

 

A. 바닥을 찍었다고 꽃길만 걸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 빠르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직장이 그랬어요. 한글 도메인을 만들어주는 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했는데요. 비대면으로 개인 신용카드 번호를 받아내야 할 정도로 영업 능력이 중요한 회사였습니다. 입사 1개월 만에 800만 원을 벌고 20명 중에 1등을 차지했어요. 다음 달에는 전체 80명 중에 1등을 했고요. 

 

2개월 차가 되니 깨달은 게 이 회사가 질이 나쁘더라고요. 매일 오전 9시 30분 열리는 조례 시간에 대표가 직원을 상대로 정신교육을 하는데요. 직원들을 압박하고 다른 직원과 비교하고 가정사를 들먹이는 등 악랄하더라고요. 반대로 저는 영업 1등을 해서 남들 앞에 설 기회가 생겼는데 대표가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농사지으면서 피땀 흘려 돈을 벌었기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나중에 못 하는 날이 오면 이 사람은 날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조회가 끝나자마자 인사팀에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여기를 더 다닌다면 돈만 보고 다녀야 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제가 영업해서 벌었던 첫 달치 월급 800만 원은 구경도 못 한 채로 나와야 했어요. 그 회사는 2개월 후에 월급을 주더라고요. 5월에 따낸 계약의 인센티브를 7월에 받는 식이죠. 7월에 돈을 받아도 6월에 일한 돈을 받으려면 이 회사에 남아야 하는 구조죠. 얼마나 악덕합니까. 결국 돈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입사한 회사도 1년 6개월 정도 다녔지만 급여 체납 문제로 나와야 했어요.

 

Q. 두 회사에서 영업왕을 했는데도 이 정도면 직장 생활이 맞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A. 아는 지인이 웹 에이전시 대표로 있었는데요. 그분 역시 제가 능력은 있어 보이는데 한 곳에 정착을 못하니 안타까워하더라고요. 제가 2년 동안 붕 뜬 생활을 지속하니까 그분이 결국 손을 건넸고, 그때부터 웹 기획자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4명 중 대표 포함 3명이 디자이너고, 저만 영업을 담당했어요. 기획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라 일하면서 기획 분야를 배워야 했죠.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밌었습니다. 제 장점인 영업은 더 확장했고, 기획은 공부해나가는 게 흥미로웠고요. 연봉은 2000만 원 수준이었지만 주말도 반납하고 일했으니까요. 그렇게 1년 6개월을 신나게 보냈습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택은 이직이었습니다. 

 

A. 제가 정말 회사를 위해 열의를 다해도 대표와 생각을 같아야 오래갈 수 있잖아요. 거기서 벽을 느꼈던 것 같아요. 회사를 집처럼 생각한 대표는 출퇴근 시간이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반면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근태였거든요. 2인자로서 함께 회사를 이끌어 가고픈 마음이 컸지만, 점점 대표의 비전이 뜬구름처럼 느껴졌어요. 결국 이 회사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3개월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해피빈에서 맞이한 두 번째 전환점


3년간 변변찮은 직장을 떠돌다 3개월 계약직을 선택한 노재권 대표. 해피빈 입사는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라 말한다. 사진=최준필 기자


Q. 다섯 번째로 들어간 기업이 해피빈이겠군요.

 

A. 해피빈 사이트 리뉴얼 과정에서 웹 화면을 기획할 사람을 뽑는 자리였어요. 기간은 3개월, 계약직이었고요.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라 미래가 불확실한데도 출근을 결심했어요.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자신 있었어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상사가 시키는 일은 무조건 반나절 내로 해결하려 했어요. 출퇴근 시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절 좋게 본 분에게 인사권이 있어서 3개월 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Q.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꽤 오래 해피빈에 머물렀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A. 해피빈을 공익 비즈니스 생태계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였고요. 두 번째는 네이버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야망도 있었어요. 2009년 해피빈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할 때도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요. 하지만 해피빈에서의 10년도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Q.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A. 공익이라는 게 참 좋은 단어잖아요. ‘좋은 일 하는데 마케팅하지 않을 기업이 어딨겠어?’라고 생각한 게 큰 실수였어요. 가령 해피빈엔 기부 아이템인 콩이 있는데요. 개당 현금 100원의 가치가 있어요. 네이버 광고를 볼 때마다 회원들에게 콩을 무료로 나눠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광고주는 광고만 하고 싶고, 회원들은 광고를 누르는 순간 잠재적 기부자가 되니 서로 부담감이 커지는 겁니다.

 

Q. 목적 없이 기부에 참여하라는 것이었군요. 

 

A. 그렇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이것저것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꽤 반복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정착한 사업 중 하나가 기업에 착한 이미지를 씌우는 캠페인이나 웹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이었어요. ‘좋은 일이니, 기부하세요’란 목적 없는 기부가 아니라 ‘착한 기업 이미지 만들어줄 테니 기부하라’고 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사업은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라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 목적 있는 기부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몰두했던 것 같아요. 기업들을 이해시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사업은 비즈니스 환경과 속도를 맞춰가야 한다


노 대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뚜렷한 목적이 없거나, 비즈니스 환경과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고 조언한다. 사진=최준필 기자


Q. 10년이면 속된 말로 높은 자리 하나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겁니까. 

 

A. 사회 초년생 시절 스타일이 계속 남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영업 스타일이 무척 공격적이에요. 일을 시작했으면 끝맺음을 굉장히 빨리하려는 스타일이거든요. 여기서 또 한 번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공익 비즈니스는 천천히 나아가도 성공 가능성이 ​충분한 분야였는데 추진력이 불필요할 만큼 빨라서 제 속도에 임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사업은 비즈니스 환경과 맞춰가야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땐 이해하지 못했죠. 해피빈의 성장 속도와 비즈니스 생태계를 이해하면서 일했어야 하는데 저만 경주마처럼 달렸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일을 좋게 하자’라는 것만 가지고는 동기부여가 되질 않더라고요. 국내에 광고에이전시가 수없이 많은 이유는 수주를 잘하면 회사와 함께 직원들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공익 비즈니스도 이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 해피빈에서 깨달은 점을 코즈웍스에서는 잘 이행해나가고 있겠군요.

 

A. 매번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해피빈에서 깨달은 점이 참 많았으니까요. 배운 걸 써먹을 때가 온 거죠(웃음). 아직 대기업이 공익 비즈니스를 위탁하는 분위기와 우리 회사가 내놓는 아이템 기획안이 맞지 않을 때도 더러 있어요.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이미 해피빈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숙제가 생겨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코즈웍스는 협력이 기본인 회사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상대 기업과 속도를 맞춰야 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많은 아이디어를 보여줘도 기업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없으니까요. 

 

Q. 최근에 마주한 실패는 어떤 게 있을까요. 

 

A. 바스켓이라는 개인 펀딩 서비스를 4월에 시작했는데요. 비영리단체만 신청할 수 있는 기부형 펀딩 기회를 개인에게 부여하는 서비스입니다. 가령 초등학생들의 봉사활동 활동비가 필요하다면 부모들이 바스켓을 통해서 펀딩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공익 관련 일이라면 펀딩 신청이 가능합니다. 

 

Q.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다는 겁니까.

 

A. 지인들을 시작으로 회원 범위를 넓혀가는 중인데요. PG(Payment Gateway, 지불 결제 사업자)사들이 결제 플랫폼을 붙여주지 않더라고요. 크라우드펀딩의 위험도가 높다는 이유로 협업을 꺼리는 겁니다. 카드 대행사들은 인증을 여러 번 하게 해 안전도를 높이려 하고요.

 

결제 방식이 귀찮은 까닭에 지인들을 설득해도 바스켓을 두 번 이용할 동기가 떨어지더군요. 홍보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이고요. 최근 열린 펀딩은 결제 시도가 120건이 들어왔는데, 실제 결제 건수는 20건을 겨우 넘었더라고요. 다행히 이 부분은 조만간 해결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자사의 강점인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해 기업 직원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할 생각입니다. 주도적으로 바스켓을 개설할 수 있는 주체들을 섭외해 유용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가는 게 목표입니다. 

 

Q.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노 대표에게 실패란 어떤 의미입니까.

 

A. 실패는 진행 중입니다. 거창한 게 아니라 늘 일상에 함께하는 거죠. 저는 오늘도 실패했어요. 조직 관리에서요. 직원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오늘도 했어요(웃음). ‘괜히 말했나’ 후회되더라고요. 자녀 교육도 날마다 실패를 반복하고요. 

 

어쨌든 사업가들은 실패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업이 잘될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실패를 거듭할수록 이 사업이 안 될 거라는 건 금방 압니다. 그만큼 사업 실패 확률도 점점 낮아지면서 회사도 나도 성장하는 거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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