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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신세계] 무모함이 혁신으로 '쓸고퀄' 다이슨 헤어드라이어의 철학

'젠틀 드라이 노즐' 3년 만에 업그레이드…'코안다 효과'로 빨리 마르면서도 모발 손상 방지

2019.08.23(Fri) 16:36:47

[비즈한국] 다이슨은 참 재미있는 회사다.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 분야에 과도한 연구와 엔지니어링을 동원한다. 이런 것을 업계 말로는 ‘오버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르고 일반인들은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이라고도 한다. 큰 불편 없이 구입하던 제품을 철저히 연구해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다. 

 

다이슨의 창업자이자 발명가, 디자이너인 제임스 다이슨. 사진=다이슨 제공

 

예를 들어보자. 다이슨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세상에 소개했다. 이전까지 소비자들은 먼지봉투를 모두 불편하게 느꼈지만 개선할 생각을 못 했다. 아니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청소기의 역할이 먼지를 모으는 것인데 모은 먼지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다이슨은 5126번의 실패를 거쳐 먼지를 봉투에 모으지 않고 완전히 분리해 먼지통에 모으는 사이클론 기술을 발명했다. 이 청소기는 먼지봉투가 없기 때문에 먼지가 쌓여도 흡입력이 줄어들지 않았고, 먼지를 완전히 분리하기 때문에 모은 먼지를 다시 내뿜지도 않았다. 작은 개선이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청소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전 세계 청소기 회사들은 모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내놓기 시작했다.

 

다이슨의 오버 엔지니어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몇 년 후에 다이슨은 무선청소기를 내놓았다. 다이슨 이전에 무선청소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간이 청소 용도였을 뿐이다. 배터리가 짧고 흡입력이 형편없어 마룻바닥을 청소하는 것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 아니 시도할 이유가 없었다. 흡입력 강한 유선청소기가 있는데 왜 무선청소기의 흡입력을 높인단 말인가?

 

그런데 다이슨은 이 상식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다이슨은 배터리 회사를 인수하고 배터리 연구에 투자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술을 구현할 적합한 모터가 없자 3억 2000만 파운드(약 4700억 원)를 디지털 모터 개발에 투자했다. 청소기만 만들던 작은 중소기업이 청소기에 케이블을 없애기 위해 수천억 원을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청소기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이제는 모든 가전 회사들은 열심히 무선청소기를 만들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다이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는 다이슨 오버 엔지니어링의 결정판이다. 2016년 출시한 이 헤어드라이어는 40만 원대 가격으로 큰 화제가 됐다. 시중에는 만 원 이하의 헤어드라이어도 넘쳐난다. 코일에 열을 가하고 모터로 바람만 만들면 되는 간단한 기술로 조립과 납땜이 가능한 회사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슨은 모발을 보호하고 빠른 스타일링을 돕는 다이슨 슈퍼소닉과 다이슨 에어랩 등을 개발하기 위해 1625km에 이르는 다양한 인종의 모발을 테스트했다고 한다. 사진=김정철 제공

  

그런데 다이슨은 이 간단한 헤어드라이어가 머릿결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보호해야 하는 헤어드라이어가 오히려 머리를 망치는 아이러니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다이슨은 1억 파운드(약 1470억 원)를 들여 모발연구소를 설립했고 4년간 60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그리고 1625km의 머리카락을 테스트하며 다이슨 슈퍼소닉을 완성했다. 

 

다이슨 슈퍼소닉은 최적의 무게 배분을 위해 옥스포드대학 동작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했고, 작은 크기지만 분당 11만 회 회전하는 V9 디지털 모터를 개발했다. 또 초당 40번 온도를 체크해 과열을 방지하고 제트엔진에서 힌트를 얻은 ‘에어 멀티플라이어’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머리카락을 태우지 않으면서 빠르게 말려주는 헤어드라이어를 만들어냈다.

 

새로 추가된 젠틀 드라이 노즐. 작은 플라스틱 액세서리처럼 보이지만 첨단 기술이 적용돼 있다. 사진=다이슨 제공

 

이번에 다이슨은 슈퍼소닉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했다. 하지만 실제 개선이 이뤄진 것은 본체보다는 노즐이다. ‘젠틀 드라이 노즐’이라는 작은 플라스틱 액세서리인데 3년 만에 겨우 액세서리만 살짝 고쳤다고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슨은 이 액세서리에도 과학을 접목했다. 슈퍼소닉에는 열제어 시스템이 있어 과열을 방지하지만 바람의 가운데 부분은 열측정 장비가 없기 때문에 과열이 될 수 있다. 다이슨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돌입했다. 

 

그리고 ‘젠틀 드라이 노즐’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 노즐은 다이슨이 만든 고데기인 ‘다이슨 에어랩 스타일러’에 적용된 기술인 ‘코안다 효과’를 유도했다. 코안다 효과는 바람이 표면을 따라 흐르는 원리로 베르누이 정리와 함께 비행기가 뜨는 원리인데, ​이를 응용한 것이다.

 

이 코안다 효과 덕분에 기존 슈퍼소닉은 일반 헤어드라이어보다 3배 많은 공기를 분사하는데 이번 제품은 4배 더 많은 공기를 분사한다. 약 33% 더 늘어난 차가운 공기가 기존 공기와 만나며 열은 더 낮추고 바람은 더 많아지니 결과적으로 더 빨리 건조시키면서도 열에 의한 머리카락 손상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오른쪽이 기존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 바람이 중앙에 집중되고 중앙 쪽은 열이 높은 편이다. 왼쪽은 새로 출시된 젠틀 드라이 노즐이 적용된 슈퍼소닉, 바람이 넓게 고루 퍼진다. 사진=김정철 제공


그 밖에 다이슨은 볼륨을 살리기 쉽도록 갈래를 더 길게 하고 그물망을 이중 설계한 디퓨저와 스타일링 콘센트레이터도 함께 내놓았다. 모든 툴이 빨리 건조하면서 머리 손상을 줄이는 기술에 집중했다. 사실 헤어드라이어에 이처럼 많은 기술과 엔지니어링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헤어드라이어의 고열로 인해 머릿결이 상해서 고민인 사람들에게는 대안이 없는 헤어드라이어임에는 틀림없다.

 

다이슨의 시작은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의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라는 무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1993년 설립된 다이슨은 25년 만에 어느덧 연매출 44억 파운드(약 6조 4000억 원, 2019년 기준)의 회사로 성장했다. 아무나 만들 수 있던 청소기,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고데기 등에 기존 상식을 허물고 노력한 끝에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냈다.

 

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헤어드라이어의 노즐을 연구하기 위해 일주일에 120억 원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한다. 가격경쟁력이 높은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며 아사 직전에 몰린 한국 제조업체들에게 다이슨의 선전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필자 김정철은? IT기기 리뷰 크리에이터. 유튜브 채널 ‘기즈모’를 운영 중이다. ‘팝코넷’을 창업하고 ‘얼리어답터’ ‘더기어’ 편집장도 지냈다. IT기기 애호가 사이에서는 기술을 주제로 하는 ‘기즈모 블로그’ 운영자로 더 유명하다. 여행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도 절대가이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기술에 대한 높은 식견을 위트 있는 필치로 풀어내며 노익장을 과시 중. 

김정철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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