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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OTA의 공습, 그 시작은 '한미 FTA'였다

선두주자 익스피디아, 작년 최대 매출…국내 여행사들 생사기로 "늦었지만 대책 시급"

2019.09.25(Wed) 17:54:09

[비즈한국] 글로벌 OTA(Online Travel Agency) 익스피디아는 올초, 한국 진출 6년 만인 지난 2018년에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OTA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2012년 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후로, 익스피디아가 첫발을 떼었다. 여행업 관계자는 당시 정부가 여행업계나 여행기업들에 시장상황이나 법적 근거들에 대해 별다른 자문을 구하지 않고 시장을 열었다고 회상한다. 이 관계자는 “익스피디아가 국내 시장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하며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는 사이 최근 몇 년간 글로벌 OTA들이 앞다퉈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초창기엔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는커녕 위기의식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OTA 익스피디아는 한국 진출 6년 만인 2018년에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 이제 한국 여행시장은 글로벌 OTA에게 거의 점령당한 형국이다. 사진=익스피디아 홈페이지 캡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시 관광진흥법 상 국내에 오프라인 사무실을 갖추지 않고 여행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글로벌 온라인 여행업에 대해서는 시장 개방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협상 자문단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상 대표단이 미국 측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미국 국적의 온라인 여행사인 익스피디아가 국내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여행협회 관계자는 “여행업계에 ​전체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공론화해야 했던 문제지만, 한미 FTA 협상 당시 여행업 개방은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쉬쉬하며 진행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국내 여행업 전체를 흔들어 버렸다”며 “여행산업은 무공해 산업으로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생각되고 국가에 따라서는 주력산업으로까지 여겨지지만 한국에서는 여행산업 자체의 비중을 너무 가볍게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세계의 여행시장은 점차 익스피디아와 부킹홀딩스가 양분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트립닷컴까지 공격적으로 가세하는 분위기다. 부킹닷컴, 아고다, 호텔스컴바인, 호텔스닷컴, 트리바고, 스카이스캐너, 카약 등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OTA들은 대부분  이 3개 기업 중 한 곳의 자회사이거나 계열사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이들은 유럽과 동남아시아의 작지만 강한 OTA들을 하나둘씩 흡수하면서 거대 여행 그룹이 됐다. ​

 

글로벌 OTA가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 후 몇 년 사이 국내 여행 시장 점유율이 크게 성장하면서 국내 여행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2019년 상반기 항공권 구매 채널 선호도 조사. 그래픽=컨슈머 인사이트 제공

 

한국은 세계 온라인 여행시장의 가장 뜨거운 필드다. 전체 인구 대비 해외여행 인구가 매우 많은 데다 모바일 사용률이 높고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정보 확산과 활용도, 피드백 역시 빠르다. 그래서 글로벌 OTA들에게 한국 시장이 가장 좋은 테스트베드다. 이렇게 자본과 기술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글로벌 OTA들이 서서히 한국 시장을 잠식해 가는 동안 한국의 토종 여행사들은 점차 경쟁력을 잃으며 눈에 띄게 줄어드는 매출 감소를 별다른 대책 없이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문체부는 “글로벌 OTA와 국내 OTA, 여행업협회 등을 모아 협의체를 구성해 형평성 문제와 소비자 불만 등에 대해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여기에서도 오프라인 여행사들은 소외되어 있다. 여행사 관계자들은 “소는 이미 잃었다. 이제야 외양간을 고치나. 아무리 무한경쟁, 자유시장이라지만 여행이라는 국가 산업에 무대책으로 대응한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화가 난다”고 쓴소리를 냈다. 

 

#공정위 시정권고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에서 세력을 확장 중인 글로벌 OTA들이 한국의 법망이나 세금망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국내 여행사들이 역차별을 당해 운영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먼저 글로벌 OTA는 국내 관광진흥법에 규정된 여행업으로 등록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여행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연락사무소만 개설하거나 국내 제휴사를 통해 영업을 하는 경우 국내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때문에 소비자 피해 예방책에서도 멀리 있다. 국내 여행사의 경우는 불공정약관이나 연이은 소비자 피해 등을 이유로 행정처벌이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지만, 글로벌 OTA에게는 마땅히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거나 미비하다. 

 

최근 글로벌 OTA에게 피해를 입어 언론에 제보한 소비자 A 씨는 “간간이 뉴스를 통해 글로벌 OTA에게 피해를 본 소비자 사례가 나오는 것도 법적으로 따질 수 있는 근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언론을 통해 문제를 알려서 피해를 보상 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한다고 해도 글로벌 OTA는 국내 업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데다 한국사무실의 인력이나 시스템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계 글로벌 OTA 관계자는 “한국 최고의 변호사 사무실에 관련 건을 모두 맡겨 놓은 상태다. 소비자 불만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본사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처분 등 실질적인 제재가 날아온다면 법적으로 대응하고, 시정권고 정도에는 솔직히 눈 깜짝도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여행시장을 여가와 정서 기반으로 보는 국내 여행사들이 온라인 소비자 댓글을 관리하고 CS(Customer Satisfaction, 소비자만족)에 신경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글로벌 OTA는 CS 역시 철저히 본사의 매뉴얼에 따라 관리한다. 공정위는 환불불가 등 불공정약관을 내세운 글로벌 OTA에 시정권고와 시정명령 등을 내리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 불만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국내 여행사의 경우 불공정약관이나 연이은 소비자 피해 등을 이유로 행정처벌이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지만 글로벌 OTA에게는 마땅히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거나 미비하다. 사진은 2017~18년  OTA 여행상품 판매서비스 만족도 조사. 자료=컨슈머 인사이트 제공


#한국에 세금도 안 내고 매출도 파악 안 돼

 

글로벌 OTA는 국내의 세금망에서도 비켜 있다. 국내 여행사들이 매출에 대한 각종 세금을 내는 것과 달리 글로벌 OTA의 매출은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 세법 전문가는 “다국적 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에서의 세금 부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글로벌 OTA의 결제 구조상 매출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법상으로는 글로벌 사업자에 과세할 마땅한 기준조차 없다”고 말했다. 법인이나 지사가 아닌 연락사무소 형태를 띠는 경우는 과세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 본사가 위치한 국가에서 전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소득에 과세하는 ‘거주지국 과세’를 따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관련기사 글로벌 여행 앱, 한국에서 세금은 내고 장사하시나요?).

 

이는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다. 국내에서 여행 상품을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은 “여행업의 경우는 다른 스타트업과는 다르게 규제를 풀어야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글로벌 업체와 국내 업체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규제가 결국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동등한 규제를 원한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여행사 관계자는 “시대가 변화해 오프라인 여행사가 도태되는 과정이라면  전업을 하든 폐업을 하든 하겠지만 현 상황은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해 한국 여행산업이 대책 없이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며 “한국의 소비자와 판매자는 모두 피해를 보고 여행상품을 취급하는 글로벌 유통업체만 돈을 버는 구조다. 단순히 돈만 벌어가는 게 아니라 한국의 여행시장을 장악하게 됐다”고 푸념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일본정부관광국은 이미​ 2015년에 ​자국 여행사와 OTA를 보호하기 위한 ‘온라인 여행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적용 중이다. 

 

글로벌 OTA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8년에 이미 60~70%를 넘나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OTA들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플랫폼의 사용자 편리를 높이고 마케팅에도 적잖이 힘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가 커지는 것뿐 아니라 국내 OTA와의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다각도로 확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 OTA의 시초로 간주되는 인터파크투어나 하나투어 자회사인 웹투어 등은 시장의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소여행사가 받는 타격은 더 심각하다. 중소여행사 관계자는 “중소여행사가 느끼는 글로벌 OTA의 위력은 쓰나미 급이다. 당연히 가격 경쟁도 되지 않는다. 위기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라며 “너무 늦었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적절한 정책이 시급하다”고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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