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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단종 비극 품고 굽이굽이, 강원도 영월 여행

단종 유배 때 머문 청령포와 관풍헌, 뒤늦게 묻힌 장릉…아름답고 슬픈 풍광

2020.04.28(Tue) 10:18:34

[비즈한국] 동강 굽이치는 아름다운 영월은 단종의 비극을 품은 고장이다. 12살에 즉위한 어린 단종은 작은 아버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어 최후를 맞았다. 이때의 나이가 겨우 열일곱. 단종의 슬픈 사연은 야사로, 소설로, 영화로 우리에게 전한다. 그 마지막 무대가 된 영월에는 단종이 머물렀던 청령포, 세상을 떠난 관풍헌, 뒤늦게 묻힌 장릉이 남아 있다. 

 

동강 굽이치는 아름다운 영월은 단종의 비극을 품은 고장. 서강이 그림처럼 휘돌아 흐르는 청령포는 영월로 유배 온 단종이 처음 머문 곳이다. 지금도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를 타고 들어간다. 사진=구완회 제공

 

#천하절경 유배지, 청령포

 

서강이 그림처럼 휘돌아 흐르는 청령포는 영월로 유배 온 단종이 처음 머문 곳이다. 삼면이 강물로 막히고 뒤로는 육육봉이 우뚝 솟아오른 천혜의 유배지. 지금도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를 타고 들어가면 소박한 기와집으로 복원된 단종어소(端宗御所)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단종이 이곳으로 유배를 온 것은 즉위 5년 만의 일이었다. 비극의 시작은 아버지 문종의 때 이른 죽음이었다. 오랜 시간 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병에 시달린 세종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던 문종은 만백성의 기대를 받는 준비된 군주였다. 하지만 즉위 2년 만에 병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어린 아들 단종이 뒤를 이었다. 단종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어머니나 할머니 대신 장성한 삼촌들만 있었다. 그 중에서도 능력 뛰어나고 야심만만한 수양대군은 결국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손에 틀어쥐었다.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가면 소박한 기와집으로 복원된 단종어소(端宗御所)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때부터가 단종에게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삼촌의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왕위만은 지키려 했으나,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왕위를 넘겨야 했다. 허울뿐인 상왕으로 있던 중 성삼문 등의 복위운동 소식을 듣고 잠시 기대에 부풀기도 했지만, 정변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리하여 눈물 나게 아름다운 청령포에서 불안한 귀양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비극적인 최후, 관풍헌

 

단종의 청령포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 홍수에 어소가 물에 잠길 지경이 되자 영월 동헌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겨야 했다. 이곳에서 시를 지으며 울적한 심사를 달랬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삼촌인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사형을 당했다는 소식이 날아들고 얼마 뒤 단종 또한 세상을 떠났다.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었다.

 

단종이 최후를 맞은 관풍헌 마당 건너에는 단종이 매일 올라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가 남아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하지만 야사가 전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 금부도사 왕방언이 세조가 내린 사약을 들고 단종을 찾았으나, 단종이 이를 거부하고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을 맸다는 것이다. 이때 목을 맨 줄을 밖으로 빼내어 당기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단종은 세조의 손에 죽은 셈이다.​

 

단종이 최후를 맞은 관풍헌은 현재 부처님과 단종의 영정을 모신 사찰로 운영 중이다. 관풍헌 마당 건너에는 단종이 매일 올라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가 남아 있다. 

 

#뒤늦은 왕의 무덤, 장릉

 

“예로써 장사 지냈다”는 기록도 사실이 아니다. 단종의 시신은 오랜 시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행여나 시신을 수습했다가 세조의 눈 밖에 날까 모두가 두려워한 탓이다. 보다 못한 영월 향리 엄홍도가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소박한 무덤을 만들었다. 이 같은 사실은 60여 년 뒤 중종 때 처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노산군의 무덤을 찾는 과정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지금처럼 왕릉으로 단장되고 장릉이란 능호를 받은 건 다시 120여 년이 지난 숙종 때의 일이었다. 노산군 대신 단종이란 묘호를 받은 것도 이때였다.

 

단종의 시신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다가 영월 향리 엄홍도가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소박한 무덤을 만들었다. 지금처럼 왕릉으로 단장되고 장릉이란 능호를 받은 건 다시 120여 년이 지난 숙종 때였다. 사진=구완회 제공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강원도에 자리 잡은 장릉은 문인석과 석마, 석양 몇이 봉분을 지키고 있다. 다른 왕릉에 있는 무인석도 병풍석도 난간석도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봉문 좌우에 세운 망주석에 동물 문양의 세호(細虎)가 없는 것도 장릉이 유일하단다.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기에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가 ㄱ 자로 꺾여 있다. 그래도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수라간, 수복실 등 부속 건물들은 제대로 갖추었다. 영조 때 세운 엄흥도의 충절을 기려 세운 정려각과 단종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도 둘러볼 만하다. 

 

장릉은 문인석과 석마, 석양 몇이 봉분을 지키고 있다. 다른 왕릉에 있는 무인석도 병풍석도 난간석도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메모>


청령포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33

△문의: 033-374-1240

△배 운행 시간: 09:00~17:00 수시운행, 연중휴무

 

관풍헌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61

△문의: 1577-0545(영월군 관광안내)

△관람시간: 24시간, 연중휴무

 

장릉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문의: 033-374-4215

△관람시간: 09:00~18:00, 연중휴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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