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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독서의 계절에 떠나는 이야기 여행, 춘천 김유정문학촌

'봄·봄' '동백꽃' 보물 같은 우리말 선보인 김유정…'흑역사'도 되새겨봐야

2019.11.05(Tue) 11:10:46

[비즈한국] 가을을 독서의 계절. 아이랑 문학촌을 찾는 건 어떨까. 기왕이면 주말에 전철을 타고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그렇다면 춘천의 김유정문학촌이 안성맞춤이다. ‘일제강점기 한국 단편소설의 축복’으로 평가되는 김유정(1908~1937). 서른 해를 채 살지 못하고, 가난과 폐결핵에 시달리다 떠난 그가 남긴 단편소설 30여 편은 살아 있는 우리말의 보물 창고다. 점순이와 머슴, 들병이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못난 인생이 펼치는 이야기가 지금도 독자를 울리고 웃긴다. 김유정이 태어난 춘천 실레마을의 김유정문학촌 곳곳에서 그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김유정문학촌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너른 잔디밭에 자리 잡은 다양한 캐릭터가 손님을 맞는다.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에 나오는 주인공이 저마다 생생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설 속 장면을 연출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김유정역에서 시작하는 문학촌 여행

 

김유정문학촌 여행은 김유정역(구역사)에서 시작한다. 수도권전철 김유정역 옆에 있는 또 다른 유정역(구역사)은 경춘선 신남역이 이름을 바꾼 작은 간이역이다. 역사 안에는 옛 경춘선의 정취가 가득한 ‘추억의 소품전’이 열리고, 역사 밖에는 무궁화호 열차에 북카페와 춘천 관광 VR 체험 존 등을 운영한다. 역사 주변에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 있어 연인이나 친구와 카메라를 들고 찾는 이가 많다.

 

김유정역에서 걸어서 10분, 김유정문학촌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너른 잔디밭에 자리 잡은 다양한 캐릭터가 손님을 맞는다.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에 나오는 주인공이 저마다 생생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설 속 장면을 연출한다. 빙장어른(사실 빙장어른은 다른 사람의 장인을 높여 부르는 말인데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장인을 빙장어른이라 부른다)이 점순이와 혼례를 미끼(?)로 예비 데릴사위를 부려 먹는 장면, 점순이의 작은 키를 핑계 삼아 혼인을 차일피일 미루는 장면, 결국 못 참고 폭발한 예비 데릴사위가 빙장어른 ‘거시기’를 잡고 흔드는 장면이 이어진다.

 

수도권전철 김유정역 옆에 있는 또 다른 유정역(구역사)은 경춘선 신남역이 이름을 바꾼 작은 간이역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김유정이 태어난 집이다. 실레마을 제일가는 지주 집안이던 김유정의 생가는 웬만한 기와집보다 크고 번듯한 한옥인데, 지붕에는 초가를 올렸다. 당시 초가 일색이던 마을에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고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ㅁ 자형’으로 만든 것도 집 안 모습을 바깥에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네모난 하늘이 보이는 중정 툇마루에서 문화해설사가 하루 일곱 번(11~2월은 여섯 번)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레마을 제일가는 지주 집안이던 김유정의 생가는 웬만한 기와집보다 크고 번듯한 한옥인데, 지붕에는 초가를 올렸다. 당시 초가 일색이던 마을에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고 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김유정생가 길 건너편에 커다란 솥 모양 벤치가 보이고, 그 옆으로 단편 ‘솟(솥)’의 마지막 장면이 실물 크기 동상으로 재현된다. 들병이와 바람이 나서 집안 재산목록 1호인 솥단지를 훔친 근식이와 솥을 찾으러 달려온 아내, 아기 업은 들병이와 그 남편까지 어우러진다. 이들은 김유정의 다른 작품 속 주인공처럼 선악도, 미추도 구분하기 힘든 팍팍한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낸다. 김유정은 도덕적 잣대나 미학적 기교 없이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슬프고 웃기고 답답하고 때론 즐겁게 그린다.

 

#이야기길에서 체험 공방까지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다가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한 김유정도 그렇다. 어려서 경성으로 간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이자 명기 박녹주를 쫓아다니느라 결석이 잦아 제적된다. 하지만 이건 짝사랑을 넘어 스토킹에 가까웠다. 당시 사람들은 ‘문학청년의 첫사랑’이라 여겼지만, 김유정의 스토킹 탓에 박녹주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입었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법에 호소해야 했을 만큼. 

 

아이가 조금 크다면 작가의 허물과 작품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유명 작가=훌륭한 사람”이라는 공식은 꼭 성립하는 것도, 꼭 성립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당대의 명창 박녹주를 ‘스토킹’했던 김유정. “유명 작가=훌륭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꼭 성립하진 않는다는 얘길 아이와 나눠보면 어떨까. 사진=구완회 제공

 

학교에서 제적당한 김유정은 낙향해 야학을 열었다가 다시 상경, ‘산골 나그네’로 등단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다. 이 과정에서 집안이 점점 기울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은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 것이다”라는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스물아홉 한창 나이에 세상을 버린다. 김유정의 삶과 작품 이야기는 생가 옆 김유정기념전시관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길 하나 건너 김유정이야기집에서는 ‘봄·봄’과 ‘동백꽃’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과 사진을 찍는 포토 존, 김유정의 작품을 다양한 버전으로 갖춰놓은 ‘유정책방’도 재미있다. 김유정이야기집 옆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한지 공예, 도자기, 민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들어섰다.

 

김유정기념관 내부 전시실. 거대한 ‘봄·봄’ 책이 전시돼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김유정역(구역사)

△위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5

△문의: 033-250-3074(춘천시청 관광과)

△관람 시간: 24시간, 연중무휴(전시실과 열차 북카페는 3~10월 9시~18시, 11~2월 8시~17시, 월요일과 설·추석 당일 휴관)

 

김유정문학촌

△위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길 25

△문의: 033-261-4650

△관람 시간: 9시~18시(3~10월), 9시 30분~17시(11~2월), 1월 1일과 설·추석 당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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