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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수축사회에서 분쟁의 불씨가 된 '최소 판매량' 조항

계약해지 조항 결합된 경우는 위법 가능성…단순 사유로는 판매목표 미준수 정당화 불가

2019.08.19(Mon) 11:25:28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시간이 커질수록 파이가 커지는 팽창사회는 지났다. 앞으로는 파이가 줄어드는 수축사회다. 인구감소, 공급과잉 같은 키워드가 자주 언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매출 증가가 당연했던 시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됐던 계약 조항이 최근 자주 문제가 되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소 판매량 조항’이다. 최소 판매량 조항은 대리점, 가맹점 사업자, 라이선시(대리점) 등이 고객과의 사이에 성사시킬 계약의 최소량, 즉 최소 판매량을 정하는 조항이다. 최근 본사 또는 가맹본부 측이 최소 판매량 조항 미준수, 이른바 ‘실적 부진’을 근거로 계약 해지를 주장해 그 적법성을 두고 다수의 법률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보통 본사는 대리점 등이 제공해야 하는 판매 노력을 사전에 계약으로 명시한다. 대리점 등이 판매 노력을 다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하는 조항을 둘 수 있다. 하지만 계약상에 판매 노력을 모두 명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판매 노력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여부도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최소 판매량을 규정함으로써 대리점 등의 판매 노력을 유도하는 게 효율적이다.

 

본사는 대리점 등이 최소 판매량을 준수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계약해지 또는 갱신 거절과 같은 조항을 함께 묶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판매 노력이 없었다고 보고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다.​

 

‘최소 판매량 조항’을 두고 본사와 대리점, 가맹점 사업자 등 사이에서 법률분쟁이 빚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비즈한국DB

 

그런데 최소 판매량 조항과 계약해지·갱신 거절 조항이 결합한 계약은 때에 따라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은 거래상 지위를 가진 사업자가 거래상대방에게 판매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강제하는 ‘판매목표 강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시된 목표가 과다하고 이를 달성하는 수단이 제재적인 경우 △판매목표와 연계된 장려금이 판매촉진을 위한 순수한 유인수단의 범위를 넘어선 경우 △판매목표가 위법한 행위를 달성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등이 판매목표 강제에 해당한다고 본다.

 

판매목표 강제의 성립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거래상 지위 △​강제성 △​부당성이다. 거래상 지위란 계속적인 거래 관계를 전제로 일방적으로 한쪽의 거래의존도가 높은 경우를 말한다. 대리점 거래에서 본사(공급업자), 가맹거래에서 가맹본부는 사안에 따라 거래상 지위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또 계약해지 조항은 계약 당사자에게 거래를 종료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강제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부당성은 판매목표를 설정할 때 사전협의가 이뤄졌는지, 판매목표가 합리적인 수준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된다. 

 

최소 판매량 조항은 ‘을은 연간 최소 100개 이상의 제품 판매계약을 체결해야 한다’와 같이 간단한 문구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 형식과 관계없이, 본사가 최소 판매량 미준수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본사가 계약상 주된 의무, 즉 상품 공급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는 전제를 두고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K 사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대리점은 본사가 일방적으로 판매목표를 상향했으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K 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 아웃도어 매장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최소 판매량 및 계약해지 조항이 적법하다고 인정된 경우다. 아웃도어 브랜드 K 사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일부 대리점과 계약을 해지했다. 대리점은 본사가 일방적으로 판매목표를 상향했으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K 사의 해지권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본사가 매출목표를 전년도보다 상향된 금액으로 설정하는 것은 다른 대리점 계약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판매촉진을 위해 매출목표를 전년 대비 상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예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스포츠용품 N 사는 판매실적 부진을 이유로 몇몇 대리점과 판매계약을 해지했다. 이를 두고 판매업체는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N 사가 대형마트에 제품을 반값으로 공급했기 때문이라며 계약해지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이러한 판매업체의 주장을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같은 사례로 볼 때 결국 단순한 업계불황, 경쟁점포 등장과 같은 사유만으로는 대리점 등이 판매목표 미준수를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본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상품공급을 축소하거나 공급하는 상품의 종류나 품질을 변경했다면 달리 판단될 여지가 있다.

 

한편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앞서와 같은 해석은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 대응해 본사가 유통정책을 변경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어서다. 가령 본사가 백화점, 아울렛, 로드숍(대리점)​ 등의 유통채널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로드숍에 기획 상품을 더 이상 공급하지 않고, 아울렛에만 공급했다고 하자. 이때 로드숍은 기획 상품 공급중단을 이유로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문제로 제기하거나 더 나아가 공정거래법 위반, 손해배상 등을 주장할 수도 있다.

 

이상의 문제는 대리점 등의 매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면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매출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요즘 매출신장을 전제로 한 계약조항이 여러 법률분쟁을 야기하는 새로운 불씨가 된 것은 틀림없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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