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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프랑스 공학도가 '포도농사 로봇'을 만든 이유

와이너리 집안 출신 27세 CEO, 노동 집약적 포도산업에 자율주행 로봇 활용 고민

2019.08.14(Wed) 10:11:28

[비즈한국]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와인의 나라라는 인상이 강할 것이다. 프랑스 와인은 미국, 남미 등 소위 ‘신대륙’ 와인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의 다른 와인 산지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인지도와 선호도를 자랑한다. 생산·소비량과 수출량은 이웃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비슷하거나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고급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금액 기준인 수출액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와인과 기타 관련 상품(와인 이외의 주류와 치즈를 비롯한 식품류)의 수출로 벌어들이는 연간 190억 달러(23조 원)는 전체 수출액의 3.5% 정도에 불과하다. 비슷한 규모이며 프랑스를 상징하는 또 다른 고급 수출품인 화장품·향수류와 합쳐 7% 정도이다. 정작 프랑스의 최대 수출 항목은 12%를 차지하는 기계 및 전자 장비류이며 그 뒤를 자동차, 항공우주, 제약 산업 등이 따르고 있다. 

 

‘비티봇(Vitibot)’은 와인 재배를 돕는 로봇을 설계·제작해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로봇은 스스로 포도밭 고랑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토양을 고르고 잡초를 제거한다. 사진=비티봇

 

오늘 소개하는 스타트업 ‘비티봇(Vitibot)’은 와인(포도) 재배를 뜻하는 ‘Viticulture’와 ‘Robot’의 합성어를 회사 이름으로 지었다. 와인 재배를 돕는 로봇을 설계·제작해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앞서 말한 프랑스의 상반된 이미지, 즉 전통에 기반을 둔 고급 사치품 생산자와 첨단 기술에 기반한 산업국가로서의 양면을 모두 드러내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프랑스의 와인 산지는 크게 3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서쪽의 보르도, 동쪽의 부르고뉴, 북동쪽의 샹파뉴.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며 세계 최고의 와인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만, 샹파뉴는 특유의 기후와 토양으로 인해 최고급 발포성 와인의 생산지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흔히 말하는 ‘샴페인’은 샹파뉴(Champagne)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만이 ‘샴페인’이고 그 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 혹은 프랑스어로 ‘크레망’이다. 

 

비티봇은 이 샹파뉴에서 4대째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집안 출신의 젊은 공학도 세드릭 바쉐(Cédric Bache)가 2016년에 창업한 회사이다. 세드릭은 샹파뉴 지방의 중심 도시인 랭스(Reims) 근교의 콤피엔(Compiègne) 공대에서 전산학을 공부하며 로봇 공학에 관련된 실시간 정보 처리, 임베디드 시스템 등을 공부했다. 와인 농가의 후예답게 로봇을 활용한 와인 재배를 졸업 프로젝트로 삼아 최초의 프로토타입 ‘엑토(Hector)’가 탄생했다. 

 

비티봇의 창업자이자 CEO인 세드릭 바쉐(오른쪽 끝)는 샴페인 생산지인 샹파뉴에서 4대째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집안 출신의 젊은 공학도이다. 사진=비티봇

 

현대의 와인(포도) 재배는 지속가능성과 경제성, 양 측면에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도 일부 수입 맥주와 와인에서 제초제 성분이 검출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고급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프랑스의 와인 생산은 제초제와 농약 등의 사용을 최소로 하고 유기농 방식의 재배를 지향하는 편이기는 하나, 이런 방식의 재배는 대단히 노동 집약적이어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고급 와인을 제조하는 포도일수록 토양이 거칠고 비탈진 곳에서 재배하는데, 이런 포도는 사람이 밭고랑 사이에 들어가 직접 손으로 따야만 한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사용한 경우 포도를 통해 와인에 남기도 하지만, 수확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에게도 유해할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포도 농장에서 헬기로 제초제를 살포하는 것을 본 세드릭은 인체에 해로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포도의 생육에 방해가 되는 잡초와 병충해를 기계적으로 억제하는 방법, 즉 로봇을 활용하는 방법을 오랜 기간 생각했다고 한다. ‘엑토’는 포도밭 고랑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토양을 고르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종의 자율주행 로봇이다.

 

대학 졸업 프로젝트로 삼아 만든 최초의 프로토타입 ‘엑토(Hector)’. 사진=비티봇

 

세드릭은 2016년 졸업 후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한 후, 뜻을 같이한 7명의 젊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2017년에 두 번째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샹파뉴 지방의 여러 와이너리에서 시험 가동을 하며 데이터를 수집한 비티봇은 이때부터 이런저런 와인 재배 관련 전시회에 로봇을 출품하며 시장의 반응을 살폈고, 이를 통해 ‘Startup Live!’ 등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서 수상하거나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 앞에서 시연할 기회를 갖는 등 착실히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그해 여름을 지나며 기존 프로토타입의 한계를 절감한 세드릭은, 엑토를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3호 프로토타입 개발을 시작했다. 100% 자율주행에 100% 전기로 운행하는 ‘바쿠스(Bakus)’였다.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와인의 신으로 등장하는 바쿠스(Bacchus, 그리스명 디오니소스)에서 딴 이름이다. 

 

비티봇이 2018년 초에 랭스의 포도밭 사이에 확보한 4000㎡의 공장에서 조립한 바쿠스는 그해에 다양한 와인 관련 컨퍼런스와 행사에서 호평을 받고 첫 주문을 따낸다. 이를 발판으로 300만 유로의 첫 투자도 유치하게 된다. 투자자들은 대부분 샹파뉴 지방의 대형 와이너리. 든든한 고객이자 파트너인 동시에 투자자들을 일찌감치 확보한 것이다. 

 

세 번째 프로토타입 ‘바쿠스’가 포도밭에서 일하는 모습.

 

2019년에 이르러 6대의 시제품을 포도밭에 내보낸 비티봇은, 샹파뉴 지방의 대형 와이너리와 소형 독립 농가들과 협업하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네 번째 프로토타입인 최신 모델은 45도 경사를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비탈길에서의 자율주행은 다양한 지형에서의 테스트 축적을 필요로 한다. 로봇이 밭고랑을 누비고 다니다가 최고급 와인을 생산할 귀한 품종의 포도나무를 상하게 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아직 첫 로봇의 상업용 발주가 시작되기 전임에도 비티봇에는 이미 40여 명의 엔지니어가 일하고 있다. 2019년 안으로 천만 유로의 투자를 유치해 2021년까지 직원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불과 27세의 젊은 CEO, 농부의 아들인 세드릭이 이끄는 3년 차 스타트업 비티봇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촌 출신의 공대생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농업을 실현하는 스타트업을 만들어 성공하는 스토리를 기다리며, 비티봇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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