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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리 태양계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

태양계 외곽 천체들의 찌그러진 궤도, 아홉 번째 행성은 원시 블랙홀일 수도

2019.10.07(Mon) 11:14:09

[비즈한국] 지난 5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부유한 가족의 저택 구석에 또 다른 가족이 몰래 숨어서 기생하며 지낸다는 소름 돋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기생충’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까지, 저택의 가족들은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저 가끔씩 냉장고의 식재료가 너무 빨리 줄어드는 것 같은 몇 가지 미심쩍은 일이 수상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 

 

그런데 바로 이런 미심쩍은 상황이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쩌면 우리 태양계 끝자락에 숨어 살고 있던 이 기생충의 정체는 정말 충격적일지도 모른다. 

 

영화 ‘기생충’처럼 우리 태양계 구석에도 누군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과연 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화성과 목성 사이에 ‘​무언가’​ 있다

 

망원경도 없이 오직 맨눈으로만 하늘을 바라보던 시절, 인류에게 태양계 행성은 초저녁과 새벽녘에 잠깐 볼 수 있는 수성과 금성, 발밑의 지구, 그리고 한밤중에도 밝게 보이는 목성과 토성, 이 여섯 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여섯 행성들이 태양 주변을 도는 공전 궤도를 보면 뭔가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태양계 안쪽을 도는 암석 행성 수성-금성-지구-화성은 굉장히 작은 궤도를 돌며 다닥다닥 몰려 있다. 하지만 화성 다음으로 목성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행성의 궤도가 확 넓어지는 듯 보인다. 화성과 목성 사이 간격이 너무 붕 뜨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두 행성 사이에 새로운 행성을 하나 더 넣어주어야만 뭔가 마음이 편해지는 듯하다. 

 

실제로 스승의 오랜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태양계 행성들의 정밀한 운동 법칙을 발견했던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도 “화성과 목성 사이에 너무 어두워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체가 있다”는 다소 과감한 가정을 했다.

 

이후 1766년 독일의 수학자 티티우스는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를 비교하며, 각 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에는 오묘한 수학적 규칙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학적 법칙을 적용하면 당시까지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화성과 목성 사이의 미지의 숨은 행성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티티우스가 제안한 수학적 법칙에 따르면 하나의 수열 법칙에 따라 N 번째 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진 거리를 알 수 있다. 이 그래프는 티티우스의 법칙으로 계산한 각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빨간 선)와 실제 각 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진 거리(파란 선)을 비교한 것이다. 우연히도 천왕성까지는 두 값이 비슷하지만, 해왕성과 명왕성으로 가면서 예측치와 실제 값의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놀랍게도 티티우스의 법칙이 예측했던 곳에서 화성과 목성 사이를 도는 아주 작은 크기의 소행성 세레스가 정말 발견되었다. 게다가 티티우스의 법칙은 당시까지 태양계 최외곽 행성으로 생각되던 토성 너머 또 다른 행성의 존재를 예측했고, 정말 티티우스의 법칙이 예측했던 거리 언저리에서 토성 다음 행성이 발견되었다. 그렇게 발견된 새로운 행성을 우리는 오늘날 천왕성이라고 부른다. 

 

이 일들로, 단순히 우연한 숫자 법칙 정도로만 여겨졌던 티티우스의 법칙은 위상이 아주 높아졌다. 태양계 새로운 행성을 찾아 천문학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많은 행성 사냥꾼들에게 티티우스의 법칙은 너무나 간단하고도 매력적인 길잡이처럼 여겨졌다. 

 

한동안 일곱 번째 행성 천왕성이 태양계 가장 마지막 행성으로서 자리를 지키던 시절, 일부 물리학자들은 천왕성 궤도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중력 법칙을 고려하면 천왕성은 태양의 중력에만 붙잡힌 채 예정된 타원 궤도를 크게 돌아야 한다. 그런데 오랜 관측을 통해 확인한 실제 천왕성의 움직임은 수학적으로 예측한 타원 궤도를 조금씩 벗어나 요동치는 듯하다. 그래서 당시 일부 대담한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바깥쪽에서 천왕성에 중력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미지의 천체가 숨어 있다는 가설을 던졌다. 

 

천문학자 아담스와 르베리에가 각각 천왕성의 움직임의 미세한 섭동을 근거로 추정한 해왕성의 궤도가 파란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후 실제로 해왕성은 그 근처 검은 궤도상에서 발견되었다. 해왕성은 처음으로 ‘수학으로 그 존재가 거의 완벽하게 추정된’ 천체다. 이미지=https://arxiv.org/pdf/1610.06424.pdf

 

기존 행성의 움직임에서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미세한 차이가 아직 발견되지 못한 또 다른 행성의 존재를 예견하는 대담한 주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후 천문학자들의 ​끈질긴 ​수색 끝에 실제 물리학자들이 추정한 궤도 언저리에서 또 다른 새로운 행성의 긴 꼬리가 잡혔다. 태양계 여덟 번째 행성, 해왕성은 그렇게 우리 태양계 족보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해왕성은 실제 관측 이전에 ​수학적으로 존재를 꽤 정확하게 추정한 첫 천체다. 

 

이후로도 많은 천문학자들은 해왕성의 교훈을 발판 삼아 해왕성보다 더 먼 곳에 숨어 있을, 태양계 진짜 마지막 행성을 찾아나서는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해왕성의 궤도를 꾸준히 관찰한 결과, 해왕성도 앞선 천왕성처럼 예정된 궤도에서 약간씩 벗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천왕성 너머에서 천왕성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천체가 있을 것이라 가정했다. 19세기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그 미지의 ‘겁나 먼 왕국’에 행성 X(Planet X)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로웰은 이 행성 X를 찾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어두운 밤하늘의 사진을 촬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사진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명왕성은 행성일까, 소천체일까 

 

제자인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로웰의 못 다 이룬 꿈은 드디어 꽃을 피우게 되었다. 로웰이 죽고 14년이 지난 1930년 톰보는 앞서 로웰이 관측한 사진들 속에서 뭔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이전까지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천체의 모습이었다. 

 

1930년 1월 23일과 1월 29일, 약 일주일 간격으로 촬영된 동일한 밤하늘의 사진을 보면 하얀 화살표로 표시된 작은 점이 이동했음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점이 바로 명왕성이다. 톰보는 사진 속 미세한 점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분석한 끝에 명왕성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자료=Lowell Observatory Archives

 

안타깝게도 로웰은 정작 자신이 새로운 세상을 촬영했지만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후 톰보가 발견한 새로운 천체는 태양계 마지막 행성으로서 당당하게 족보에 추가되었다. 우리는 이 천체를 명왕성이라는 이름으로 추억하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실 당시 명왕성, 즉 행성 X의 존재를 추정했던 로웰의 계산에는 오류가 있었다. 당시 관측되었던 해왕성의 궤도의 미세한 섭동을 설명하기에는 새롭게 발견된 명왕성은 너무 가벼운 천체였다. 

 

나중에 천왕성과 해왕성 근처를 지나며 탐사했던 보이저호의 데이터에 따르면, 실제 이 거대한 가스 행성들의 질량은 과거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1% 정도 더 가벼웠다. 그때까지 인류는 억울하게도 이 가스 행성들이 더 무거울 것이라 착각한 채, 그 잘못된 질량을 가지고 행성들의 궤도를 계산했던 셈이다. 새롭게 확인된 실제 질량을 가지고 계산한 해왕성의 궤도는 실제 우리가 관측한 궤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과거 로웰이 이상하게 생각했던 해왕성 궤도의 미세한 섭동은 사실 그의 잘못된 계산에서 비롯된 오류였던 셈이다. 

 

결국 잘못된 계산으로 명왕성의 존재가 필요해졌고, 끈질기게 밤하늘을 촬영하고 눈이 빠지도록 탐사한 끝에 드디어 명왕성이란 새로운 먼 세계가 발견되었지만, 사실은 애초에 명왕성의 존재를 예측했던 이론적 추측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다행히 명왕성은 워낙 작고 가벼운 천체였고, 또 더 이상 해왕성의 궤도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태양계의 새로운 가족을 찾는 일은 끝난 듯 보였다. 

 

2017년 NASA의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동안 베일에 감춰 있던 미지의 세계 명왕성을 처음 방문했다. 영상은 당시 탐사선이 명왕성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현한 명왕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후 뉴 호라이즌스는 멈추지 않고 명왕성보다 더 먼 카이퍼 벨트 천체들을 탐사하고 있다. 영상=NASA’s Marshall Space Flight Center in Huntsville, Alabama

 

하지만 2000년 들면서 태양계 외곽에 숨어 살던 또 다른 새로운 ‘기생충’들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마이클 브라운은 지속적인 관측을 통해 명왕성보다 더 바깥을 돌고 있는 새로운 천체 세드나를 발견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이후로도 명왕성 궤도 주변에서 세드나와 같은 크고 작은 소천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행성과 행성이 아닌 소천체를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그저 관습적으로 적당히 크기가 큰 천체는 행성, 너무 작은 천체는 소행성으로 분류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명왕성과 크기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명왕성보다 더 크기가 큰 새로운 소천체들이 명왕성보다 바깥에서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지위를 놓고 새로운 갈등이 빚어졌다.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으로 불러주기에는 명왕성보다 크기가 더 큰, 어쩌면 더욱 ‘행성 같은 천체’들도 모두 행성으로 넣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태양계 행성의 족보가 너무 두꺼워진다. 결국 2006년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모인 국제천문연맹 회의에서는 명왕성을 태양계 족보에서 파낼 것인지, 계속 가족으로서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회의를 벌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꽤 크기가 큰 해왕성 접근 천체들의 크기를 비교한 그림. 크기만 놓고 보면 명왕성만 굳이 행성이라고 불러 주어야할 이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의 아래에 그려진 지구와 비교해보면 각 천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미지=NASA

 

그리고 결국 천문학자들은 ‘주변 궤도에서 가장 압도적인 천체이어야 한다’는 굉장히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행성의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명왕성만 쫓아낼 수 있는 묘안을 택했다. 명왕성은 공교롭게도 ‘행성 같지 않은 행성’이었고, 한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 끝내 행성의 지위에서 파면당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그동안 멀쩡히 함께 행성 패밀리로 불러주었던 명왕성을 폐위시키고 단번에 소행성 취급하기에는 좀 미안하고 껄끄러웠다. 그래서 명왕성을 바로 소행성 수준으로 좌천시키지 않고, 기존의 행성과 소행성 사이, 명왕성 같은 천체들이 머무를 수 있는 새로운 감투를 더 정의해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명왕성과 세드나를 비롯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왜소한 크기의 이 천체들을 왜소행성(Dwarf planet)이라고 부른다. 행성이란 말이 들어 있지만 기존의 행성과는 구분된다. 행성인 듯 행성 아닌, 적당한 이름으로 명왕성의 체면치레를 해준 셈이다. 

 

결국 1930년 처음 천문학자들에게 발견된 이후, 약 80년 동안 태양계 마지막 아홉 번째 행성으로 자리를 보전했던 명왕성은 행성이 아닌 왜소행성으로 격하되면서 태양계 행성의 수는 다시 여덟 개로 줄었다. 

 

(*가끔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명왕성이란 천체가 태양계 바깥으로 날아가버렸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명왕성은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원래 자기 궤도에 있었고, 더 이상 인류가 행성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지금도 원래 살던 궤도에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명왕성은 바뀌지 않았다. 변한 것은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잣대뿐이다.) 

 

#결국 ‘선 넘은’ 행성 X

 

그런데 최근 행성 X의 존재에 관한 풍문이 다시 태양계에 퍼지기 시작하고 있다. 명왕성이 태양계 마지막 행성의 옥좌에서 쫓겨난 이후, 계속해서 태양계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많은 소천체들이 발견되었다. 해왕성과 명왕성 궤도 언저리에서 시작해 그보다 훨씬 먼 태양계 최외곽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소행성을 비롯한 천체들이 모여 떠돌고 있는 지역이 있다. 이 구간을 카이퍼 벨트(Kuiper belt)라고 한다. 

 

그런데 새롭게 발견된, 특히 태양에서 아주 멀리까지 벗어나는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카이퍼 벨트 천체들의 궤도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카이퍼 벨트 천체들 대부분의 궤도가 다 한쪽 방향으로 몰려 있다는 점이다.[1][2] 

 

태양계 최외곽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카이퍼 벨트 천체, 그 중에서 해왕성 근접 천체들의 궤도가 보라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 천체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쪽으로 크게 찌그러진 커다란 타원 궤도를 돌고 있다. 그런데 보라색 타원 궤도들은 대부분 한쪽으로 동일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 이런 어색한 모습을 근거로 최근 천문학자들은 그 정반대 방향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행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지의 행성의 궤도는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미지=Caltech

 

태양계 가장자리를 돌던 크고 작은 티끌이 모여 왜소행성으로 반죽되었을 거라 추측하는 기존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금까지 관측된 것처럼 태양계 외곽 카이퍼 벨트 천체들이 모두 궤도가 한쪽 방향으로 쏠릴 이유는 없다. 다들 무작위하게 분포하는 궤도를 따라 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카이퍼 벨트 천체들 대부분은 동일한 방향으로 쏠린 궤도를 돌고 있다. 게다가 이 카이퍼 벨트 천체들은 모두 다른 태양계 행성들이 돌고 있는 궤도 원반에서 크게 기울어진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 

 

이러한 카이퍼 벨트 천체들의 독특한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궤도가 쏠려 있지 않은 그 반대편에 육중한 천체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또 이 육중한 천체가 태양계 원반 상에서 크게 기울어진 궤도를 돌고 있기 때문에 그 중력으로 인해 태양계 외곽의 카이퍼 벨트 천체들, 특히 해왕성 궤도 근처를 지나가는 ‘해왕성 접근 천체(TNO, Trans-Neptune Objects)’들의 궤도가 크게 기울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외곽 천체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현재 관측되는 것처럼 한쪽의 좁은 방향으로 궤도가 몰려있을 확률은 고작 0.007%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시 말해서 그저 우연히 궤도가 한쪽으로 틀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뭔가가 이들의 궤도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이를 근거로 최근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잊었던 행성 X의 존재를 다시 의심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너무 작은 명왕성은 지금 관측되는 것처럼 태양계 외곽 천체들에게 중력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 명왕성보다 훨씬 큰, 해왕성 정도는 되는 아주 육중한 크기의 또 다른 행성이 태양계 최외곽에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숨어서 살고 있다는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3][4] 

 

이렇게 인류는 오랫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끝난 줄 알았던 ‘아홉 번째 행성’에 관한 이야기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하늘 속에서 작은 천체의 움직임을 좇은 기약 없는 사냥이 시작되었다. 

 

재미있게도 해왕성 접근 천체들의 궤도가 이상하게 한쪽으로 쏠려있다는 것을 근거로 새로운 진짜 아홉 번째 행성의 존재의 가능성을 제안했던 천문학자가 바로 소천체 세드나를 발견하면서 명왕성의 행성으로서의 지위에 가장 중요한 타격을 주었던 장본인, 마이클 브라운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를 보고 태양계 행성들로 ‘구슬치기’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사진=Caltech

 

#행성 X는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녀석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태양계 가장자리에 기생충처럼 숨어 있는 새로운 마지막 행성의 발견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사실 이론적으로 추정되는 이 미지의 행성의 거리와 크기를 근거로 추정해보면, 설령 이 아홉 번째 행성이 있다하더라도 지구의 밤하늘에서는 거의 겉보기 등급 22등급 정도로 보일 것이다. 이는 거의 배경 밤하늘 밝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밤하늘에 파묻혀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아홉 번째 행성이 실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흔적을 좇는 일은 아주 어려운 것이다.

 

정말로 태양계 더 바깥에는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그럴 듯한 사이즈의 아홉 번째 행성이 숨어 살고 있을까? 아니면... 이 기생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미지=NASA/Caltech

 

그런데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이 태양계 가장자리에 숨어있는 녀석의 정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충격적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그 존재가 어쩌면 행성이 아닌 작은 블랙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5]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별보다 더 가벼운, 아주 작은 행성 질량 블랙홀(Planet-mass blackhole)을 가정했을 때에도, 현재 관측되는 태양계 외곽의 해왕성 근접 천체들의 일관된 궤도를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태양에서 약 450억에서 1500억 km 사이 거리에 떨어진 채, 지구의 약 15배 무거운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현재 관측되는 태양계 외곽 천체들의 궤도가 잘 설명된다.[6]

 

이처럼 태양 하나보다 질량이 더 가벼운, 행성 질량 블랙홀이 실제 존재한다면 이는 초기 우주 시절 블랙홀들이 모여 거대한 블랙홀로 성장하기 이전의 원시 블랙홀(Primoridal blackhole)의 흔적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기존의 고전적인 관측으로 태양계 외곽에서 행성 X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은, 애초에 그 천체가 밝게 빛나지 않는 암흑 덩어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태양계 외곽에 이런 블랙홀이라는 무시무시한 기생충이 숨어 살고 있었다면, 이 태양계 가장자리의 블랙홀은 그 주변에 암흑 물질을 포함하는 많은 물질들을 끌어당겨, 에워싸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암흑 물질 덩어리는 블랙홀을 중심으로 약 수억 km 범위까지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이처럼 블랙홀 주변에 암흑 물질이 한가득 몰려 있다면 그 안의 암흑 물질 입자들끼리 서로 반응하면서 (정확하게는 쌍소멸) 독특한 감마선 폭발과 같은 강렬한 흔적을 드물게 남길 수 있다. 

 

현재 지구 곁을 돌고 있는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은 2008년 이후로 하늘 전역에서 감마선의 흔적들을 좇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태양계 멀리서 이런 독특한 흔적을 검출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행성 질량 블랙홀이라는 당황스러운 존재가 우리 태양계 가장자리에 숨어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태양계의 구석에 숨어있던 기생충은 흔한 행성 정도가 아닌, 뜻밖의 엄청난 존재, 바로 행성 질량 블랙홀이었던 것은 아닐까? 

 

태양계 가장자리에 작은 블랙홀이 숨어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최근의 놀라운 가설은, 태양계 토성 곁에 갑자기 나타난 웜홀을 통해 주인공 일행이 우주를 여행한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혹시 영화처럼 미지의 존재들이 서서히 위기가 다가오는 지구와 인류를 위해 태양계 멀리 진짜 웜홀이라도 만들어준 것은 아닐지 재밌는 상상을 자극한다.

 

우리는 여전히 태양계라는 작은 우리 동네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우리 태양계에는 아직 발견되지 못한 또 다른 아홉 번째 행성이 몰래 숨어서 기생하고 있던 것일까? 과연 이 새로운 녀석은 또 다른 차가운 가스 행성으로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할까, 아니면 태양계 멀리서 물질을 집어삼키고 있는 작은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위협할까? 

 

이상하게도 우리의 고향이자 우리의 안식처, 우주는 매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익숙해지기는커녕 더욱 낯설어진다. 매번 태양계 가장자리 천체를 발견할 때마다, 이번이 끝이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새롭게 발견되는 가장자리 천체들은 매번 예상과 다른 이상한 궤도를 보였고, 자신보다 더 먼 곳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세상의 존재를 암시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 태양계의 지도는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천문학자들은 조금씩 태양계의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다만 매번 일이 계획대로만 진행되지 않을 뿐. 

 

[1] https://www.nature.com/articles/35078164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0004-6256/151/2/22

[3]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05/824/2/L23

[4]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3881/aaf051

[5] https://ui.adsabs.harvard.edu/abs/2019arXiv190911090S/abstract

[6] https://www.sciencemag.org/news/2019/09/planet-nine-may-actually-be-black-hole?fbclid=IwAR0RykWEl_-Sw8IqMFDmlBfPbbkAijj5bZcAWFXkqrSgxbZJ7LBJ0BLIohk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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