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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플뤼그스캄' 비행기 타는 게 부끄러운 까닭

유럽 전역에서 철도 이용 확산…비행기 온실가스 배출, 기차의 10배 이상

2019.07.22(Mon) 11:10:06

[비즈한국]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비행기 안에서 인증샷이나 비행기 날개 슬쩍 나오는 사진, 혹은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꽤 올린다. 그만큼 비행기 타는 걸 멋지고 좋은 일로 여기는 사람들은 많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비행기 타는 걸 좋아했다. 국제선은 물론이고 국내선도 애용했다. 그런데 이젠 국내선 비행기는 제주 갈 때를 제외하곤 가급적 타지 않는다. 대신 기차를 주로 이용한다. 국제선 비행기는 어쩔 수 없지만, 해외에 나가서도 고속철도가 있다면 저비용 항공기보다 기차 타는 걸 선호하게 되었다. 사실 플뤼그스캄에 동참하는 중이다. 

 

스웨덴에는 ‘플뤼그스캄(flygskam)’이란 말이 있다.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창피) 정도로 해석되는데,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란 얘기다. 이런 트렌드는 스웨덴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핀란드에선 렌토하페어(lentohapea), 독일에선 플루크샴(flugscham), 네덜란드에선 빌릭샴프(vliegschaamte) 같은 말이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즉, 스웨덴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말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항공기 대신 기차 여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환경 문제다. 비행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때문에 비행기 여행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동안 비행기를 타면서도 탄소배출이나 기후변화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몰라서 그랬다. 환경 문제에 둔감해서도 그랬다. 

 

유럽환경청(EEA, European Environmental Agency)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기차가 14g인 반면, 항공기는 285g이다. 기차 대비 비행기가 무려 20배 정도 많다. 이 계산은 기차에 150명이 탔고, 비행기에 88명이 타고 있다는 전제로 나온 계산인데,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기차는 객차를 추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태우기가 수월하다. 대규모 이동에서 기차가 친환경적인 건 이 때문이다. 버스와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카풀은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환경적 이유에서도 권장할 일이다. 온실가스의 4분의 1이 교통 부문에서 배출되고, 그중 60%가 승용차다. 그런데 한국에선 나홀로 차량이 전체 통행 차량 10대 중 8대 정도다. 경차 비율도 낮다.

 

스웨덴에는 ‘탁쉬크리트(tagskryt)’라는 말도 있다. 기차 여행의 자부심(train-bragging)을 뜻한다. 비행기 여행을 대신해 기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부심인데, 이들은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환경을 위해 기차를 선택한다. 유럽 내 이동을 비행기가 아닌 기차로 이동하는 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당당히 드러내고,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것이다.

 

‘스뮉플뤼가(smygflyga)’라는 말도 있는데, 이건 비행기로 여행 가는 걸 숨긴다는(to fly in secret) 의미다.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게 부끄러울 일이니 설령 이용하게 되더라도 남들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비행기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처음 비행기 여행은 부자들의 몫이었다. 젯셋(Jet set)이란 말도 있는데, 원래는 전용 제트기를 타고 여행하는 상류층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자주 여행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해외여행이 취미가 되는 시대, 비행기를 타고 대륙과 국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쌓는 건 과거엔 상상도 못 했을 기술 발전의 산물이자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데 플뤼그스캄은 이런 매력적 라이프스타일에 숨겨진 문제를 끄집어낸 것이다.

 

우리도 플뤼그스캄 할 수 있을까? 유럽 사람들은 유럽 내 여행이라면 비행기 대신 기차로 여행갈 수 있다. 대체 수단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해외여행 시 비행기 대체 수단이 마땅치 않다. 유럽까지 러시아 횡단철도가 가능해지는 시대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비행기를 타는 게 현실적 방법이다. 플뤼그스캄은 못 한다. 다만 탄소배출 절감에 적극 노력하는 항공사를 선택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탄소배출 절감에 적극 노력하는 항공사를 선택할 수는 있다.

 

런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그랜섬 연구소(Grantham Research Institute)가 기업의 저탄소 경제 대응준비 평가 프로그램인 TPI(Transition Pathway Initiative)와 함께 2019년 3월, 세계적 항공사 20개사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20개 항공사 중 승객 1인의 비행거리 1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것이 대한항공(171g)이었다. 20개 항공사 중 가장 낮은 영국 이지젯의 79g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한국의 국적기는 탄소배출 절감에 소극적이다. 그동안 소비자가 이 점을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영진들도 이 점을 신경 쓰지 않고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질 수 있다. 플뤼그스캄이 확산되며 전 세계 트렌드가 되면, 얼마나 탄소배출 절감을 하는 항공사인지, 기후변화 대응에 행동을 하는 항공사인지가 마케팅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환경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마케팅 이슈다. 이제 비행기 여행이 가진 환경 문제를 두고, 편리를 택할 것인가 윤리이자 환경을 택할 것인가 하는 갈등을 겪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날 수 있다.

 

필자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이다. 저서로는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부터 시작해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까지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와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실력보다 안목이다’ 등 다수가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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