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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기] 카페·극장·관공서…내가 경험한 최고의 알바, 최악의 알바

일곱 번 알바 끝에 내린 결론은 ‘더 이상 알바 하지 말자’

2017.02.13(Mon) 11:11:27

알바(아르바이트)를 꽤 많이 한 편이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한 것은 아니다. 그냥 생각보다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알바를 경험해보았다는 뜻이다. 첫 번째 알바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갓 수능을 보고 처음으로 스스로 돈을 벌었던 곳이다. 


긴장도 되고 잘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경험이 없어서 뽑힐지 몰랐는데 사장이었던 셰프님은 면접을 보자마자 나를 고용했다. 그렇게 오전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접시 닦기, 간단한 청소, 주문 받고 서빙하기, 예약 받기 같은 레스토랑에서 하는 기본적인 일들이었다. 

적어 놓으니 많아 보이지만 별 것 없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은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꿀알바’ 였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니, 인자하다 못해 보살이던 셰프님 덕분에 내 알바의 시작은 참 좋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하는 사람들끼리 와인파티를 했는데, 우리가 메뉴를 고르면 셰프님이 요리해주었다. 그때 ‘프로슈토’ 라는 이탈리아 햄과 멜론의 조합이 환상적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정말 맛있는 까르보나라는 노란빛이 강하다는 것도 알았다. 

하루하루가 수다의 장이었고 ‘웃음이 허용된’ 알바였다. 알바 처음 해본 거 티낸다고 별의별 실수를 많이 해서 너무 죄송했다. ‘쫄보 끝판왕’이었을 때의 나였다. 예약을 잘 못 받고, 스테이크를 통째로 날렸고, 잔도 깼고, 와인에 코르크 가루도 들어가게 하고. 

혼나서가 아니라 한심하고 죄송해서 눈물을 훔쳤던,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 뻔뻔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 알바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강철멘탈,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두 번째는 카페 알바. 기억에 남는 건, 스트레스 제공자 매니저. “사인해 주세요”라고 말했다가, “사인 부탁드립니다”라고 안 했다고 혼났던, 이상한 기억을 선사한 알바다. 높임말도 웃기고, 여름 내내 팥빙수 만드느라 죽을 뻔했던 악마의 고향. 다방도 아니고 커피를 가져오라는 아저씨들, 거의 다 마시고 커피 맛 이상하다는 손님, 스타벅스에서 마신 커피잔 버리고 가는 손님. 아니 손님이라고 계속 불러야 하나? 


진상들을 다양한 스타일로 관찰할 수 있는 교육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매일 오는 손님은 소소한 뿌듯함이었고, 남친 있느냐고 묻던 손님은 설렘이었다. 그땐 남친이 있어서 거절했지만, 지금은 없는데 아무도 번호를 묻지 않네. 에라이.

세 번째는 예술의전당 데스크 알바. 진정 꿀 중에 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노동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돈벌이는 안 되는 편이었다. 정도 안 가고 긴장만 무지하게 됐던 곳이다. 40만 원짜리 리사이틀 걸리는 날엔 잘못 발권할까 벌벌 떨었다. 돈 많은 진상이 제일 무서운 법. 그야말로 ‘부의 양극’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순간이었다. 예술의 전당은 할인제도를 다양하게 운영하는데 덕분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데스크에 앉아 고객들의 차림새를 훑고 분위기를 파악해보곤 했다. 기준은 그들에게 예술이 ‘일상이냐, 아니냐’였다. 일상인 사람들에게 예술의전당은 ‘사교의 장’이고, 어쩌다 한 번 티켓을 얻은 사람들에게 예술의전당은 말 그대로 ‘문화생활’을 나도 한 번 즐겨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도​ ‘문화생활’​ 쪽에 가까웠던 처지였기에 그들이 가엾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도 직원할인 혜택으로 엄마, 엄마 친구들과 ‘베르테르’를 보면서 뮤지컬의 감동을 처음으로 느꼈다. 

네 번째는 또다시 카페. 작은 평수의 테이크아웃 체인점. 또래 친구들, 젊은 사장님과 신나는 노래 속에서 정신없이 자몽에이드를 만들던 기억이 난다. 이제 바라만 봐도 지겨운 착즙기들이여. 

당시에는 일을 잘 못해서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장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참 ‘유도리’가 없었다). 그런 사장님과 오빠동생 사이가 돼서 결혼식도 가고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되다니. 인간관계는 신기해. 나도 정을 주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어서 속상했고, 그래서 더 오해하지 않았나 싶다.

다섯 번째 다시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름은 말하지 않겠지만, 제일 징그러웠던 곳이다. 돈 되는 손님과 안 되는 손님을 가르던 태도도 역겨웠고,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는 손님도 이상했다. 힘들기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 손에 여러 접시를 드느라 무거워 죽는 줄 알았고, 너무 넓어서 다리가 너무 아팠다. 

제일 싫었던 건, 그만 두고 나니 집적거리던 아빠뻘 지배인. 저기요, 아저씨,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미국에서 왔다고 영어 이름 써가며 자유로운 영혼인척 해도 아닌 건 아닌데요. 부모님 뵈러 고향에 내려왔을 때 연락이 왔다. 자기 보러 서울 오라는 내용. 내가 널 만나러 왜 서울까지 가니. 레스토랑에서도 잘렸다던데. 또 비슷한 추문에 휘말렸었나. 어휴.

여섯 번째는 일본 가정식 집. 지난 크리스마스 일이다. 지독한 솔로 후유증(?)으로 크리스마스를 없애고자 야심차게 도전했던 ‘단기 알바’로 이틀 동안 열두 시간씩 일하는 것이었다. 급격한 외로움에 그런 과오를 범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크리스마스에, 명동이라니. 정신이 제대로 나갔던 게 틀림없다. 

아르바이트 출근길 3호선 안 사람들. 사람들이 피곤한듯 눈을 감고 있다. 사진=이상은 제공


말 그대로 하드코어였다. 커플들의 성지(솔로들의 지옥) 명동의 크리스마스를 표현하려면 ‘인산인해’라는 말이 그나마 로맨틱하다. 노동으로 크리스마스를 불태워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일당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8만 원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열두 시간 중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열 시간을 서 있었다. 다음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게 되더라도 외로움을 씹어 먹는 쪽을 택하겠다.

일곱 번째, 지금 하고 있는 관공서 알바. 꿀 중의 꿀이라고 들었던 알바. 기대만발이었다. 하루 여섯 시간, 19일을 일하고 80만 원이 훌쩍 넘는 보수를 받는다니, 그것도 서류작업일 텐데! 지금까지의 극한 알바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높으신 분(누군지는 기억도 안 나는)이 축사 비슷한 것을 하셨던 것 같고, 업무 중 알게 되는 신상정보, 공무 관련 정보 등을 누설할 시 국가보안법 등으로 강하게 처벌받는다는 서약서도 썼고, 집 근처 근무지로 배치를 받았을 때는 꿀향이 솔솔 났다. 

반쯤 일을 해보니,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다. 대신 쓸데없는 일들이 조금 많다. 왜 이 서류의 표지를 이중, 삼중으로 정성스럽게 만드느냐고요. 정부는 왜 돈을 난방비에서 아끼는지! 관공서는 적정온도를 꼭 지켜야 하는데다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근무하는 환경이라 너무 춥다. 곳곳에서 손이 시렵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얼마 전 감기에 걸려 고생했는데 또 감기에 들었다. 제발, 더울 때는 시원하고, 추울 때는 따뜻하게 일하는 관공서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적어놓고 보니 알바라는 건, 하기 전 설레고, 할 때는 죽을 맛이고, 하고 나면 경험이 남는다. 온갖 경험 속의 팔 할이 서러움인지라,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제 알바는 안 하겠지? 취직할 수 있겠지? 그렇다. 내 꿈은 정규직이다.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상은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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