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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이번엔 놀이 말고 건축기행,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일제가 순종비 능 옮기고 골프장 지었다 박통 시절 어린이대공원으로…2010년 복원

2020.05.04(Mon) 11:05:17

[비즈한국] 때로는 건물도 사람처럼 인생역정(?)을 겪는다.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도 그랬다. 대한민국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태어났다가, 어린이대공원의 교양관으로, 식당으로, 전시관, 관리사무소를 거쳐 몇 해 전 원형을 회복하고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푸른 5월.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어린이대공원 꿈마루로 건축 기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마침 어린이대공원 측에서도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놀이 대신 ‘산책’ 위주로 즐겨달라고 공지를 올렸으니 말이다. 지난 5월 1일부터 다시 문을 연 실외동물원과 함께 꿈마루까지 돌아보면 어린이날 산책 코스로 손색이 없다.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는 대한민국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태어났다가, 어린이대공원의 교양관으로, 식당으로, 전시관, 관리사무소를 거쳐 몇 해 전 원형을 회복하고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구완회 제공

 

#조선총독부 제1호 골프장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지금이야 에버랜드니 롯데월드니 하는 놀이공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한때 어린이대공원이 모든 어린이들의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날 한참 전부터 어린이대공원과 청룡열차 노래를 불렀고, 어른들은 고생길이 뻔히 보이면서도 아이 등쌀에 못 이겨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지. 어린이대공원이 원래는 어린이대공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푸른 잔디가 아름다운 이곳은 1926년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골프장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순종의 비 순명황후가 잠들어 있던 능을 옮기고 골프장으로 만든 것이었다. 조선의 흔적을 지우는 동시에 식민지 근대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거양득의 조치였다. 

 

꿈마루는 과거 수십 년간 골프장으로 있다가 1973년 5월 5일, 급하게 어린이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여전히 어린이날이면 수많은 가족들이 찾는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사진=서울시설공단

 

살아남은 조선 왕가의 후예들이 이곳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골프를 즐겼다. 그렇게 경성골프장에서 서울컨트리클럽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수십 년간 골프장으로 있다가 1973년 5월 5일, 급하게 어린이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몇 해 전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단다. “아니 지금 국민 모두가 불철주야 일을 하고 있는데, 저기서 골프 치는 인간들은 뭐냐? 저놈의 골프장 당장 없애 버려라!”​

 

#하루아침에 바뀐 클럽하우스의 운명

 

한반도 최초의 골프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 공원으로 바뀌면서 이곳의 건물들도 새로운 운명을 맞이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클럽하우스 건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클럽하우스 없이 골프장만 운영하다가,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바뀌고도 수십 년 뒤에 클럽하우스가 들어선 것이다. 당시 유명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를 맡았다. 하지만 지은 지 몇 해 되지 않아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탈바꿈한 건물은 식당과 전시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애초를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증축과 개축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다 지난 2010년 이 건물의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낡고 누더기 같은 건물을 허물려던 서울시에서 도면을 검토하다 보통 건물이 아닌 것 같아 전문가에게 문의를 했단다. 아니나다를까. 도면을 받아본 전문가는 이 건물은 건축 문화유산이니 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미 허물고 새로 짓는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서울시는 고민하다 건물의 원형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하여 덕지덕지 붙어 있는 증개축의 흔적을 걷어내고 북카페와 피크닉정원, 관리사무실 등을 들인 후 ‘꿈마루’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꿈마루의 원형인 옛 클럽하우스 건물은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했다. 이 건물은 허물어질 뻔하다가 지난 2010년 다시 복원됐다. 사진=구완회 제공

 

#직선의 콘크리트가 주는 아름다움

 

꿈마루의 특징은 직선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주는 공간감과 아름다움이다. 건물 좌측의 정문 위로는 돌출 콘크리트가 거대한 문짝 두 개를 엎어놓은 듯 튀어나와 있다. 무언가 이국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천정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수직으로 교차하며 강렬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렇게 태어난 굵직한 공간들 속에 북카페와 피크닉정원 같이 아기자기한 콘텐츠들이 자리를 잡았다. 

 

꿈마루 안으로 들어가면 천정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수직으로 교차하며 강렬한 공간을 연출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2층의 피크닉정원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건물에 남긴 상처들을 손보지 않고 그냥 둔 것이 옛 수도시설을 활용한 선유도 공원을 닮았다. 알고 보니 선유도 공원을 만든 건축가가 꿈마루 복원을 주도했다고 한다. 3층의 북카페는 햇살 따뜻한 야외 테라스에서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

 

2층의 피크닉정원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건물에 남긴 상처들을 손보지 않고 그냥 두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3층의 북카페는 햇살 따뜻한 야외 테라스에서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어린이대공원 

△위치: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216 

△문의: 02-450-9311

△운영 시간: 05:00~22:00, 연중휴무(동물원은 10:00~17:00)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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